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탄 (문단 편집) === 현대사 === 1949년 8월 8일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사실 부탄의 영토 안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기 때문에 인도가 겪은 것과는 달리 영국의 착취가 없었고, 따라서 반영 감정은 그리 없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일부 영국인들이 각박한 사회가 싫어서 조용하게 살고자 찾아오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국이 부탄을 식민지화한 것은 1800년대 말에 서방의 나라들이 아시아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 부탄의 지형적인 요건이 영국 육군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험준한 산악 지형은 공격하기는 어렵지만 지키기는 쉽다. 종교적으로도 같고, 민족도 티베트계들이 대다수인 부탄이었기에 이웃 티베트를 큰형님 나라로 우대하였으나, 중국군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중국에게 정복당하면서 [[시킴]]이나 [[레]] 같은 라다크 지방과 남티베트 일대의 다른 티베트계 작은 왕국들이 혼란에 빠진 끝에 친인도측에서 집권하였다가 인도를 불러들여 인도에게 합병[* 그래서 남티베트계 나라들이 있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중국 땅이라고 중국인들은 주장하지만 인도에서는 무시하며 군대를 주둔시켜서 악사이친처럼 허무하게 중국에게 정복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탄은 이에 대하여 강제로 합병당한 게 아니라 원해서 합병한 것인데 왜 중국이 끼어드느냐며 인도 편을 든다. 사실 몇몇 작은 왕국들은 인도에게도 반협박도 당하던 터라 불쾌해했지만, 결국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게 병합된 곳이 대다수였다.]된 것과 달리, 부탄은 독립국을 유지하였다. 더하여 이전 영국의 속국 시절 때부터 인도에게 외교권을 넘겨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만, 부탄은 청나라의 식민지였다가 이제는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더더욱 친인도 성향이 되었다. 물론 부탄이 인도를 완전히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 방면 역시 최소한의 경계는 하고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2&aid=0003205161|#]] 다만 중국의 위협이 대체로 인도의 경제적 종속보다 훨씬 위험하므로 대체로는 친인도 성향을 따르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