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단대전 (문단 편집) == 결말 == 팔로군은 대소 전투 1,824회를 치르는 동안 474 km의 철도 파괴, 2만 명의 일본군과 5천여 명의 친일괴뢰군을 사상했으며 팔로군의 사상자는 2만 2천명이라고 전과를 발표했다. 반면 일본군은 사상자 476 명에 교량파괴 73회, 터널 파괴 3회, 역 20개소 소실 ,철도파괴 44 km라고 피해를 발표했다. 사령관인 [[펑더화이]]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도 마오쩌둥에게 갈굼을 당하고 [[자아비판]]까지 해야 했는데 팔로군 전력을 최대한 확장하고 보전해 [[장제스]]와의 내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여겼던 [[마오쩌둥]]에게 있어서 이러한 공세는 팔로군에 손실만 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실제로 중화권 내의 반공주의자들은 항일전을 이용해 국공내전에서 승리했으면서 국민당군으로 참가했던 노병들을 찬밥대우한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체제선전을 위해서 2000년대 이전까지 항일전에 참전한 팔로군을 제외한 국민당군 노병들은 항일전쟁승전기념식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는 중국공산당에서 이념문제보다 민족문제를 더욱 부각시키는 터라 부대소속과 관련없이 국민당군복을 입혀서 참전노병들을 열병식에 참여시키는 모습을 보이곤 있지만 확실하게 말하자면 항일전의 공은 공산당보단 국민당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중국 공산당도 현재는 국민당도 공이 컸다고는 인정하고 있으며 마오쩌둥 자신도 항시 항일보다는 세력확대나 국민당 공격에 힘을 쏟으라고 당부한 바 있다.] 한편 이 전투에 조선인 독립운동가인 [[김무정]](金武亭 1905~1951)[*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에 참가했으며, 그가 거느린 조선의용군은 무려 8천 명의 대병력을 보유한 강력한 조직이었다. 김무정은 뛰어난 포술로 유명했으며, 허형식(許亨植 1909~1942)과 함께 조선인 항일 빨치산 중에서 가히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혔다. 독립투쟁의 규모로 따진다면,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한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단, 활약상에 비해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이 사람은 한국전쟁때 조선인민군 2군단장으로 침략의 선봉에 섰기 때문이다.]도 1천 명의 포병단을 이끌고 참전하여, 팔로군을 도와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9133|#]] 이 전투를 소재로 해서 2015년에 장옥중 감독과 저해강 연출가가 만든 백단대전 (The Hundred Regiments Offensive)이 개봉하였다. 공산당 미화가 좀 나오지만 전쟁 역사물로는 아주 잘 만들어진 수작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6774|#]] [[분류:중일전쟁/지상전]][[분류:중국공산당의 역사]][[분류:1940년 전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