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에른 (문단 편집) == 특색 == 텔레비전에서 독일 국가(國歌)보다 [[바이에른 찬가|바이에른 주가]](州歌)를 먼저 연주할 정도로 지역색이 강하다. 중앙정부과 별도로 자체 국경 경비대([[https://de.wikipedia.org/wiki/Bayerische_Grenzpolizei|Bayerische Grenzpolizei]])[* 1946년 창설되었다. [[동서독 국경|동서독 분계선]]도 바이에른 지역은 바이에른 국경 경비대가 경비했다. 그러나 [[탈냉전]]과 [[오스트리아]]의 [[유럽연합|EU]] 가입 여파로 1998년 해체되었으나, [[유럽 난민 사태]]로 2018년 재창설됐다.]까지 두고 있다. 바이에른의 독특한 정체성은 복잡한 역사에서 기원한다. 바이에른이 위치한 곳은 [[도나우강]] 이남으로, 원래 게르마니아가 아니라 로마 제국의 라이티아 속주와 노리쿰 속주였고 많은 도시들이 로마 제국 국경 방어선의 군단 기지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문명화가 일렀으며, 많은 로마인들이 살았고 민족 대이동기에 지배자가 된 바유바리족도 당연히 이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바이에른은 독일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그냥 신성 로마 제국의 일원이라는 성향이 강했다. 현 바이에른인들은 [[로망스어]]를 안 쓰는 게르만족 이주민 바유바리족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역사는 강 건너 북방 미개 야만인 게르만족들과 달리 [[고대 로마]] 및 [[라틴|라틴족]]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어쩐지 이중적인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바이에른인들은 [[빵]]도 Brot라고 안 하고 [[라틴어]] simila([[밀가루]])에서 기원한 Semmel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독일 지방에도 각 지역 언어가 존재하듯이, 바이에른에는 바이에른어([[오스트로바이에른어]], '바이에리슈' 혹은 '바이리슈')[* 표기가 다양하다. Bayerisch, Bairisch, Bayrisch 등으로 표기 된다. 바이리슈로는 Boarisch라고 적는 듯. 직역하면 '바이에른어'이다. 타 지역 방언들도 비슷한 조어 방식을 가진다. 한국식으로 하면 경상도어, 전라도어, 서울어라고 하는 식.]라는 지역 언어가 따로 존재하는데,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바이에른어를 알아 듣지 못해 별도의 사전을 구매하기도 한다. 바이에른어는 독일의 표준 독일어보다는 [[오스트리아 독일어]]에 가깝다. 바이에른 사람들에게 오스트로바이에른어를 "[[사투리]](Dialekt)"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며 "지역 언어(Lokale Sprache)"라고 강변한다. 애초에 독일어는 어떤 지역을 기준으로 표준어와 사투리를 구분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어딜 가도 사투리 드립치면 근본도 없다고 까이긴 하지만. [[파일:external/pre10.deviantart.net/bairisch_by_arminius1871-d822s3p.jpg|width=600]] 바이에른어 사용 지역[* 여기선 Boarisch라고 적고 있다.]은 바이에른 대부분 지역과([[프랑켄]], [[슈바벤 현]] 지역 제외) [[작센]] 주 남부 극히 일부 지역, 오스트리아 대부분 지역, [[스위스]] 동부 일부 지역, [[이탈리아]] [[쥐트티롤]] 지역, 그리고 독일계 주민이 모여 사는 [[헝가리]] [[외덴부르크]]([[헝가리어]]로는 [[쇼프론]])과 [[체코]] 뵈머발트([[체코어]]로 슈마바) 지역에 분포해 있다. || [[파일:external/www.oktoberfest-live.de/1918827875-bairisch-uebersetzung-woerterbuch-2ibf.jpg|width=200]] ||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41VVLDfzYsL._SY344_BO1,204,203,200_.jpg|width=200]] || |||| [[오스트로바이에른어|바이에른어]]-[[독일어]] 사전. '바이리쉬'의 표기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 이 때문에 바이에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독일인이라기보다는 바이에른 사람으로 여기고, 다른 지역 독일인들 역시 바이에른 사람들을 '독일인이 아닌 누군가'로 인식한다. 독일 내에서도 그렇지만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게 잘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잘 사는 지역은 아니었고, 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이 분할되면서 동독에 있던 기업들이 주로 바이에른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왕국(공국) 수도인 뮌헨이나 원래 [[자유도시]]였던 대도시들을 빼면 대부분 농경지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 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였다. 이처럼 지역 산업의 주축이 농업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던 당시 집권당인 사민당의 농지 개혁을 반대한 나치당 등의 지지세가 높았다.[* 반면 수도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던 구 동독 지역은 산업이 발전했고, 공장에 취직한 노동자들이 많아서 공산당의 세력이 강했다. 오죽하면 당시 베를린의 별명이 ‘붉은 베를린’이었고,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베를린 지역 당 지도자로 취임했을 때에는 당 내부에서도 험지에서 고생한다는 인식이 컸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폴란드]], [[체코]]로 할양된 동쪽 영토에 살고 있던 많은 독일인들과 기업들이 국경 지대에 있고 땅도 넓고 지가도 싼 바이에른으로 대거 이주, 이전해왔고, [[소련]]이 점령하게 된 동독에서도 많이 넘어왔다. 바이에른의 졸른호펜(Solnhofen) 지역은 [[쥐라기]]의 동물 [[화석]]으로 유명하며 시조새로 유명한 [[아르카이옵테릭스]]와 [[콤프소그나투스]]의 첫 화석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은 보존율이 뛰어나서 웬만한 연조직([[깃털]]이나 날개막 등)이 화석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또한 1400만 년 전에 [[운석]]이 충돌해 생긴 지금 24km짜리 [[크레이터]], 리스(Ries) 분지도 바이에른 지역에 있으며 그 분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중세도시 뇌르틀링겐에 리스 분지 박물관이 소재해 있다. 방문하면 [[NASA]]가 기증한 [[월석]]도 구경할 수 있다. [[지역방송]]인 [[바이에른 방송|BR]]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교향악단]]과 독일판 [[방통대]]라 할 수 있는 'Telekolleg'를 운영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