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벨기에 (문단 편집) === [[지역갈등]][anchor(벨기에의 지역갈등)] === >La Wallonie aux Wallons, la Flandre aux Flamands et Bruxelles aux Belges. >왈롱을 왈롱인에게, 플란데런을 플란데런인에게, 브뤼셀을 벨기에인에게. >---- >알베르 모켈이 1897년 [[http://www.axl.cefan.ulaval.ca/europe/belgiqueetat_histoire.htm|Mercure de France]]에 기고한 짧은 문구 >Laissez-moi Vous dire la vérité, la grande et horrifiante vérité : il n’y a pas de Belges. >J’entends par là que la Belgique est un État politique, assez artificiellement composé, mais qu’elle n’est pas une nationalité. >(…) Vous régnez sur deux peuples. Il y a, en Belgique, des Wallons et des Flamands ; il n’y a pas de Belges. >---- >[[알베르 1세|폐하]]께 중대하며 공포감을 주는 진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벨기에인은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벨기에는 정치적으로 충분히 인위적으로 구성된 국가이지만 민족이 하나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중략) 폐하께서는 두 민중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벨기에에는 [[왈롱]]인과 [[플란데런]]인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벨기에인은 없습니다.[* [age(1912-08-15)]년이 지난 지금은 연방 국가로서의 벨기에로 유지 중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지역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인용문에 브뤼셀이 없는 이유는 지역으로서의 브뤼셀은 1989년이 돼서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왈롱과 플란데런도 행정구역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어)공동체 운동 진영 혹은 정체성에 가까웠고 브뤼셀 사람도 자신의 모국어에 따라 왈롱 혹은 플란데런에 속했다.] >---- >[[http://connaitrelawallonie.wallonie.be/sites/wallonie/files/jules_destree_lettre_au_roi_1912.pdf|왈롱과 플란데런의 분리에 대해 국왕께 올리는 편지]] 중에서 - 쥘 데스트레, 1912[* 이 편지는 벨기에 프랑스어권 정치인이었던 쥘 데스트레가 1912년에 [[알베르 1세]]에게 보낸 편지로 A4용지 16페이지 정도 된다. 내용이 엄청 길지만 중요한 부분을 추리면 인용문과 같다. 쥘 데스트레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왈롱과 플란데런의 행정적 분리를 주장했고 이 내용이 편지 끝부분에 쓰여져 있다. 편지는 전달되었지만 국왕이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행정적 분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https://blog.naver.com/santa_croce/220667517638|벨기에 이야기: 두 지역의 뒤바뀐 운명 그리고 벌어지는 격차]] [[https://blog.naver.com/santa_croce/220667876495|벨기에는 왜 EU 체제 성공의 시금석일까?]] [[https://blog.naver.com/santa_croce/220666883737|두 개의 벨기에와 언어 전쟁]] [[언어]]가 다르기도 하고 지역 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 경제적으로 쇠락된 [[왈롱]] 지방과 현 주도권을 잡고 있는 [[플란데런]] 지방의 갈등은 정부(정확히는 내각) 성립까지 후퇴시켰다. 왈롱에 지원 정책이 세워지면 플란데런 지역은 또 여기에 반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던 플란데런과 왈롱이 별도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면서, 이미 연방 국가긴 하지만 양쪽 모두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세력이 심각하게 커져서 [[스위스]]같은 [[연방제]]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연방]](federation)을 넘어서 [[국가 연합]](confederation)같은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로 변경될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더 나가서 아예 별개의 국가들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 이는 [[N-VA]]에서 주장하는 개혁이다. 오래전부터 주장해오고 있으나, 이것이 국회에 통과되려면 개헌이 되어야하고 당연히 왈롱 측에서 반대를 외치고 있다. N-VA가 왈롱을 상대로 논란이 되는 언행을 많이 보여와서 정당 홈페이지의 [[https://english.n-va.be/frequently-asked-questions|자주 묻는 질문]]에 관련 내용이 전부 쓰여져 있다.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런지 표면적으로는 "N-VA는 급진적인 독립을 원하지 않으며 국가 연합으로의 전환은 정치 대립을 줄이기 위한 것이고 최종목표는 EU 회원국에 플란데런이라는 이름으로 오르는 것이나 그 절차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서는 [[브뤼셀]] 주민의 표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쓰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된 영상을 올려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 거의 매년 여러 일로 지방들이 서로 분리하려고 난리다. 2009년 여름에도 총리가 최후 수단인 [[의회해산]]권을 발동하였는데 새로 당선된 총리가 모든(7개)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 무효가 되었고, 거의 반 년 간 정부 수반이 없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왕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벨기에 국왕은 국가 원수지 정부 수반이 아니다. 