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하르토 (문단 편집) ===== 산타크루즈 대학살(Santa Cruz massacre) ===== [[1991년]] 11월 12일에는 동년 10월 27일에 인도네시아 군대에 의해 총살된 독립을 지지하던 청년 세바스티아오 고메스(Sebastiao Gomes, 1973~1991)를 추모하는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꽃을 바치기 위해 [[딜리]]에 위치한 고메스의 무덤이 있는 산타크루즈 묘지에서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독립을 호소하던 비무장 시위대에게 인도네시아군과 경찰이 시위대에게 구타를 퍼부은 후 트럭에 올라타 2분간 발포를 퍼부었는데, 군인들은 병원에 옮겨진 부상자들까지 '증언자를 없애기 위해' 사살했다. 인도네시아 국군은 이 발포로 인한 사망자가 19명이라고 발표했지만, 1992년 9월에 있던 동티모르인에 의한 독자적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발포로 273명이 죽고 255명이 실종되었으며 376명이 다쳤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군은 취재를 하러 온 미국인 기자 2명까지 개머리판으로 폭행하여 1명은 두개골이 골절되기도 했다. 당연히 이 학살은 상술한 미국인 기자들의 녹화로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당시 인도네시아군 총사령관이었던 뜨리 수뜨리스노(Tri Sutrisno, 1935~)는 학살 이틀 뒤인 11월 14일에 "우리 군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마침내 우린 그들에게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선동자들처럼 덜떨어진 것들은 총을 맞아 죽어 마땅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으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성한 국가조사위원회 역시 11월 26일에 예비보고를 통해 군의 발포가 [[정당방위]]였다고 규정하며 상부에 의한 발포명령은 없었고, 발포는 '규율 없는' 병사들의 독단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으며, 덤으로 인도네시아측은 학살당한 시위대들을 '야만적, 감정적, 파괴적'이라고 폄하했고, 이들이 내건 현수막과 깃발이 치안부대를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2023년 현재에도 동티모르 내에서도 발포명령자가 있다는 주장이 없는 것을 보면 정말로 발포명령 없이 우발적으로 군인들이 발포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물론 인도네시아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더욱 가관인 것이 인도네시아군은 고작 '''자신들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보고는 난 화를 총기를 난사해 무고한 시민 수백 명을 학살한 것으로 푼 저질스러운 조직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동티모르]]는 [[2002년]]에 독립을 쟁취한 후 11월 12일을 '산타크루즈 기념일'이라는 공휴일로 삼으며 이 날을 추모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