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활절 (문단 편집) == 의미 == [[파일:Andrea di Bonaiuto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jpg|width=100%]] [* 피렌체 Santa Maria Novella 성당의 에스파냐 경당{{{-2 (Cappellone degli Spagnoli)}}} 프레스코화 by Andrea di Bonaiuto{{{-2 (제작:AD 1365-1367)}}}. 죽음의 권세를 때려잡고, 저승에서 어둠의 사슬에 묶여있는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프레스코화이다.] ||<-2> [[https://www.academic-bible.com/en/online-bibles/novum-testamentum-graece-na-28/read-the-bible-text/bibel/text/lesen/stelle/55/60001/69999/ch/3ffa829d37035cd36a10c251948932d6/|{{{[}}}원문{{{]}}}]][* 로마자 전사: ^^4^^synetaphēmen oun autōi dia tou baptismatos eis ton thanaton, hina hōsper ēgerthē Christos ek nekrōn dia tēs doxēs tou patros, houtōs kai hēmeis en kainotēti zōēs peripatēsōmen. ^^5^^ei gar symphytoi gegonamen tōi homoiōmati tou thanatou autou, alla kai tēs anastaseōs esometha· ^^6^^touto ginōskontes hoti ho palaios hēmōn anthrōpos synestaurōthē, hina katargēthēi to sōma tēs hamartias, tou mēketi douleuein hēmās tēi hamartiāi· ^^7^^ho gar apothanōn dedikaiōtai apo tēs hamartias. ^^8^^ei de apethanomen syn Christōi, pisteuomen hoti kai syzēsomen autōi, ^^9^^eidotes hoti Christos egertheis ek nekrōn ouketi apothnēiskei thanatos autou ouketi kyrieuei. ^^10^^ho gar apethanen tēi hamartiāi apethanen ephapax· ho de zēi, zēi tōi theōi. ^^11^^houtōs kai hymeis logizesthe heautous {{{[}}}einai{{{]}}} nekrous men tēi hamartiāi zōntas de tōi theōi en Christōi Iēsou.] ^^4^^συνετάφημεν οὖν αὐτῷ διὰ τοῦ βαπτίσματος εἰς τὸν θάνατον, ἵνα ὥσπερ ἠγέρθη Χριστὸς ἐκ νεκρῶν διὰ τῆς δόξης τοῦ πατρός, οὕτως καὶ ἡμεῖς ἐν καινότητι ζωῆς περιπατήσωμεν. ^^5^^εἰ γὰρ σύμφυτοι γεγόναμεν τῷ ὁμοιώματι τοῦ θανάτου αὐτοῦ, ἀλλὰ καὶ τῆς ἀναστάσεως ἐσόμεθα· ^^6^^τοῦτο γινώσκοντες ὅτι ὁ παλαιὸς ἡμῶν ἄνθρωπος συνεσταυρώθη, ἵνα καταργηθῇ τὸ σῶμα τῆς ἁμαρτίας, τοῦ μηκέτι δουλεύειν ἡμᾶς τῇ ἁμαρτίᾳ· ^^7^^ὁ γὰρ ἀποθανὼν δεδικαίωται ἀπὸ τῆς ἁμαρτίας. ^^8^^εἰ δὲ ἀπεθάνομεν σὺν Χριστῷ, πιστεύομεν ὅτι καὶ συζήσομεν αὐτῷ, ^^9^^εἰδότες ὅτι Χριστὸς ἐγερθεὶς ἐκ νεκρῶν οὐκέτι ἀποθνῄσκει, θάνατος αὐτοῦ οὐκέτι κυριεύει. ^^10^^ὃ γὰρ ἀπέθανεν, τῇ ἁμαρτίᾳ ἀπέθανεν ἐφάπαξ· ὃ δὲ ζῇ, ζῇ τῷ θεῷ. ^^11^^οὕτως καὶ ὑμεῖς λογίζεσθε ἑαυτοὺς [εἶναι] νεκροὺς μὲν τῇ ἁμαρτίᾳ ζῶντας δὲ τῷ θεῷ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 ||{{{[}}}가톨릭 새번역{{{]}}} ^^4^^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 당시의 세례 예식이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이 표현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표현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세례를 받을 때 자기 몸을 물속에 푹 잠그듯이 자신의 전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 푹 잠기게 한 사람이다. 세례는 단지 세례받는 사람을 예수의 제자{{{-2 (추종자)}}}로 만드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에 결합시키는 예식이라는 뜻이다. 바오로는 이때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잠그는 행위'는 그분의 죽음이라는 물에 잠그는 행위를 포함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오로에 의하면 성부에 대한 최고의 순종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최고조로 표현한 것이다{{{-2 (로마 5,8; 8,32.35.39; 필리 2,6-11)}}}.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분과 결합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신원에 합당하게 살려면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죄와 관련해서는 죽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6,1-14에서 바오로가 말하고자 하는 권고의 요지이다.」 {{{-2 (김영남 신부 주해, [[https://www.pauline.or.kr/bookview?code=23&subcode=06&gcode=bo1001892&cname=|《로마서》]], 성서와함께, 2014, pp.264-265.)}}}]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바오로는 그냥 '{{{[}}}우리가{{{]}}} 죽어'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라고 했습니다. 둘 다 죽음이기는 하지만 같은 종류의 죽음은 아닙니다. 전자는 육체의 죽음이고 후자는 죄의 죽음입니다.」 {{{-2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예비신자 교리교육》 10.10 in [[https://m.pauline.or.kr/?pId=FMGD0020&code=01&subcode=06&gcode=bo1002890&cname=book|《교부들의 성경 주해(신약성경VIII) 로마서》]], 장인산 한동일 번역, 분도출판사, 2016, p.250.)