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사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xa51783ed094c8f0db65e2c71fcc3cfbe.webp.pagespeed.ic.IYWJgNUbSK.webp|width=100%]]}}} || || '''{{{#40E0D0 바이킹 사회의 계급 피라미드}}}''' || 바이킹 사회는 크게 3계급으로 나뉘어졌다. 엘리트 계급 '야를(Jarl)',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유민 '카를(Karl)', 사회 밑바닥인 '스렐(Thrail)'로 분류할 수 있었다. 자유민들은 무기를 휴대할 권리가 있었고 의회 '씽'에서 발언권도 있었으며 투표권도 있었다. 자유민 대다수는 농부였고 자영농도 [[소작농]]도 다양하게 섞여있었다.[* 척박한 지방에서 살아서 약탈을 주된 생활사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반농 쪽에 가까웠다. 거기서 재배할 수 있는 곡식과 야채를 재배하였고, 낙농업도 어느 정도는 시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중국의 흉노 등의 외부 민족들의 생활사와 유사하다.] 우리가 흔히 '바이킹'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전사들은 다 자유민 계급이다. 이 전사들은 대부분이 재산이 없는 무일푼에 [[미혼]]인데다가 대체적으로 어렸다. 전사들이 이렇게 어렸던 이유는 바이킹들의 상속 관습 때문이었다. 바이킹 상속체계에서 아들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것을 물려받을 수 있었는데, 재산을 많이 물려받지 못한 나이가 어린 아들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바다 밖으로 나가 약탈을 저질렀던 것이다. 야를들은 여러 전사들을 거느리는 거물들로 보통 족장이나 지방 유력자가 여기 해당됐다.[* 훗날 스칸디나비아에 왕들이 등장하자 이들은 왕 아래의 귀족 체계로 편입된다.] 이들은 수많은 전사들, 말, 노예들을 거느렸으며 거대한 영지를 경영하며 롱하우스에서 살았다. 주요 소일거리는 행정, 정치, 사냥이었고 허드렛일은 아래 자유민과 노예들이 해줬다. 종종 해외 원정이 있을 때 함대를 이끄는 것 역시 이 야를들이었다. 카를과 스렐 등 대부분의 바이킹들은 농업에 종사했다. 바이킹은 기본적으로 농민 공동체였으며 약탈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는게 불가능했다. 바이킹 사회에서 밖으로 나가서 약탈에만 종사하는 인원 비율은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돈없는 어린 전사들이 젊은 혈기에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경우가 더 흔했다. 바이킹들은 대부분 [[대가족]] 형태로 살았는데, 여자는 농장에서 일하며 집안일을 했고 남자들은 배를 타고 밖으로 나가 약탈을 해오거나 씽에서 가족들을 대표했다. 바이킹 자유민들은 자기들끼리는 야를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평등했지만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던 [[노예]]들은 바이킹 사회 내부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주로 바이킹들이 약탈지에서 납치해온 사람들이거나 노예 가문에서 태어나 날때부터 노예인 부류로 나뉘어졌다.[* 혹은 태어날 때는 자유민이었지만 파산해서 빚을 지고 노예로 들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이 노예를 '스렐(Thrail)'이라고 불렀다. 바이킹들이 하도 약탈을 많이 저질렀던 탓에 바이킹들은 한 가구마다 최소 1~2명의 노예가 있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많은 집은 30명의 노예를 데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노예들의 생활 조건은 주인의 취향, 그리고 경제 여건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었다. 노예는 어딜 가서나 천시받고다니는 비참한 존재였지만[* 자유민이 자유민을 죽이면 무려 200실링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노예를 죽이면 살인죄가 아니라 재물손괴죄로 취급받아서 훨씬 형이 약했다. 게다가 주인이 죽으면 [[순장|같이 묻히는 경우]]도 많았다.] 의외로 계급 유동성은 상당했다. 주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해방될 수 있었고, 심지어 돈을 모아 자신의 자유를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예들이 해방되었다고 태생부터 자유롭게 태어난 자유민 '카를(karl)'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해방노예들은 노예와 자유인 사이 계급인 '레이싱기(leysingi)'가 되었는데, 여전히 주인에게 충성을 바쳐야했고 의회에서도 자신의 의견이 아닌 주인의 뜻에 찬성해야만 했다. 해방노예들이 주인 가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얻기 위해선 최소 2세대가 지나야 했다. 해방노예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주인이 해방노예의 재산을 환수해갔다. 바이킹들이 잡아오는 노예들은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애초에 바이킹들이 스칸디나비아에서 벗어나 약탈을 시작한 이유가 성비 불균형 문제도 있었는데, [[일부다처제]]를 선택한 스칸디나비아에서 권력자가 여자들을 죄다 독차지하자 번식의 기회를 놓친 남자들이 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남성 전사들은 당연히 약탈지의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만 납치해서 데리고 왔다. 그렇게 노예로 잡혀온 여자들은 [[강간]]에 수시로 노출되었으며 주인이 음주가무와 훈련을 하는 동안 고된 가정일에 종사했다. 다만 운이 좋다면 주인의 아내가 되어 신분이 상승할 수도 있었다. 노르드 문화에서는 행복한 가정생활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정실부인만 된다면야 여자들의 생활은 상당히 나아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