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S.E.S.) (문단 편집) === 1992년 ~ 1994년 중학생 === 소래중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시절, 경기도 48개시의 학교 학생들이 출전한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웅변은 돈 있는 사람들만 자식에게 시킬 수 있는 전유물로 여겨졌었는데, 바다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매일 같이 연습을 해서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바다 아버지의 회고에 따르면, 각 시에서 리무진을 타고 온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 깃발을 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회상하였다. 중학교 시절 바다의 꿈은 '레크레이션을 지도하는 수녀'였다. 바다 아버지가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하면서 온 가족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고, 특히 바다 아버지는 바다를 '복덩이'라고 부르면서 수녀원에 보내고 싶어했다고 한다. 실제로 바다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동안 수녀회 성소자(聖召者) 모임[* 수도자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모임이다. 대개 1달에 1번 모임이 있고, 이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 보면서 수도회 입회 여부를 결정한다.]에 다녔고 한다. 여름 방학 때마다 꽃동네, 천사의 집, 평화의 집 등을 찾아다니며 아기들을 돌봤고,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봤고, 할머니 할아버지 대소변도 다 받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추후 안양예술고등학교 재학 당시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수도자 말고 자신의 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한마음문화예술단 정식회원이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1달에 1번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졌는데, [[S.E.S.]] 5집 활동 당시에는 아버지를 따라 탑골공원에 가서 노래한 적도 있다. 중학교 3학년,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하였다. 당시 안양예고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경쟁률이 무척 높았었는데, 특히 바다가 지원한 해의 경쟁률은 무려 19:1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만 해도 돈이 없으면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었고, 촌동네에서 예고에 진학한다는 것은 연예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렵게 여겨졌었기 때문에, 바다가 안양예고를 지원했을 때 다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뜻을 굽히고 싶지 않은 나머지 밤낮으로 연습해 결국 입학시험을 보게 됐다고 한다. 입학시험에서 바다는 트로트, 가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On My Own〉, 창 각각 1곡씩을 불렀고, 연극 《백세개의 모놀로그》의 대사에 맞춰 자유롭게 연기를 펼쳤다고 한다. 당시 바다를 면접 현장에 있었던 안양예고 임경완 교감은 바다에게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시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보통 집안에 대해 묻는 이유는 실력이 아주 없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둘 중 하나로, 실력이 없으면 돈으로 여기까지 온 건지, 왜 하려고 하는지를 묻는 거고, 실력이 뛰어나면 집안에 내력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의도로 질문하는 것이다. 이에 바다는 아버지가 지금은 편찮으시지만 예전에 창을 좀 하셨다고 답하였고, 이에 교감은 들어오면 잘 할 거지? 열심히 다녀!라며 그 자리에서 미리 --대놓고-- 합격에 대한 확신을 줬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