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탕 (문단 편집) === 충치의 원인? === 단순히 설탕이 충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실제로 충치를 유발하는 식재료들을 보면 대부분 당보다는 점도에 더 문제가 있다. 치아와 잇몸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가 오래 붙어있을 수록 충치를 더 쉽게 유발하기 때문.] 그건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문제이며, 엄밀히 치자면 곡물 등의 [[녹말]]은 침 속의 아밀레이스에 의해 분해되는 [[엿당]], 혹은 과일 속의 각종 당들 또한 충치의 원인이 된다. 충치가 없었던 시대는 농업혁명이 있기 전인 구석기 시대의, 과일류가 드물어 고기를 주식으로 먹던 고위도 지방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 고위도 지역도 [[잼(음식)|잼]]을 먹게 된 이후부터는 충치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드물다는 과일도 시기와 운이 좋아서 많이먹게 되어서 생기기도 한다.] 예전에도 충치는 있었고 견디다가 못 참으면 뽑았다. 서양에 비해서 충치에 대한 사건사고가 적은 편이긴 했는데[* [[루이 14세]]는 충치가 심해서 이를 뽑다가 입천장이 터서 평생 감염에 시달렸다. 이러한 일화가 서양에 무수히 많은데 한국만 봐도 상당히 적다. 루이 14세 때는 이미 신대륙의 설탕 산업으로 유럽의 설탕 소비량이 동양과 압도적인 차이가 난 시기이다.], [[양치]]질이라는 개념이 부족했던 서양에 비해서([[이탈리아]]는 예외) 동양은 일찍부터 [[소금]]과 모래로 양치질을 시도해서 그나마 낫지 않았나 싶다.[* 버드나무 가지로 양치질을 했다는 말도 있다. 애초에 '양치질'이란 말 자체가 버드나무를 일컫는 '양지'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으니. 이 양치질에 대해서는 조선 말기 조선에 방문한 선교사들의 기록에는 조선인들이 치아가 희고, 소금으로 양치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대의 기록도 있는데 [[조선]] 시대 여러 임금들이 치통에 시달렸고 치통을 치료한 노비를 면천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동의보감]]에도 치통 치료법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충치]]는 어쨌거나 상당한 골칫거리였던 것 같다.] 감미료가 꿀이나 과일 정도밖에 없었던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충치로 인한 치통 처방법이 있었으며, 식량이 부족했던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사탕수수 즙을 많이 마시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는데, 덕분에 20세가 되니 이가 안 썩은 사람이 없었다고. 그러니 '옛날 사람들은 [[충치]]에 어떻게 대처했나요'라는 질문에 '''"충치는 문화병이라 설탕이 수입돼서 먹을 때부터 생겼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의 모 건강식품회사에서 퍼뜨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일리톨이나 [[사카린]]같은 인공감미료 종류를 제외하면 충치를 안 일으키는 감미료는 없기 때문에 90년대 와서야 퍼졌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http://www.abc.net.au/science/articles/2008/05/28/2244461.htm|이 과학기사의 댓글을 봐도]] 알겠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도시전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라는건 단순한 일반화다. 게다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작가가 촌에 살던 시절 자신을 비롯한 아이들은 설탕이 아닌 [[엿]]을 비롯한 단맛이 나는 먹을거리를 잔뜩 먹었지만 치약과 물이 부족했던 탓에 유치가 잔뜩 썩어있었다는 회고도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