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 (문단 편집) == 특징 == 중국사에서 [[후한]] 말~[[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한국에서는 그냥 [[삼국지]]라고만 하면 역사책보다는 본 문서의 연의를 가리킬 때가 더 많다. 심지어 [[삼국지]] 관련 문서에도 역사책에 관한 서술과 연의에 관한 서술이 함께 있다. >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 >“[[진나라]] 평양후 [[진수(역사가)|진수]]가 남긴 [[정사 삼국지|역사 전기]]를 >후학 [[나관중]]이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 삼국지연의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첫머리의 글. 삼국지연의는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책인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책'''이라는 사실을 극명히 알 수 있다. [[연의]](演義)라는 말 자체가 "사실에 내용을 보태서 재미나게 설명한 책이나 창극"[* 엄밀히 말해 재미나게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연극대본'''에 가깝다.]이라는 뜻이다. 즉, 제목을 의역하자면 '역사 기반 소설 삼국지'쯤 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실제 역사는 절대로 이와 똑같지 않다. 따라서 [[정사 삼국지]]나 [[자치통감]], [[후한서]], [[진서]] 등 정사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연의를 역사서로 받아들이면 역사를 굉장히 잘못 알 수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하지만 역사의 굵은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참고 가치가 있으며 "연의는 무조건 거짓이고 정사는 항상 참이다" 라는 마인드로 추측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한국 역사 드라마나 역사 영화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극]]도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거나 재미를 위해 창작한 장면도 많으나,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는 아니고 어느 정도 큰 줄기와 틀은 역사에서 따온 것이기에 적어도 그 시대의 분위기 정도는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흥미 유발'''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사극을 보고 등장인물들에 흥미가 생겨 직접 조사해 보고, 그러면서 역사를 배우듯이, 삼국지연의도 마찬가지다. 삼국지연의의 바탕이 된 역사서 [[정사 삼국지]]는 재미로 읽으라고 만든 책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되도록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남기기 위해 만든 책이므로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어렵고, 극적인 부분이 적어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인데, 그럼에도 역사학자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 어려운 정사 삼국지를 탐독하는 열의를 보이는 이유는 십중팔구 삼국지연의 덕분이다. 삼국지연의가 아니었으면 정사 삼국지에 관심도 없었을 사람들이 많은데,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그 시대의 분위기도 느끼고, 좋아하는 인물이 생기면서 등장인물들의 실제 모습이 어땠을지 호기심이 생겨 정사 삼국지에도 도전하는 등, 자칫하면 딱딱하고 지루하여 전문가들이 학문적 차원에서 다룰 법한 내용들을 재미있게 각색하여 타국에게까지 널리 퍼뜨린 공로가 있다. 비슷한 상황으로, 코에이 등의 삼국지 게임을 접하고 삼국지 세계에 유입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태생부터가 소설인 연의에 비할 바는 아니나, 진수의 정사 삼국지 또한 후대의 연구에 의해 오류로 판명나거나 왜곡 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다. 이는 저자 진수가 3세기 진나라 시대의 인물이었고, 사료 부족이나 시대의 한계 등으로 실제의 역사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타임머신이 있는게 아닌 이상 그 어떤 역사서도 실제 있었던 일을 완전무결하게 담아내지는 못한다. 때문에 '연의는 허구이고 정사는 참이다'라는 이분법적인 시각보다는, 연의와 이를 바탕으로 한 매체들은 픽션으로서 즐기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목적으로는 다양한 정사서들을 고루 탐독하는 것이 권장된다.][* 현대 작품 중에서 대표적으로 비슷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로마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가면서 읽는 일종의 수필이자 소설로 봐야지, 이 책의 내용을 진짜 로마 역사로 믿어버리면 많이 곤란하다.] 삼국지연의만 읽으면 그 시대에 유독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 쉬우나, 연의의 내용만 주목받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중국이 난세가 되면 그 정도 숫자의 인재들은 항상 나타났다. 물론 [[청나라]]의 고증학자인 조익[* 이십이사차기라는 서적을 지어 청대까지 남아있는 정사서 22종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비판을 남겼다.]