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당(미국) (문단 편집) ==== 남북전쟁과 암흑기, 부활 ==== [[아메리카 연합국]]의 건국을 주도한 남부 민주당원들은 신생국의 정치적 분열을 두려워해 정당에 기초한 정치적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남부 민주당은 [[남북전쟁]] 기간 사실상 해체되었다. 한편 북부 민주당은 전쟁 초창기에는 링컨 행정부와 협조해 [[남북전쟁]] 당시 연방군의 전쟁 수행을 도왔지만 전황이 점점 북부에 안좋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때마침 [[스티븐 A. 더글러스]]의 죽음으로 구심점이 사라지며, 당 내에선 [[아메리카 연합국]]을 무력으로 다시 [[미국|연방]]에 귀속시켜야 된다는 강경파(War Democrat)[* 후에 링컨이 암살된후 대통령이 되는 [[앤드루 존슨]]이 이쪽 계열이었다. 다만 존슨의 정치적 기반은 남부(테네시)였기에 남부에서 배신자로 여겨졌다.]와 아메리카 연합국와 화친을 주장하며 전쟁에 반대하던 온건파(Peace Democrat)[* Copperhead라는 멸칭으로 더 유명하다. 원래 아메리카 [[살무사]]를 뜻하는 단어였는데 당시 공화당이 이들을 [[뱀]]과 같이 사악하다며 붙인 별명이었다.] 파벌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결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대선에서 전직 북부군 사령관인 조지 맥클레런(George B. McClellan)[* 앤티텀 전투 이후 남부에 공세를 내리라는 링컨의 명령에 소극적으로 행동해 결국 교체되었다.]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으나 당내 강경파들이 대부분 공화당에 붙으며 결국 패하고 만다. 이후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고 링컨이 암살당한 19세기 중반부터는 반대로 신생 공화당의 장기집권시대가 열린다. 당시 미국 정계를 주도하는 [[공화당 급진파]]는 남부의 군정을 주도하며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흑인들의 생활을 개선하려했는데, 민주당은 이에 강력히 저항하며 공화당이 주도한 [[앤드루 존슨]]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후 북부군 사령관 출신 [[율리시스 S. 그랜트|그랜트]] 대통령이 남부 일부 주에 군정을 해제하며 정치 참여가 가능해진[*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 백인들은 이 기간 충성 서약을 하지 않으면 참정권조차 얻지 못했다.] 일부 [[남부 민주당원]]들은 북부 민주당원들과 다시 합당했지만, 노예제를 두고 빚었던 민주당 당내 내분이 187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폭발해 버린다. 결국 1872년 대선에서는 남부+북부의 해묵은 갈등으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민주당은 공화당을 탈당해 자유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한 [[호러스 그릴리]]를 지지하는 웃픈 상황도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의 행보로 과거 연방당마냥 미국인들에게 '반역당' 수준으로까지 내몰리자 민주당은 '''새로운 출발(New Departure)'''이라는 전략을 도입해 남부 군정에 어느정도 협조하며 경제적 문제와 사회 부패 문제로 공화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1873년 공황으로 [[율리시스 S. 그랜트|그랜트]] 행정부가 어느정도 인기를 잃자 대안으로 떠올라 1874년 중간 선거에선 기어코 의회 과반을 차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이런 영향과 이후 그랜트의 후임자로 대통령이 된 공화당 온건파 성향인 [[러더퍼드 B. 헤이스]]는 [[러더퍼드 B. 헤이스#s-3|자신의 당선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분쟁]]에 대한 타협으로 결국 그의 집권기에 남부 군정을 종식시키게 된다. 허나 이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던 남부 백인들이[* 그 당시 남부 백인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을 주장한 민주당 의원들을 선출해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준노예 상태로 만들며 남부는 20세기 중후반까지 인종차별하면 떠오르는 슬픈 지역이 되어버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기간 이들은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기반(Solid South) 중 하나가 된다. 이런 남부 민주당 계파는 리디머(redeemer)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재건 시대{{{-1 (Reconstruction Era)}}}의 재건을 부정하고 남부 주의 자치 및 전쟁 이전의 기득권 복원을 목표로 했으며, 실제 남부에선 주정부 및 의회를 대거 장악하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단, 이들 역시 하나의 단일 계파라기보다는 느슨한 연합체에 가까워 내부를 살펴보면 도시와 농촌, 구 민주당과 구 휘그당 출신의 갈등 등 알력싸움 또한 상당하긴 했다. 남북전쟁 이후엔 민주당원들이 심지어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인 [[쿠 클럭스 클랜#s-2.1|KKK]]를 창설한다. 흑인에 대한 린치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에 대한 인권법안들은 모조리 반대하는 등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된다.[* [[https://assets.ctfassets.net/qnesrjodfi80/6bQdKPLDjyo2s0I8c60gA2/aec7a4feb53cdd469d9c59bc3dd5cc64/swain-the_inconvenient_truth_about_the_democratic_party-transcript.pdf|출처]]] 하여튼 남북전쟁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민주당은 초창기 서민을 대변한다던 모습과 다르게 조금씩 기업인들과 금융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르본 민주당]]원(Bourbon Democrat)들이 등장했는데, 이 파벌의 대표적 인물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있다.[*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이 낸 첫 대통령이다.] 사실 이 당시까지도 민주당은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지지하며 [[금본위제]]를 미는 등 노동자, 농민이나 빈민의 처우 개선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뉴욕의 태머니 홀로 대표되는 부패정치에 맞서고 제국주의 팽창을 반대하는 면 또한 있어 일부 공화당 소장파(머그웜프)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남부의 보수적인 민주당원들의 경우 부르봉 민주당이자 동시에 리디머에 속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