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스코틀랜드 ===== 잉글랜드 못지않게 바이킹들의 영향력이 컸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스코틀랜드]] 지방이었다. 스코틀랜드 지방은 잉글랜드와는 달리 제대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당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이 좀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수도원들을 바이킹들이 싸그리 불태워버렸기 때문. 대표적으로 아이오나 수도원은 849년 바이킹의 침략을 피해 철거되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적 자원인 수도사들이 사라지자 역사를 기록할 사람들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바이킹들이 스코틀랜드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선 대부분이 노르웨이나 덴마크, 잉글랜드 쪽의 사료에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스코틀랜드 중에서도 게일과 픽트인들은 이미 바이킹 시대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스칸디나비아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와는 달리 스코틀랜드는 개발도가 떨어졌고 약탈할 것도 별로 없어서 침략 빈도도 적었다. 그렇다고 아예 침입을 안한 것은 아니라서 839년에 대규모 노르웨이 함대가 테이 강과 언 강을 통해 픽트 왕국의 수도 포트리우를 공략했고, 870년에는 클라이드 만의 요새를 공격해 막대한 물자를 탈취해갔다. 참고로 바이킹은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데, 일단 스코틀랜드의 핵심인 스코틀랜드 저지대가 원래는 [[노섬브리아]] 왕국의 영토로 즉 앵글로색슨족의 땅이었다. 그러나 바이킹이 노섬브리아를 멸망시켜버리고 앵글로색슨족을 학살하면서 이 영토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영토로 편입됐고 이는 훗날 스코틀랜드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바이킹들은 무려 300년 동안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는데, 원주민인 픽트인이나 게일인, 앵글로색슨인 등이 바이킹을 막기 위해 하나로 뭉치게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결국 덕분에 스코틀랜드 최초의 제대로 된 왕국인 '알바 왕국'이 등장했고 알바 왕국은 훗날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이 된다. 스코틀랜드의 바이킹 시대는 약 100년 후에 종결됐지만 바이킹과 스칸디나비아의 영향력은 바이킹 시대가 끝나고도 400년 후인 13세기, 최후의 스코틀랜드 바이킹 국가인 군도 왕국[* [[해브리디스 제도]]에 위치했다. 사실 이들도 이 시점에는 게일인들에게 거의 동화된 상태라 실질적인 바이킹 시대는 이전이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 스코틀랜드에 복속되기까지도 스코틀랜드에 남아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