의 의견처럼 50년 남짓되는 시간에 많은 숫자의 인재가 몰려서 '인재 밀도'는 다른 시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단, 인재가 많았다는 사실과 그 시대의 인재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중국 삼국 시대의 인물 중 후대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들로 학문적으로는 훈고학, 경학의 시조로 꼽히는 [[정현(삼국지)|정현]], 논어의 주석을 남긴 [[하안]], 노자의 주석을 남긴 [[왕필]],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 춘추좌전집해를 남긴 [[두예]], 해서의 개조로 꼽히는 [[종요]], 문학에서 유명했던 [[조조]], [[조비]], [[조식(삼국지)|조식]], 중경신부를 만든 [[순욱]], 정치적으로는 [[위(삼국시대)|위나라]]와 [[서진]]을 건국한 [[조비]]와 [[사마염]], [[둔전제]]를 건의한 [[한호]]나 [[구품관인법]]을 제정한 [[진군]], 사회적으로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 [[오두미도]]를 전파한 [[장로(삼국지)|장로]], 베트남과 관련해서 영향을 끼친 [[사섭]] 등이 손꼽힌다. 한편 일본의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나 한반도의 [[후삼국시대]], 삼국시대 앞 시대 중 하나인 [[초한전쟁]] 시기를 살아간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후대에까지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인물은 많지 않다. 사실 문학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고 그 시대를 만든 삼국의 군주들인 [[유비]], [[손권]]이 조조보다 영향력이 못하다고 할 수도 없다. [[제갈량]] 같은 인물은 저 중에 들어가지 못하는데도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이다.][* 달리 말하면 [[관우]], [[제갈량]]처럼 아예 신으로 섬겨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유관장 등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후대의 온갖 서적에서 이런저런 대조를 위해 회자되는 이러한 인물들이 후대에 사회/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장각 등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무후(제갈량)는 뻔질나게 나오고, 당장 현대에도 동아시아 3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유비, 조조, 공명 정도는 알고 있는데다, 이 시기와 후의 각색으로 만들어진 사자성어도 상당 수가 흔히 쓰이는 정도이니.] 물론 역사학이라는 관점에서 삼국시대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시대는 아니었고, 삼국시대만 특별히 더 대단한 인물들이 활동했던 건 아니므로 과도한 찬양은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무조건 별 볼 일 없는 시대, 별 볼 일 없는 인물들이란 시각도 지양해야 한다는 시각인 것이다. 또한 [[나관중]]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1천 년 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관중]]이 당시 고고학이나 문화인류학의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의 전반적 분위기는 후한 말 당시의 느낌보다는 원나라 말기의 느낌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조조의 백만 대군'이나 관우가 송대 이후에나 등장하는 청룡언월도를 들고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나라 말기쯤 되면 중국에서는 민중 봉기가 크게 일어나면 보통 규모가 수십만 명 정도였다. 그야말로 대륙의 스케일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동양 최고의 고전이자 필독 도서로 인정받는 소설이며[* 반대로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삼국지에 워낙 온갖 교활한 술수와 책략들이 넘쳐 흐르다보니 삼국지를 3번 이상 열독한 사람이라면 그만큼 --사기꾼--지략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각자 특색이 강했던 동아시아 문화권이지만 삼국지에 등장하는 개개인의 인물상이나 명언, 사건 등을 공유하고 있고 생활에 적용하는 등, 동아시아 문화권을 하나로 잇는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정사 삼국지]]와 연의를 헷갈리는 이가 많을 정도다. [[나관중]] 이전에도 삼국지 이야기는 인기가 많았고, 그걸로 벌어먹고 살았던 인물도 많았다. 그 사람들의 대본을 묶은 것이 바로 [[삼국지평화]].[* 다만, [[삼국지평화]]는 삼국지연의와 비교시 꽤 많은 부분이 다르다. 애당초 삼국지평화는 대중에게 그때그때 어필할 만한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으므로, '역사'에 방점을 놓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정사를 뼈대로 하되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담이나 설화등을 채용하여 재미의 추구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대략 7할의 사실과 3할의 허구라는 청나라 학자 [[장학성]](章學誠)의 평이다. [[관우]] 신앙의 기폭제가 되었고 [[촉한정통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현대 삼국지의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소설. 다만 이 모든 것을 나관중 개인이 정립시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이미지를 채용했을 뿐. 삼국지연의의 기반으로 평가받는 [[삼국지평화]]에서도 이미 이와 같은 방향성은 확립되어 있었다. 