}}}]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결합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심피토이{{{-2 (''symphytoi'')}}}는 본래 나무를 접붙일 때 사용되던 용어다. 접목된 어린 나뭇가지는 기존의 나무가 공급하는 수액을 받아 그 나무와 하나 되어 자라난다. 이 이미지를 통해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생명'을 표현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접목된 존재다. 말하자면 나뭇가지 안에 수액이 흐르고 있듯이,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 안에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2 (요한 15장 참조)}}}.」 {{{-2 (김영남, [[https://www.pauline.or.kr/bookview?code=23&subcode=06&gcode=bo1001892&cname=|같은 책]], p.266)}}}]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7^^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에서 벗어났다{{{-2 (해방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더는 죄를 지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죄의 지배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를 받았어도 아직 '육의 나약함'{{{-2 (6,19 참조)}}}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어떤 근거로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바오로는 8-11절에서,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2 (2코린 5,21)}}} '그들의 죄 때문에'{{{-2 (1코린 15,3의 '우리의 죄 때문에' 참조)}}} 속죄의 죽음을 겪으셨고{{{-2 (3,25; 4,25; 5,8; 8,3 참조)}}}, 부활하여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그들이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2 (김영남, [[https://www.pauline.or.kr/bookview?code=23&subcode=06&gcode=bo1001892&cname=|같은 책]], pp.267-268)}}}] ^^8^^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2 ''in Christ''}}}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2 ''in Christ''}}} 머문다. ... [[https://bible.cbck.or.kr/Knbnotes/Bible/1Cor/15|1코린 15,21-22]]에서 바오로는 죽음이 한 사람{{{-2 (아담)}}}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죽은 이들의 부활도 한 사람{{{-2 (그리스도)}}}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한다. 아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https://bible.cbck.or.kr/Knbnotes/Bible/2Cor/2|2코린 2,14-4,6]]과 [[https://bible.cbck.or.kr/Knbnotes/Bible/1Cor/15|1코린 15장]]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그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집단적 인물로 본다. 이전 인간은 아담의 모습을 입었지만, 이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입는다.」{{{-2 (Frank J . Matera, [[https://www.pauline.or.kr/search?1=1&gc=&init=Y&stype=A&d_s=%EC%96%B4%EB%A6%B0%EC%96%91|《바오로 신학 - 하느님의 구원 은총》]]}}}{{{-5 ''[[https://www.amazon.com/Gods-Saving-Grace-Pauline-Theology/dp/0802867472|God's Saving Grace: A Pauline Theology]]''}}}{{{-2 ,한충식 옮김, 바오로딸, 2016, pp.133-136)}}}] ^^9^^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10^^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개신교 새번역{{{]}}} ^^4^^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5^^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6^^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7^^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8^^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9^^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10^^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로마서 6장 4-11절 || 사실 교리교육을 충실히 받은 게 아니라면, 예수의 부활이 그리스도교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확 와닿지는 않을 수 있다. 심지어는 '부활'을 단지 예수의 위대함을 입증할 뿐 인간 개개인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종의 트로피 같은 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교회의 부활, 더 나아가서 교회가 불러모으는 인류의 부활과 결합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곧 바울로가 표현하는대로, '''예수의 죽음에 함께한다면, 예수의 부활에도 함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예수의 부활은 교회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물론 지상의 시간으로는 예수의 부활이 먼저 드러나지만, 예수의 부활과 교회의 부활은 동떨어지고 관련 없는 개념이 결코 아니며, 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에서 그리스도가 __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__했다고 말하는 건, '''"죽은 이들을 뒤에 남겨 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https://maria.catholic.or.kr/mi_pr/sungmu/sungmu.asp?menu=sungmu&sunseo=1&gomonth=2023-04-08&stype=re|성 토요일 성무일도의 독서 기도]]에서 나오는 교부들의 훌륭한 강론에서 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들을 끌어 올려 함께 데리고 가심을 의미한다."'''