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지원(실학자) (문단 편집) == 여담 == * [[음주]]에 관해서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술]] 마시면서 풍류를 읊는다는 건 다 핑계거리에 불과하고 '''술에 취하면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너도나도 [[개]]가 된다'''고 독설을 하기까지 하였다. 헌데 [[정조(조선)|당시 임금]]은 역대급으로 술을 좋아하는[* 아예 신하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며 감시자까지 정해놓고는, '취하지 않으면 집에 갈 생각하지 마라'(無醉不歸)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군주였다는 점이 아이러니. 막상 열하일기 등에 종종 나오는 술 마시고 친목질하고 인맥 만드는 장면, [[중국]]에서 외국인들도 많고 좀 분위기 무서운 주점에 들어가니 눈치가 안 좋은 걸 독주 원샷으로 분위기 뒤집은 사례[* [[청나라]] 주점에 가니 분위기가 안 좋아 원샷하자 어느 청인이 "그건 논에 물을 붓는 거 같소. 술을 마시는 느낌이 아니잖소?"라고 딴지를 걸었다. 박지원은 쿡 비웃으며 "논에 물을 가득 붓는 것을 농삿일에 충고로 뭐라고 할 수 있으나 술을 마시는 걸 그렇게 견주면 이야기하는 건 그냥 오지랖이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요? 주점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난 점잖게 작은 잔으로 폼잡으며 마신다는 거요?"라고 말하며 남이사 끼어들지 마란 투로 대꾸하며 태연하게 술을 마셨다. 그러자 다른 외인으로 보이는 이가 "기분 좋게 술을 마시러 오는 거지 남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싸우고자 시비를 거는 것이오. 다 같이 기분 좋게 마시는 거요."라며 중재하며 서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등을 보면 음주의 해악은 알고 있어도 막상 본인도 꽤 술을 즐긴 듯 하다.[* 어느 정도 해악이 있는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사회적인 면을 고려하며 사는 경우는 흔하며, 오히려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면 타협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꽤 흔하다. 아주 엄격한 성격의 성웅의 이미지를 가진 [[이순신]]도 수군 부하들을 하나로 묶고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인 자리에선 음주가무를 어느 정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본인이 손수 반찬을 만들어서 자식들에게 주고 제자들도 밥해먹였다고 한다. 이때 반찬과 같이 보낸 편지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아들바보|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부인과 사별한 이후에도 [[재혼]]도 안 하고 첩도 안 들이고 살았다고 한다. * 조선시대에 드물게 생전 [[장례식]]을 치른 사람이기도 한데, 자신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약을 물리치고 계산초당에 친구들을 불러 [[http://www.korea.kr/celebrity/cultureColumnView.do?newsId=148853280|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 형조참의를 지냈던 [[정약용]] 정도는 아니지만 현감 당시 의옥 사건에 제법 연루되어 관찰사 등에게 피의자에 무실을 호소하는 편지를 4건 정도 보낸 일이 있다. [[http://m.blog.daum.net/gofor99/328?category=1993|#]] *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가 가득 담긴 글을 많이 남겨서 유쾌한 지식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외모 자체는 초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이미지와는 차이가 나는 편이다. 당시 박지원의 모습을 묘사한 글에서도 초상화처럼 풍채가 당당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가졌다고 묘사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