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부전선 (문단 편집) === 전선의 성격 ===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외에도 남프랑스의 독일군 섬멸을 위한 조공으로 1944년 8월 15일 [[용기병 작전]]이 실행되었다. 이 작전으로 툴롱이 해방되고 론 강을 따라 [[미 육군]] 제6군 사령관 [[https://en.wikipedia.org/wiki/JacobL. Devers|제이콥 L. 디버스]] [[중장]] 휘하의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프랑스]] 남부를 해방시켰다. 이들은 계속 북상하여 9월 4일에는 리옹을 해방하고 9월 12일 마침내 노르망디의 상륙군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후 프랑스에서의 독일군은 거의 축출되고 됭케르크, 라 로셸 등지에서 잔존 병력들이 '''1945년 5월 8일'''까지 저항한다.[* 코브라 작전 이후 미군의 진격 과정에서 남겨진 수만 명의 독일군들로 대개 프랑스 연안의 요새화된 항구 도시에 고립되었다. 몇몇 항구 도시(Ex: 브레스트)는 미군이 무력으로 탈취했으나 사상자나 소요 시간 등의 문제로 추가 평정화 작전을 펼치긴 힘들었다. 프랑스가 해방되고 연합군의 진격이 독일 본토로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고립된 독일군은 연합군과 암묵적인 [[휴전]] 협정을 맺어 식량을 공급받고 [[포로]] 교환을 하는 등 항복하거나 무기를 버리진 않았으나 그들이 고립된 그 지역 내에서 사실상의 포로 수용소 신세로 지내다 독일이 항복하면서 정식으로 항복했다.]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독일은 최후의 올인으로 미군에게 [[아르덴 대공세]]라는 도박을 벌였지만 그마저도 미군의 압도적인 지상군과 부족한 연료보급, 압도적인 항공우세 앞에 돈좌되며 실패했고,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많은 독일 병사들은 소련군에게 유린되기 싫어 연합군에게 항복하는 쪽을 택했다.1945년 [[지크프리트 선]]이 뚫리고 독일 내 최고 산업 도시이던 [[루르]] 지대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으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씹고 포위된 독일군 중 무려 30만 명이 영국군 앞에 장교부터 병사까지 무저항 항복하는 등 서부전선의 독일군의 사기는 이미 손쓸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벽이 되어버린 연합군의 전력 앞에 바닥을 쳤다.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비록 나치독일 자신들이 먼저 이념적으로 슬라브인 학살과 노예행, 약탈을 가장 중요한 전쟁 목표로 삼아 이를 이루기 위해 국가단위로의 계획적인 학살과 약탈을 시작했지만)' 이후 복수심과 손쓸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무자비하게 자항을 분쇄시키고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갖 잔학행위를 되돌려 주는 [[소련군]]으로부터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죽어라 맞서 싸울 명분이 있었지만, 서방 연합군은 별다른 잔학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고 포로들에 대한 대우도 [[소련]]에 비해 훨씬 관대했기 --하지만 SS를 싫어하는건 만천하가 다 똑같았다-- 때문에 독일군의 저항 역시 미약한 편이었다. 왠지 [[나무위키]]에서는 [[독소전쟁]] 문서가 튼실하게 들어찰 동안 서부전선 문서는 생성되지도 않았었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의 서부전선은 영프연합군의 패배와 프랑스의 항복 이후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다시 전선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영국]]과의 소규모 [[공중전]]이나 [[디에프 상륙작전]] 같은 [[위력정찰]], [[코만도(특수부대)|코만도]]나 [[제75레인저연대|레인저대대]]들의 침투 및 특수작전 같은 소규모 특수작전이 대부분이었다. 전후 서방권에서 제작된 제2차 세계대전(대독전 한정) 영상물의 경우 서부전선을 다룬 매체의 비중이 동부전선과 대등하거나 더 많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소련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에도 애매했다. 지상전에서 제공권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처음 드러난 전쟁이 2차 대전이었고 그중에서도 서부전선이 압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선 지상군의 진격을 보조해 주는 공격기들과 이들을 상대하는 전투기들이 전술적인 성격을 많이 지녔던 반면 서부전선에선 전략적인 성격을 지녔다. 서방연합군의 전략 [[폭격기]]들은 독일의 산업 기반 시설을 파괴해 독일군의 물자를 서서히 거덜냈고 독일군은 연합군의 항공기 때문에 항상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이 밀리면 밀릴수록 이 문제는 심해졌다. 오죽하면 [[나치 독일]]의 군수장관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자신의 회고록에 ''맑은 날에 도로에 나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고 써 놓을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