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쇠고기 (문단 편집) === 한국 === 예로부터 소의 모든 부위를 다 먹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소고기 부위 구분이 가장 세밀하다. 소고기에 관련된 단어가 발달한 데에서 소고기 식문화를 엿볼수 있다. 통일신라 대의 [[민정문서]]를 보면 청주의 4개 마을에서는 사람이 462명인데 말 61마리 소 53마리를 기른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우]]를 일소로만 썼다는 통념과 달리 조선의 소고기 수요와 공급은 매우 높았다. 조선에서도 소를 많이 길렀고 많이 섭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대략 1,000마리 × 240kg으로 잡고 조선의 인구 수를 1,200만 명으로 잡으면 하루 20g을 섭취했다는 것. 현재 한국의 절반도 안되는 양이지만 70년대 일본만 해도 하루 9g밖에 먹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농사일에 소가 중요하니 도축 두수를 제한하고 개인이 도축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엄격히 지켜지지는 않고 민간에서도 많이 도축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기굽기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기굽기2.jpg|width=100%]]}}} || >외방(外方)의 '''농우(農牛)가 도살되는 것이 예전보다 배나 되고, 경중(京中)의 저자 안에서 하룻동안에 소를 사는 것이 수십 마리를 내리지 않는데,''' 이것은 모두 도살한 것을 쓰니, 이익을 취하는 데 가장 후(厚)하여 풍속(風俗)을 이루었습니다. 옛날에는 백정(白丁)과 화척(禾尺)이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경외(京外)의 양민(良民)들도 모두 이를 잡으며, 옛날에는 흔히 잔치를 준비하기 위하여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 안에서 판매하기 위하여 이를 잡고,''' 옛날에는 남의 소를 훔쳐서 이를 잡았으나, '''지금은 저자에서 사서 이를 잡습니다.''' 백정은 일정한 수(數)가 있으나 양민은 그 수가 무한(無限)하며, 잔치는 일정한 수가 있으나 판매하는 것은 끝이 없으며, 남의 것을 훔쳐서 잡는 것은 일정한 숫자가 있으나 소를 사서 잡는 것은 무궁(無窮)하니, 일정한 수효가 있는 소를 무궁한 날에 끝없이 잡는다면, 반드시 남산의 소나무와 같이 다 벤 다음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에는 소를 잡는 도적[宰牛賊]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거골장(去骨匠)'이라 칭하고, 여염(閭閻)의 곳곳에 잡거(雜居)하면서 소를 잡아도 대소(大小) 인리(隣里)에서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에 고기를 쓸 일이 있어서 저자에서 구하려고 하면, 값을 가지고 가서 구하면 얻지 못함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지금 농우(農牛)가 도살(屠殺)되어 장차 절종(絶種)에 이르게 되었으니,''' - [[세조실록]](1467년 1월 4일 신미 1번째기사) >근년 이래로 금망(禁網)이 성기고 넓어져서 '''소를 도살하는 자가 여염(閭閻) 사이에 두루 있으며,''' 혹은 다른 사람의 집을 빌어서 그 일을 행하는데 그 주인 된 자 역시 그 이로움을 탐하여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아니합니다. 이로써 '''짐승의 뼈가 쌓여서 거리를 메우고 골목에 가득하니,''' - [[성종실록]](1487년 1월 23일 갑자 5번째기사) >도성의 시전에서 각 고을의 시장, 거리의 가게까지 모두 합해 하루에 도축하는 것이 1,000마리로 내려가지 않는다. - [[승정원일기]](1676년 1월) >나라에서 매일 잡는 소가 500마리, 개인이 잡는 소가 500마리다. - [[목민심서]] >하루가 다 지나도 돼지고기는 팔리지 않고 남았다. 이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고기가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 [[북학의]] 조선에서 소고기를 일상 음식으로 먹자고 제안한 첫 국왕은 연산군이었는데 간과 콩팥을 먹고, 우심적이라 불리는 심장을 구워 먹거나 육즙을 내 먹었다. 조선에서는 고기 말리는 법, 상한 고기의 맛을 돌려 놓는 법, 질긴 소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법 등도 고안하는 등 고기 다루는 법도 발달하였다.[[https://www.hankyung.com/article/2018041237361|#]] 또 고기를 독점적으로 판매하던 현방이 있었고 시대에 따라 가게 수가 다른데, 서울에 많을 때는 48개, 적을 때는 22개였다.