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재평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orse-new-header.jpg|width=100%]]}}} || || '''{{{#40E0D0 북유럽 신화를 다룬 [[리하르트 바그너|{{{#40E0D0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40E0D0 '니벨룽의 반지'}}}]]}}}''' || 지금이야 바이킹들이 '고귀한 야만족', 혹은 '진취적인 해양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달고 있지만 고대, 중세인들에게 바이킹은 그냥 '''피에 미친 이교도 야만인''' 그 자체였다. 유럽인들이 어찌나 바이킹들에게 시달렸는지 그들을 '신의 진노'라고 불렀으며 자연재해와 비슷하게 취급했을 정도였다. 특히 793년 6월 바이킹 시대의 시작을 알린 린디스판 수도원 습격은 두고두고 욕을 먹었는데, 당시 린디스판 수도원은 일반적인 수도원이 아니라 잉글랜드에서 가장 성스러운 수도원들 중 하나로 꼽혔기 때문. 바이킹들이 중세 유럽인들에게 남긴 상처가 워낙 깊었기에 바이킹들은 유럽에서 1,000년 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추어졌다. 이렇게 워낙 이미지가 나빴기 때문에 한동안 유럽 역사에서 바이킹의 후손을 자처하는 민족도 없었다. 스칸디나비아에 남은 후예들은 기독교화된 후 약명높았던 과거를 "이교도 시절에 한 일"로 거의 흑역사 취급했다. 영국(데인로, [[채널 제도]]), 아일랜드, 프랑스([[노르망디]]), 러시아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현지 주민과 동화되어 본토 시절의 언어뿐만 아니라 정체성까지도 잃어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후손들은 자신들이 바이킹의 후예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의 역사와 생활사를 문자화하여 남긴 것은 거의 없어 구두로만 전승되었고, 그들에 대한 기록은 침략당한 쪽의 문자로 기록되어 전해지다 보니 악명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작권'을 주장할 만한 원주인들이 사라진 덕에 마음놓고 재평가를 할 수도 있었다. 바이킹 못지않게 악명이 높았던 [[몽골 제국]] 역시도 한때는 유라시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현 몽골 지역 외에서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반복된다. 바이킹이 현대와 같은 대접을 받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17~18세기 들어 [[낭만주의]]와 영웅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바이킹들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났던 것이다. 노르드어로 쓰인 고대 텍스트들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바이킹들을 칭송하는 시들이 속속들어 등장했다. 대중들이 '바이킹'이라는 단어를 흔히 쓰게 된 것은 19세기 초 시인 에릭 구스타프 가이저가 쓴 시 '바이킹'이 크게 히트를 치면서부터였는데, 가이저가 바이킹을 무슨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미화, 포장해주면서 바이킹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 영국인들이 북유럽에 가지고 있던 환상적인 인식이 합쳐지면서 바이킹은 점차 영웅시되었다. 바이킹들의 영웅화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빅토리아 시대]]에 그 정점을 찍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 독일, 영국 등지에서 [[범스칸디나비아주의]]가 생겨나면서 그 일환으로 바이킹들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났다. 특히 바이킹의 고향이었던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북유럽 통일 운동의 대두와 함께 전근대 기독교로 개종하기 이전 자신들의 조상이었던 바이킹을 더 이상 기독교로 개종하기 이전 야만 문명에서, 북해와 발트해 그리고 지중해와 흑해를 모조리 재패한 강력한 해상 세력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독일은 서유럽 주류문화였던 로마-프랑스 문화에 대비되는 게르만 문화의 본류로서 바이킹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바이킹에게 가장 호되게 당한 나라지만, 바이킹과 비슷한 해양제국을 건설했기에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영국 왕실 자체도 거슬러 올라가면 바이킹과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어있다. 정복왕 윌리엄 1세는 노르만인인 노르망디 공작이었고 노르망디의 시작은 바이킹 정복자 롤로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도 만연했던 [[백인 우월주의|게르만우월주의]]와 [[인종주의]]는 바이킹들의 신격화에 더욱 불을 붙였다. 게르만우월주의자들은 [[게르만족]]을 '북유럽의 신비스러운 안개에서 걸어나온 선택받은 인종'이라고 미화했는데, 이들의 입장에서 영웅적이고 용맹한 바이킹만큼 입맛에 딱 맞았던 것도 없었던 덕분이었다. [[북유럽 신화]]를 다룬 [[바그너]]의 오페라가 대히트를 치면서 바이킹들의 이미지는 180도 달라졌다. 특히 [[나치 독일]]에서는 게르만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이킹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용맹한 전사들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했다.[* 특히 [[슈츠슈타펠]] 사령관이자 나치 독일 최고위급 인사였던 [[하인리히 힘러]]는 오컬트, 개중에서도 북유럽 신화에 심취했던 걸로 유명하다.] 현대의 바이킹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나치 독일의 공로도 있었던 것. 나치 독일 자체는 패망해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바이킹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한때 피에 미친 악랄한 이교도로 불리던 바이킹들은 고귀하고 영웅적인 전사들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 덕에 바이킹들은 현대까지도 [[토르(마블 코믹스)]], [[바이킹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등 다양한 미디어물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꾸준하게 등장하는 중이며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와 함께 세계 3대 신화로 꼽힐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