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련교 (문단 편집) == 역사 == 백련교는 [[북송|송나라]]부터 등장하는데 창시자는 모자원이다. 일명 명교(明敎)로도 불린다. [[원나라]] 말기 [[홍건적]]에도 관련되어 있다. 교리는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지향적이라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미륵 신앙]]과 가까운 형태였다. 이들은 [[마니교]]의 영향을 받고 이들의 교리를 흡수해, [[영지주의|현세는 거짓이므로 진짜 세계로 가야 한다고 믿었기에]], 속세의 정권도 부정하였다. 이들은 비밀을 유지하며 암암리에 유지되고 성장하고 있었기에 정보가 지극히 부족하다. 현재 알려진 것도 백련교도의 난 당시 신도들을 잡아다 고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전부이다. 기본적인 교리는 [[미륵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일반적인 미륵 신앙과 다른 점은 [[마니교]]의 영향으로 절대자 사상이 있어, '''한번도 윤회를 겪지 않은''' 여신 '무생노모'(無生老母)가 최고의 절대자이고 무생노모가 인간 세상에 대리자인 [[미륵]]을 내려보내 인간 세상을 구원하여 이상향인 '진공가향'(眞空家鄉)을 세운다는 것이 기본 교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백련교도들은 '진공가향 무생노모'라는 8자 진언을 외우는 것이 의무였다. 백련교는 중국 역사에서 두 번 큰 역할을 하는데, 첫번째는 14세기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질 때 이른바 [[홍건적의 난]]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명의 태조 [[주원장]]도 백련교도[* 주원장이 이은 [[곽자흥]]의 군벌은 본디 다른 백련교도와는 사뭇 이질적인 독립군벌이라 다른 백련교도들로부터 경원시되어 견제 및 공격까지 받았으며 세력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그 결과 이러한 상황에서 탈피하려 북진하는 백련교의 세력에서 이탈, 아예 강남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같은 백련교끼리 싸우는 등 사이가 별로였지만 강남 진공 이후로는 명목상으로만 교도였을 뿐이다.]로 출발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명을 세웠다. 그러나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우자 백련교의 세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백련교를 탄압하였고, 백련교는 [[가정제]]의 폭정 시기 일부 교도가 [[알탄 칸]]에게로 망명하기도 했다. 두번째는 18세기 말 [[청나라]]에서 일어난 이른바 [[백련교도의 난]]인데 이 때도 이민족인 만주족의 지배에 대항하여 한족을 중심으로 저항하는 세력으로 청나라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에도 백련교도는 여러 일파로 나뉘어 여러차례 청나라에 반대하는 [[비밀결사]]로 조직되었고 이중 한 분파는 천리교라고 하여 무려 [[가경제]]를 암살하려고 백주 대낮에 [[자금성]]에 침입하는 테러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반면 청나라에 포섭된 분파는 나중에 [[의화단]]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한족(漢族)들이 이민족들에게 대항할 때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던 종교이기도 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했는데 송나라부터 청나라까지 길게 있었다. 비밀결사 성격이 있어서 구조도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보면 평소엔 조용히 지내거나 지하로 숨어들어서 긴 세월 숨어 있다가 난세에 세를 회복해서 나온 걸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