[[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17026002|#]] 고기는 먹고 소가죽은 일본과 청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그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관련 [[http://egloos.zum.com/coldstar/v/3026435| 기록]]에서도 1844~1849년동안 일본으로 소가죽 수출량이 12만 714매로 연간 2만 119필의 소가 도축되었으며 1882년 이후 청나라로의 [[https://news.samsung.com/kr/%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5%8C%EA%B3%A0-%EB%B3%B4%EB%A9%B4-%EC%A1%B1%EB%B3%B4-%EC%9E%88%EB%8A%94-%EB%A7%90-%EA%B3%A0%EA%B8%B0%EB%82%98-%EA%B5%AC| 최대 수출품]]도 소가죽이었다. 당시 소가죽은 수출하지만 소고기는 수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소비한데다가 수출용 이외의 소의 도축량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량의 소고기가 국내에 공급되고 있었다.[* 조선의 일반적인 소고기 소비량은 소가죽 수출량만을 고려해도 한우 숫소 600kg, 암소 420kg 정도 체중, 소 체중의 47~48% 근육량으로 역산하면 1840년대 최소 매년 18,000톤 정도의 소고기가 공급되고 조선의 인구를 8백만으로 보던 당시 법정통계기준 시점에서는 연간 2.5kg, 학계가 추정하는 최대수치인 1,600만으로 볼 때는 연간 1.25kg 내외의 소고기가 공급된다. 이는 소가죽 수출용 도축만을 계산한 것이고 국내 소비용 도축 물량과 내장육의 소비까지 고려하면 양은 더 늘어난다. 목민심서에 의하면 전국에서 1일 천필이 도축된다는 기록으로는 연간 [[https://books.google.co.kr/books?id=FHFVDwAAQBAJ&pg=PT96&lpg=PT96&dq=%EB%AA%A9%EB%AF%BC%EC%8B%AC%EC%84%9C+%EC%86%8C+500%EB%A7%88%EB%A6%AC&source=bl&ots=Exd2sfgbop&sig=ACfU3U1tqliHS0UXbj57fNV9DxeN6MNrqw&hl=ko&sa=X&redir_esc=y#v=onepage&q=%EB%AA%A9%EB%AF%BC%EC%8B%AC%EC%84%9C%20%EC%86%8C%20500%EB%A7%88%EB%A6%AC&f=false| 38만~39만]] 마리를 도축하여 대략 18만 톤까지의 소고기가 공급되며, 이렇게 될 경우 인구규모에 따라 10~20kg 정도의 소고기가 공급된다. 물론 신분차나 경제력에 따라 소비량이 차이나겠지만 평균치를 보면 현재 북한이나 70년대 이전 한국보다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이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2016년 통계에서 다른 고기를 제외한 남한의 소고기 섭취량이 인당 연 11.6kg이다. [[http://www.ihanwoo.kr/news/articleView.html?idxno=389|#]]] 또한 중근세 일본에서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5611&cid=59020&categoryId=59025| 쇠고기하면 조선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다. 일제강점기에는 소고기 섭취가 극도로 줄어들었는데, 1936년 일본 도쿄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학생들이 50일 동안 경상도 울산 달리 지역에 머물면서 현지 농민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엮어서 발표한 단행본인 <조선의 농촌위생-경상남도 달리의 사회위생학적 조사>에 의하면 가난한 농민은 물론이고 중산층 농민의 경우도 1년에 소고기 2.59근, 닭고기 0.3마리, 계란 10.4개를 섭취했을 만큼 고기를 적게 먹었고, "소고기를 1년에 몇 번 정도 드십니까?"라고 물으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라는 반문이 일쑤였다고 한다. 고기는 대부분 제사용이었고, 그래서 제삿날이 눈물만큼의 고기를 먹는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기술했다. [[https://news.v.daum.net/v/20081014213105765|링크1]], [[https://news.v.daum.net/v/20081014173312615|링크2]] 1980년대 이후로는 선호도가 바뀌어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섭취하게 되었다.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저렴해진 이유가 크다. 오늘날 삼겹살 등 돼지고기는 서민의 음식이고 친구들이나 회사동료들의 회식용이지만 소고기는 비싼 고급 음식이 되어 소고기 갈비나 등심 등이 명절선물이나 화려한 외식이나 영업용 접대품목으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 어떤 고기집에선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라는 재미있는 안내문을 걸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2000년대 이후로 [[호주|호주산]] 소고기의 시장 점유율 선방과 [[미국산 소고기|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수입 확대로 인해 수입산 소고기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였다. 