한때 촉을 옹호하고 위를 비방한 움직임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어보면 오히려 나관중의 시각이 현대의 어설픈 이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리어 나관중은 촉을 은근히 비판한 것이 아니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번역본에서는 대부분 누락되지만 원본에서는 [[절단마공|각 화가 끝날 때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결정적인 부분에서 끝내면서 "그다음을 알고 싶다면 다음 편을 보시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이전의 [[삼국지평화]]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는 증거로도 이해되는데, 강사들이 다음번에 또 들으러 오라고 절단 신공을 구사한 흔적이기 때문. 이후의 연의 판본들은 모두 이 방식을 빌리고 있으며, 심지어 [[쌀과 소금의 시대]]라는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서양 작가가 이 문구를 빌려오기도 했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에서도 이런 문구를 빌려 썼다. 다만 [[황석영 삼국지]]에는 이 문구가 없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생략하였다고 서문에 간단히 언급했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일단 [[유비]]다. 유비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쭉 유비로 주인공을 이어오다가 유비가 사망하는 시점에서 [[제갈량]]으로 주인공이 변경된다. 또한 그 상태에서 주인공인 제갈량은 [[사마의]]와 겨루게 되고 제갈량이 사망하면 주인공 자리를 [[강유]]에게로 넘기게 된다. 강유는 종회의 반란 직후까지 주인공으로 활약하다가 사망하며, 삼국지연의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사실상 끝이 난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이렇게 변경된다. 사실 100년 가까이 되는 기간이 삼국시대의 흐름인지라 한 명이 주인공을 차지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기도 하다.[* 참고로 보통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184년부터 오가 멸망하는 280년까지를 연의의 배경으로 삼는데 이 기간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은 [[사마부]](180년 ~ 272년)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태어나서 서진 건국까지 보고 죽었다.] 그리고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전까지의 초반부의 경우, 군사적 업적에서는 활약에 대한 기록이 적다보니[* 물론 일국의 황제까지 지냈던 유비인 만큼 기록 자체는 결코 적진 않지만 초반부의 기록은 상당히 부실한 편이다. 황건적 토벌 이후 유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띄엄띄엄 있는데, 예를 들어 본전에는 '적에게 패해 공손찬에게 달아났다'고 되어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적이었는지는 서술되어있지 않아 배송지가 주석으로 붙힌 영웅기 기록에 따라 유비가 싸웠다는 동탁군이라는 추정이 있다.(동탁군 중 어떤 장수인지는 명시되어있지 않다) 이후 공손찬 휘하에서 평원상이 되었다가 원소군과 싸우기도 하고 이후 서주의 군벌이 되는 등 명망이 높아지는데 구체적으로 뭘 잘한 건지 얼마나 잘 싸운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원래 의병장 출신으로 현위직 하나 받았던 유비를 조조가 좌장군이란 높은 벼슬(오자양장 중 하나인 우금이 받은 가장 높은 직위이다)을 주면서 포섭할 정도로 거물이 된 것을 보면 뭔가 활약이 뛰어났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 부분에서는 조조가 주인공 수준으로 포커싱을 받는다. 이야기의 전개 흐름이 작품 전체의 주인공인 유비와 동등한 수준의 비중을 가질 정도다. 그런데 대부분의 삼국지연의는 [[정비석 삼국지]]라든가 [[고우영 삼국지]]라든가 대부분 [[제갈량]]이 사망하면 완결된다. 연의의 시작이 184년 [[황건적의 난]]이고 [[제갈량]]이 죽은 건 234년으로 딱 50년이다. [[제갈량]] 사후에 진이 삼국을 통일한 것이 280년이므로 실제로 [[제갈량]]의 죽음은 역사상에서 보면 중간 반환점 정도인 셈이다. [[고우영 삼국지]]의 경우 제갈량이 사망한 후 [[사마염]]이 최대한 얌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씨, 조씨, 손씨들을 비웃는 장면 하나가 끝이며 [[사마염]]이 중국 전토를 통일했다는 한마디만 나오고 완결된다. [[본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이충호 삼국지는 그나마 제갈량 사후부터 서진 통일까지의 묘사가 건재한 편이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번역한 것이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문서를 참고. 또한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며 분량이 엄청나게 길어서 원문으로 약 80만 개의 단어로 쓰인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이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삼국지연의는 역대 가장 쪽 수가 많은 소설 10위, 역대 가장 단어 갯수가 많은 소설 20위에 해당한다.[[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longest_novels|출처]] 한국 번역본 기준으로는 대부분 기본 10권의 총합 페이지는 3,000쪽이 넘어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