{{{-2 (하느님의 종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5 ''Hans urs von Balthasar''}}} 추기경, [[https://m.pauline.or.kr/?pId=FMGD0020&code=04&subcode=01&gcode=bo0020433&cname=book|《신앙고백: '사도신경' 묵상》]]{{{-5 ''[[https://www.amazon.de/Credo-Meditationen-Apostolischen-Glaubensbekenntnis-Kriterien/dp/3894113324|Credo: Meditationen zum Apostolischen Glaubensbekenntnis]]''}}}, 대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장홍훈 옮김, pp.49.)}}}] >부활절 전 성 토요일부터 죽음은 정화{{{-2 (淨化)}}}가 된다. 돌아가신 주님께서는 이날 영원히 버려지는 상황에서 벗어나 하늘로 오르는 길을 여셨다. 이는 사랑으로 인도된 죽은 이들을 정화시키는 불이다. 구약에서는 이러한 것이 없었다. 구약에서는 오직 죽은 이들이 머무는 곳인 셔올{{{-2 (Sheol)}}}, 곧 저승이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깊숙이 내려간 곳에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신 것이다. >---- >-하느님의 종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5 ''Hans urs von Balthasar''}}} 추기경, [[https://m.pauline.or.kr/?pId=FMGD0020&code=04&subcode=01&gcode=bo0020433&cname=book|《신앙고백: '사도신경' 묵상》]]{{{-5 ''[[https://www.amazon.de/Credo-Meditationen-Apostolischen-Glaubensbekenntnis-Kriterien/dp/3894113324|Credo: Meditationen zum Apostolischen Glaubensbekenntnis]]''}}}, 대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장홍훈 옮김, pp.44-45. 또한 신약의 사건에 비추어서 구약을 읽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성경 독서법에 따라서, 출애굽기의 이집트 탈출 사건도 새롭고 완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곧,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이집트 탈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말론적 이스라엘'{{{-2 (=교회=하느님의 백성)}}}을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새로운 탈출{{{-2 (Exodus)}}}의 예형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부활절을 '파스카'라고 부른다. 파스카 성야에 울려퍼지는 아래의 파스카 찬송에서도, 그리스도론적으로 재해석된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이 부활절에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Qui pro nobis ætérno Patri Adæ débitum solvit, et véteris piáculi cautiónem pio cruóre detérsit. 외아드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영원하신 아버지께 아담의 빚을 갚으시고 거룩한 피로 옛 죄를 씻으셨나이다. Hæc sunt enim festa paschália, in quibus verus ille Agnus occíditur, cuius sánguine postes fidélium consecrántur. 이 파스카 축제에서 참된 어린양 죽임을 당하시어 문설주에 바른 당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나이다. Hæc nox est, in qua primum patres nostros, fílios Israel edúctos de Ægýpto, Mare Rubrum sicco vestígio transíre fecísti. 이 밤에 주님께서는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자손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시어 홍해를 마른 발로 건너게 하셨나이다. Hæc ígitur nox est, quæ peccatórum ténebras colúmnæ illuminatióne purgávit. 이 밤에 불기둥의 빛으로 죄악의 어두움을 몰아내셨나이다. Hæc nox est, quæ hódie per univérsum mundum in Christo credéntes, a vítiis sǽculi et calígine peccatórum segregátos, reddit grátiæ, sóciat sanctitáti. 이 밤에 온 세상 어디서나 세속의 악습과 죄악의 어두움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구하시어 은총을 다시 주시고 거룩하게 하여 주셨나이다. Hæc nox est, in qua, destrúctis vínculis mortis, Christus ab ínferis victor ascéndit. 이 밤에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사슬을 끊고 부활하시어 저승에서 승리하여 오르셨나이다. ---- Præconium paschale (Exsúltet)[* 『Missale Romanum』, Editio Typica Tertia (2008), pp.342-347.] 파스카 찬송[* 『로마 미사 경본』 371-372면,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https://missa.cbck.or.kr/DailyMissa/20230409/15497|원문 열람]]. [[https://missale.cbck.or.kr/Ebook|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번역은 한국 가톨릭의 것을 인용했다.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에서도 행하는 기도이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