물론 벨기에가 아예 쪼개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왕가의 존재라는 점도 어느정도 있다. 다만 연방 정부의 공무원들은 각 부처의 차관 등이 공석인 장관을 대리하여 일하긴 했으니 완전한 의미의 무정부는 아니었다. 이 난리 끝에 겨우 새로 정부를 만들었더니,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당 중 하나가 탈퇴해버렸다.[* 네덜란드어권 정당 둘([[기독교 민주당과 플람스|기독당]], [[Open VLD|자유당]])에 프랑스어권 정당 셋(기독당, 자유당, [[사회당(벨기에)|사회당]])이 참여했는데, 네덜란드어권 자유당이 탈퇴했다.] 나머지 네 정당만으로도 과반수는 유지할 수 있으나, 새 총리가 네덜란드어 기독당 소속인데 네덜란드어 정당 하나가 프랑스어 정당 셋과 연정하면 네덜란드어권에서 배신자라고 비난받을 것이 자명했다. 결국 여당들은 또다시 의회와 내각을 다 해산해버렸다. 2010년 6월 중순의 총선 결과, 플란데런 지방은 분리주의당이 여당(온건파 N-VA와 강경파 '[[플람스의 이익|VB]]'를 합쳐서 40%)이 되고, 왈롱 지방은 [[사회당(벨기에)|사회당]](PS)이 여당이 되었다. N-VA는 벨기에 총리는 왈롱에게 주고, 자신은 플란데런 통치에 나서는 대신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를 얻으며 점차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보면 꼭 그렇게 온건하게 하지만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언제 분리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총선 후 200일이 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않아, 2011년 1월 23일 브뤼셀에 2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무정부 상태를 끝내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으나, 캠페인을 펼친 사람들도 [[턱수염]]이 땅에 닿을 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말까지 남겼다. 2011년 3월 30일에 무정부 상태로 290일째를 맞이하면서 무정부 상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화가 난 국민들은 지연된 정부 수립 날짜만큼 [[누드]] 시위를 벌였다. 벨기에 정부는 6월 3일까지 무정부 상태로 남아 마침내 1년을 넘겼다. 결국 2011년 9월 15일, 459일만에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 네덜란드어: Brussels-Halle-Vilvoorde, 프랑스어: Bruxelles-Hal-Vilvorde. 알레-빌보르데 지역과 브뤼셀 수도권 지역을 합친 지역. 알레-빌보르데는 플람스 브라반트 주의 서쪽 절반에 해당한다.] 선거구 분할의 합의를 이뤘고, 그 뒤에도 지체하다가 11월 25일 S&P가 벨기에의 신용 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 정파들이 회동해 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 적자 감축에 합의함에 따라 12월 6일, 사회당의 엘리오 디 루포를 새 총리로 하는 내각이 겨우 출범해 무정부 상태는 끝났다. [[https://www.ifop.com/wp-content/uploads/2018/03/1586-1-study_file.pdf|2011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왈롱에서는 국가 분열 시 39%가 프랑스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반대로 플란데런 역시 분리되면 바로 네덜란드와 합치자는 여론이 있다. 이쪽을 강하게 내세우는 쪽이 극우파들이라 일단 호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극우파에 대한 지지와는 별도로 네덜란드와 통합하려는 생각 자체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대체로 플란데런은 우파 성향, 왈롱은 좌파 성향이 강한 편이다. 다만 왕실 지지도는 프랑스어권이 네덜란드어권보다 2배 이상 높다. 국가 수장인 왕은 매번 두 지방들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고생하지만, 영향력은 없다. 덕분에 왕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좀 많이 불쌍한 사람일 정도다.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던 200여일 간 왕이 지명한 조정관이 플란데런 다수당인 N-VA와 왈롱 다수당인 PS의 협상을 주도했지만 조정관만 9번 바뀌고 해낸 것은 없었다. 벨기에의 국가 표어인 '통합이 힘을 만든다'도 저러한 분리 시도를 극복하고 단결된 국가를 만들자는 뜻에 가깝다.[* 원래 이 표어가 벨기에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혁명 이후인 [[https://parismatch.be/actualites/societe/59391/le-21-juillet-pour-les-nuls-cinq-choses-a-savoir-sur-la-fete-nationale-belge|1831년]]이므로 당시에는 지역정부나 공동체 혹은 언어경계 같은 개념이 없었다. 당시에는 좌파였던 자유주의 진영과 우파였던 가톨릭 진영이 있었는데 이 두 진영의 통합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현실이 표어와 동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 참 [[반어법]]적으로 잘 만든 표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되었다. 벨기에는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을 GeoTLD로 등록했다. 반면 왈롱 정부는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까우니 도메인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제 이런 최상위 도메인은 민간 단체·기업이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왈롱의 민간에서 나서서 왈롱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할 수도 있다. 브뤼셀 수도권은 언어 공동체 2개가 중첩되는 곳으로 양측에게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만약 플란데런과 왈롱이 분리되면 대체 어디에 속하게 해야 할 것인지 애매하다. 