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를린 (문단 편집) === 고대와 중세 === 기원전 7~8세기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이 남하하여 현 독일을 중심으로 한 [[게르마니아]] 일대에 퍼져 살게 되었다. 베를린을 위시한 [[브란덴부르크]] 지역은 [[롬바르드족]], [[수에비족]] 등이 살았다. 375년 [[훈족]]이 유럽에 당도하자 잔혹한 훈족을 피해 100여 년에 걸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대이동의 결과 원래 엘베강 동쪽에 살았던 게르만족들은 대부분 [[엘베 강]] 서쪽으로 이동했다.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지역에 살던 수에비족과 롬바르드족 등도 훈족을 피해 각각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등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 정착했다. 453년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죽고 훈족이 갑자기 멸망하자 엘베 강 동쪽의 드넓은 동유럽 지역은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 그러자 5~6세기에 걸쳐 그자리에 [[슬라브족]]이 내려왔고 베를린을 비롯한 브란덴부르크 일대에는 슬라브의 일파인 벤드족 등이 정착했다. 10세기 [[독일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이 잇달아 세워진 후, [[오토 대제]]가 [[마자르족]]의 침공을 종식시켰고, 이후 [[부족 공국|작센 공국]],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 등을 중심으로 당시 슬라브인들이 살고 있는 엘베 강 동쪽을 수복하려는 [[동방식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1100년대에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알브레히트[* 원래 [[안할트]]를 통치하던 아스카니아 가문 출신으로 사후 아스카니아 가문은 작센계, 안할트계, 브란덴부르크계로 갈라졌다.]를 위시한 독일인들이 벤드족이 살고 있는 엘베 강 동쪽 지역을 공략했고 1157년 신성 로마 제국이 브란덴부르크 일대를 복속하면서 베를린 지역은 다시 게르만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이때 베를린이 형성되었으나 초기에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슈프레 강]]의 북동쪽 둑에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때에는 슈프레 강의 섬에서 쾰른(Kölln)[* 서쪽의 대도시 [[쾰른]]과는 철자가 하나 다르다. 베를린이 확장하면서 노이쾰른(Neukölln) 구가 생겨났고 쾰른은 알트쾰른(Altkölln)이 되었다. 현재는 베를린 왕궁을 경계로 서쪽은 박물관섬(Museumsinsel), 동쪽은 어부섬이라는 뜻의 피셔인젤(Fischerinsel)로 불린다.] 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통상의 중심지였던 쾰른이 1237년 도시로 승인되었으며, 1244년 베를린 또한 도시법으로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1307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이 그들의 공동 방어를 위한 연합을 설립, 공통의 시청사를 지었다. 그뒤 [[한자동맹]]에 가입하여 상업도시로 발전하였고, 다른 한자동맹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상거래의 자유, 도시자치를 위해 영주와 싸우면서 14세기에는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로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1415년 [[호엔촐레른 가문]]의 [[뉘른베르크]] 성주 프리드리히 6세가 [[독일왕]] [[지기스문트]]로부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브란덴부르크)|프리드리히 1세]]로 임명된 뒤부터 [[변경백]]의 권력이 약화되기도 했으나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브란덴부르크)|프리드리히 2세]][* [[프리드리히 대왕]]과 다른 인물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는 프리드리히 4세.] 때 베를린-쾰른은 자치도시로서의 특권을 빼앗기고 다시 분리되어 군주의 행정 아래 들어갔다. 그 뒤 베를린과 쾰른은 상업도시로서의 지위는 떨어진 반면, 쾰른 북부에 호엔촐레른 가문의 성[* 이 성이 베를린 성(Berliner Stadtschloss)의 기원이다.]이 세워짐으로써 왕궁·관청도시로 발전하였다. 1486년 선제후 [[요한 치체로]]가 베를린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수도로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종교 개혁]] 시기인 1539년에 선제후 [[요아힘 2세 헥토어|요아힘 2세]]는 베를린 근처 슈판다우(Spandau)에서 [[마르틴 루터]]의 주관으로 [[루터교회|루터파]]로 개종[* 단, 개인적인 개종이었고 브란덴부르크 국가 단위 개종은 황제 [[카를 5세]]의 눈치를 보느라 보류하고 있었다.]하였고, 1555년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루터파가 공인되면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전체에 종교개혁을 실시했다. 요아힘 2세의 아들 [[요한 게오르크]] 선제후는 서부 독일의 루터교도 및 유대인 등을 받아들였고, 상공업을 발전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