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임이사국 (문단 편집) == 구성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P5countries.png|align=center]] ||<-5> '''{{{#fff 상임이사국}}}''' || ||<|3>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출력= ,크기=45)][br][[미국]] ||<|3> [include(틀:국기, 국명=영국, 출력= ,크기=45)][br][[영국]] ||<|3>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출력= ,크기=45)][br][[프랑스]] || [include(틀:국기, 국명=대만, 출력= ,크기=45)][br][[대만|중화민국]][br],,,(~1971),,, || [include(틀:국기, 국명=소련, 출력= ,크기=45)][br][[소련]][br],,,(~1991),,, || ||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 || [[소련 해체|↓]] || || [include(틀:국기, 국명=중국, 출력= ,크기=45)][br][[중국|중화인민공화국]] || [include(틀:국기, 국명=러시아, 출력= ,크기=45)][br][[러시아]] || 상임이사국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프랑스는 포함되지 않았고, 나머지 4국가들만 포함되었다.[* 이들은 전후 세계 질서 유지에 기여할 핵심 국가들이라는 의미에서 '4명의 경찰관(four policemen)이라 불렸었다.] 여기에 프랑스가 추가된 이유는 영국과 소련이 4개국 구성에 불만이 있었고[* 영국은 유럽 본토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책임지는 것을 싫어했고 때문에 유럽에서 자기 혼자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소련은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이 같은 편(당시에는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이라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프랑스의 가세가 이 둘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영미와 달리 유럽 본토에 위치했고 그 탓에 독일에 전 국토를 빼앗기고 정부가 망명하는 등 큰 국가적 희생을 치렀으면서도 주요 회담 등에서는 전부 배제되며 영미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또 이후에 이어질 냉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련과 같은 대륙을 공유했기에 마찬가지로 영미와 본질적으로 이해 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프랑스는 종전 직후 소련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입장이었다. 물론 한국전쟁 발발 이후로 냉전이 격화되며 영미와 입장을 함께 하게 되지만, 오늘날 유럽연합이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고 영국이 [[브렉시트|거기서 탈퇴하여]] 대륙유럽(Continental Europe)에 조금 멀어지면서 다시금 이해 관계가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 상임이사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주요 [[승전국]]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후 상임이사국이 2개국이나 교체되었으나 유엔 헌장 자체는 개정되지 않고 소련과 중화민국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따라서 중화민국 내에서 대만 [[분리주의|독립주의]]자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기면서 중화민국은 끝났다. 유엔 헌장상에 나온 중국은 이제 사실상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중화민국이 아니다."란 떡밥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유엔]]에서는 러시아를 소련의 후신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공식 문서상 러시아의 가입일은 실제 가입일이 아닌 소련의 가입일로 되어 있다. 소련을 러시아가 [[국가승계]]하면서 소련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게 되었다.[* 사실 카자흐스탄이 가장 마지막으로 소련을 탈퇴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이 잠깐 소련으로서 상임이사국을 맡은 적이 있다.] 이것은 러시아와 서방 세계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소련의 영토나 인구의 대부분이 러시아로 승계된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는 소련의 10개[* 소련 해체 당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에 속해 있던 시절부터 소련이 유엔에 가입할 때 동시에 별개로 가입했고,(물론 소련의 철저한 [[거수기]] 역할) [[발트 3국]]은 소련 해체 직전에 따로 가입한 상태였다.] 지역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구소련의 후속국가 여럿과 핵무기 협상 같은 여러 가지 협상을 하려면 골치 아프니 러시아 하나로 밀려는 의도가 컸다. 이것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스포츠 등에서도 소련의 기록을 러시아가 승계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FIFA]]. 중국 역시 정권교체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공식 문서상 가입일은 중화민국의 가입일이다. [[국부천대|중화민국의 영토가 대만 섬 일대로 쪼그라든]] 1950년대 이후에도 1971년 이전까지는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원래 상임이사국 교체문제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쳐야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절차가 없었다. 때문에 중화민국 잔류를 주장하는 국가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적었다. [[중화민국]] 당사자를 제하고 미국, [[서독]], 일본 정도. 그런데 서독은 당시 회원국이 아니었다. 당장 1971년 총회에서 대만 축출 투표를 할 때 제1세계 국가였던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미국이 반대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찬성에 앞장서 대만의 뒤통수를 후드려 팼다. 결국 중화민국 상임이사국 축출은 유엔 총회 결의에서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로 통과되었다.[* 이때 [[제2세계]] 국가들과 친공 성향의 [[제3세계]] 국가들, 심지어 일부 [[제1세계]] 국가들이 찬성하면서 찬성이 압승했다. 미국, 일본, 필리핀, 브라질, 남아공 등이 중화민국 축출에 반대 표를 던졌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중화민국의 자진탈퇴로 일단락되었고, 1971년 이후부터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대표정부를 맡고 있다. 유엔에서 중화민국의 공식적인 지위는 [[타이완성(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성, 타이완(China's province, Taiwan)]]이며 여기서의 중국은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화민국은 역대 상임이사국 중 유일하게 핵무기 개발 전력이 없는데, 1970년대에 [[대만의 핵개발|개발 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다만 타이완에 전술 핵무기가 배치된 적이 있다. 이들 상임이사국끼리는 공식적으로 가진 권한의 범위와 위력은 같으나 각 국가간의 실질적인 [[국력]]의 차이가 있다보니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차이가 난다. 사실상 상임이사국이 중요한 이유는 평화 유지 안건에 대한 거부권이 있어서인데 지금까지 줄곧 미국과 소련 때부터 냉전 시절 줄다리기로 인한 서로 간의 경쟁과 전쟁에 평화 유지를 하는 안건이나 국가 제재에 이 두 국가가 큰 영향을 끼쳐왔다. 실제로도 유엔 상임 이사회에 주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두 국가이다. 가까운 예로는 [[시리아]]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미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대해 서로 안건을 내거나 반대하거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중동과 유럽 정세에 줄곧 영향을 끼치는 국가이며 소련 시절부터 존재했던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러시아에 대처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문제에 개입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해당 문제가 주목받는 정도부터가 크게 달라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