이로 인해 소고기에 대한 가격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2010년대에는 수입산 소고기의 고급화가 이루어져 저가의 [[척아이롤]], [[부챗살]], [[등심#윗등심|윗등심]] 뿐만 아니라 고급 부위인 [[등심|립아이 (꽃등심 및 아랫등심)]], [[살치살]], [[채끝살|채끝]], [[안심(고기)|안심]], [[소갈비|꽃갈비살]] 등이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와규]], 미국산 프라임 소고기 등 마블링이 높은 수입산 소고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고가의 생산 및 유통 구조를 겪고 있는 한우의 야성을 위협하였다. 결국은 마블링 기준이 완화가 된 한우 등급제가 시행되고 마트 대비 중간유통 과정이 거의 없어 구매가가 저렴한 한우 직판장이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돼지고기 무한리필집은 소강 상태를 보이기 시작하고 소고기 무한리필집이 대세가 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 대형마트와 창고형 매장을 중심으로 고급 수입산 소고기가 상당히 저렴하게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이젠 소고기도 한우만 아니면 돼지고기 못지않게 저렴해졌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산 프라임 립아이, 채끝, 안심, 살치살, 부채살은 100g에 3,000원대에서 6,000원대 사이에서 구매가 가능하고 호주산 와규는 1등급 한우보다도 더 마블링이 많으면서 가격은 100g에 8,000원에서 9,000원대로 더 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이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외식 문화가 위축되면서 집에서 고급 요리를 해먹는 트렌드가 확산되었다. 게다가 먹방과 셰프들의 쿡방을 중심으로 [[스테이크]] 열풍이 불면서 [[쇼트 로인|티본 스테이크]]와 [[토마호크(고기)|토마호크 스테이크]]에 대한 구매 수요도 늘었다. 대형마트에서 고급 수입산 소고기가 점점 더 저렴하게 풀리고 1등급 한우에 대해서도 반값 할인 행사가 많아졌다. 롯데마트에서는 미국산 프라임 등급의 립아이, 채끝, 안심의 매출이 급증했다고 언급하였다. [[http://naver.me/5zJmBdJo|#]] 포스트 코로나에는 수입산 소고기의 상향평준화와 미국산 소고기의 관세 0% 도입으로 인한 가격 하락, 그리고 한우 시장의 점진적인 변화가 지속되면서 국내에서도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엇비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는 구워서 먹으며 [[육회]]로도 먹고, 회도 떠먹고[* 육회라는 요리는 생고기 무침에 가깝지만, 육사시미라고도 하고 전라도권에서 생고기라고 부르는 요리는 말 그대로 소고기를 회떠서 먹는 거다. 물론 우둔살같은 기름기가 적은 부위를 주로 사용한다.] 국이나 탕, [[냉면]]에 들어가서 [[육수]]를 우려내기도 한다. 구워서 익힐 때에는 부위 및 상태 별로 요령이 필요하다. 근내지방이 별로 없는 안심과 채끝은 두툼하게 썰어서 강불로 살짝 겉면을 지져내고 속은 설익혀서 육즙을 많이 남기는 식으로 먹는 것이 제격이지만, 근내지방이 많은 등심은 얇게 썰어서 중불로 육즙이 고기 표면으로 올라올 때까지 굽고 뒤집어 속까지 익혀서 지방조직을 충분히 녹여줘야 육질이 부드럽고 풍미가 좋게된다. 탈 까봐 약불에 오래 익힌 소고기는 고무처럼 질겨져서 먹을 게 못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강불에 레어로 설익혀 먹는 건 아니란 것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축산물로는 횡성, 홍천, 영주, 경주, 함평 등의 한우 고기가 있다. 역사적으로 돼지고기와 다르게 기생충 같은 것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조금 덜 익혀 먹어도 기생충에 감염되거나 식중독이 걸릴 확률은 낮았기 때문에 생고기 조리법이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 발달한 편이다. [[육회]]는 지금도 소고기로 만든다는 개념이 보편적이다.[* 현재는 돼지고기도 위생을 잘 챙기며 제대로 키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식의 내부를 설익힌 돈까스나 돈육회 같은 요리가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은 대중의 정서상으로도 소고기가 아니면 꺼려지는 편이다.] 하지만 레어~미디엄 익힘의 스테이크를 즐기는 서구권과 달리 구이를 완전히 익히지 않는 조리법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현대 한국에서 소고기는 돼지고기보다 공급이 적어서 가격도 높다. 회사에서 돼지고기 회식을 제안한다면 평범한 반응을 볼 수 있지만, 소고기 회식 이야기가 나오면 직원들이 쌍수를 드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소고기는 돼지고기보다 고급지게 인식되는 것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