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워키 (문단 편집) == 역사 ==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18세기 중반까지 메노미니, 폭스, 포타와토미, 오지브웨 족 등이 살고 있었던 곳이며, 18세기 초 [[인디언 전쟁|북서 인디언 전쟁]]에서 원주민들이 패퇴하고 1785년 알렉시스 라팜보아즈(Alexis Laframboise)가 최초로 무역 거점을 세운 이후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도시가 세워졌다. 원래에는 솔로몬 주노(Solomon Juneau)가 세운 주노타운(Juneautown), 바이런 킬본(Byron Kilbourn)이 세운 킬번타운(Kilbourntown), 조지 워커(George H. Walker)가 세운 워커즈 포인트(Walker's Point) 총 세 개의 정착촌으로 도시가 나뉘어져 있었으나, 1845년 밀워키 강에 다리를 놓는 문제로 대판 싸운 뒤로 세 곳이 밀워키라는 하나의 도시로 합쳐지게 된다. 이후 [[독일계 미국인|독일계]] 이민자들, 특히 [[독일 통일]]과 [[1848년 혁명]] 중 독일에서 밀려난 급진적 민주주의자들[* 흔히 "48년 세대" 로 불린다]이 위스콘신의 비교적 싼 땅과 독일계 커뮤니티에 이끌려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과정 중에 밀워키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도 이민자가 들어왔고, 1920년대부터는 [[흑인 대이동]](The Great Migration) 중 주로 남부에서 살던 [[미국 흑인]]들도 일자리가 있는 밀워키에 정착하게 되었다.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해 다른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맥주 양조업이 도시의 주 산업으로 자리잡았으나 때문에 1920년대 [[금주법/미국|금주령]]이 발효되고 나서는 도시 전반적으로 뼈아픈 타격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20세기 초에는 [[미국 사회당(1901)|미국 사회당]]이 급진적 좌파와 사회주의자 이민자들을 등에 업고 가장 세를 펴고 다니던 도시 중 하나였다. 1910년에는 사회당 소속의 에밀 사이델(Emil Seidel)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자 시장으로 당선[* 1912년에 [[유진 데브스]]의 러닝메이트로 사회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느라 시장직을 사임했다.]되었으며, 이후 대니얼 호언(Daniel Hoan, 재임기간 1916-1940)과 프랭크 자이틀러(Frank Zeitler, 재임기간 1948-1960) 등 사회당 소속 시장들이 장기 집권했다. 이 시장들은 재임기간 내내 소위 '하수도 사회주의'(Sewer Socialism)라 불린, 혁명적이라기보단 개혁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민주의]] 정책들을 추진하며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를 확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