그래서 아예 독립국이 된 플란데런과 왈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condominium)으로 만들거나, 아예 어디에도 안 속하는 별도의 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2010년 9월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인 [[브뤼셀]] 시민들이 국가가 남북으로 쪼개진다면 브뤼셀은 별개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브뤼셀을 [[유럽연합]]의 [[수도(행정구역)|수도]] 내지는 [[유럽]]의 특수 지역으로 만들어 플란데런과 왈롱 모두와 합쳐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왈롱 지방과 직접 닿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브뤼셀 수도권이 독립국 플란데런과 왈롱의 공동 통치 구역이 되거나 왈롱에 속하게 될 경우 플란데런 지방 일부를 수도권으로 옮겨서 왈롱 지방과 직접 경계선이 닿게 하자는 말도 있다. N-VA는 어떻게든 브뤼셀을 플란데런 안에 두고 싶어한다. 2019년 선거 결과를 보면 브뤼셀에서 N-VA가 순위권에 오른 지역은 한 지역도 없기 때문에 개헌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고 그 다음 과정인 독립국이 될 가능성 역시 낮다. 독일어 공동체는 벨기에가 분리될 경우 왈롱 지방에 속하니 왈롱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그냥 왈롱인들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 주변 국가에 합병되거나 브뤼셀 수도권의 월경지로 편입되는 방안도 추진되기 어렵다. 독일어 공동체 입장에서는 벨기에가 쪼개질 경우 고르기가 곤란한 선택지들만 놓이게 된다.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을 마지막 벨기에인들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벨기에에 통합되었고, 마지막까지 통합된 벨기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뿐만 아니라 독일어권 벨기에인들의 '마지막 벨기에인'이란 별명은 역사적 명칭 농담이기도 하다. 벨기에란 이름 자체가 라틴어로 Germania Belgica, 즉 '저지대령 독일'의 '저지대'란 단어가 나라 이름으로 굳은거고[*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즉, 원래 어원을 풀어 보면 벨기에는 라틴어고, 네덜란드는 현대 네덜란드어가 된 당시 중세 유럽의 서게르만어 저지대 방언이지만 의미는 '낮은 땅'이란 뜻으로 똑같다.], 원래는 베네룩스 삼국 저지대 일대의 주민들이 스스로는 그냥 ('독일인'이 아니라) '프랑스와 붙어있는 저지대의 독일어권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던 중세의 유산이 국명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별개 국가, 국민 공동체로서 '네덜란드'와 다른 저지대권이 독일권에서 떨어져나온게 된 계기가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잇다른 옛 저지대 17개주의 재편성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들이 터진 16세기, 17세기보다 훨씬 일찍 가장 가까운 유럽 대륙의 이웃으로 깊게 교류했던 잉글랜드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을 도이치, 즉 '''더치'''로 인식했고, 따라서 영어권에서 아직도 '네덜란드의, 네덜란드인'을 뜻하는 단어가 'Hollander', 'Netherlander'가 아니라 'Dutch'인 것이다. 2006년 12월 13일, 왈롱 지역의 공영 방송인 RTBF에서 갑자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자적인 국가로 분리되기로 선언했다는 뉴스 속보를 방송한다. 평소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 프랑수아 드브리고드(François de Brigode)[* 57세인 2019년까지도 RTBF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가 진행했으며 벨기에의 유명인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이 방송되었기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당시 해외에 있던 왕자 필리프(현 국왕)는 측근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건 사실 페이크 다큐였고,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시작한지 30분이나 지나서, 방송 위원회의 경고를 받고서야 자막으로 표시를 했다. 자세한 내용은 [[RTBF]] 문서를 참고. 이러한 벨기에의 갈등이 [[http://www.eknews.net/xe/437470|과장]]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무정부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극단적인 대립이 왈롱 주민과 플란데런 주민 간의 대립이 극단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https://www.rtbf.be/info/belgique/detail_wallons-et-flamands-votent-differemment-mais-pensent-presque-la-meme-chose?id=10238418|RTBF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왈롱인은 취업 문제를, 플란데런인은 이민자 문제를 걱정한다는 차이점을 제외하고 정치성향의 차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벌어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기사에 있는 그래프와 같이 프랑스어권 정당과 네덜란드어권 정당들이 각자가 속한 두 지역의 이익을 위해 유권자들의 평균적인 정치성향보다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벨기에 지역갈등의 시작은 프랑스어 단일 [[http://www.histoire-des-belges.be/au-fil-du-temps/epoque-contemporaine/flamands-et-wallons|언어정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성향, 사회문화, 경제 갈등 등의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렇기에 지역갈등의 원인도 다양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