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게이트 (문단 편집) === 고대 [[노르딕]] 문화 관점에서 === 스웨덴 사람들이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것을 과거 문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한 예로, 북유럽 전승에는 부유한 상인에게 값진 무기를 선물받은 전사가, 그 무기에 걸맞은 답례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선물을 준 상인을 그 무기로 죽여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부족 사회의 예의에서 선물이란 상호적(reciprocal)인 것이기에 '동등한 관계라면' 상대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에 걸맞은 답례를 해야 하고, 이러한 증여와 답례를 반복함으로써 양자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고 형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관습 속에서 '상대가 답례할 수 없는 선물을 준다'는 것은 그 대상과 동등한 관계가 아닌 상하관계를 맺겠다. 즉, '너는 내가 준 물건을 받았지만 내게 답례하지 못했으니, 내 아랫사람이다'라는 의미인 것이고, 이를 거부하면 상대를 적으로 돌리겠단 소리기에 미리 죽여버린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상대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은 상대에게 신세를 지게 하므로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복속시키려는 의도'라는 생각하에 개인 간에는 사적인 도움을 베풀지 않는 문화가 생겼고, 밥을 먹이지 않는 것도 이 일환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상당히 억지스러운 것으로, [[북유럽 신화]]를 보면 [[오딘]]의 가르침 중 하나가 손님 접대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접대의 관습은 상당히 중대한 사항이기 때문에, 웬만한 신화에서 접대의 관습을 담당하는 신은 그 신화의 주신이거나 주신의 종속신인 경우가 많다. 여기 나온 오딘의 경우 외에도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 아폴로, 헤르메스 같은 주요 신이 접대의 관습과 관련하여 나오고 성경에서도 소돔과 고모라에서 룻과 천사들의 이야기도 접대의 관습과 관련되어 있다.] 심지어 오딘의 이야기 중에선 의심병이 도져서 손님을 추방하고 변장한 오딘을 의심스럽게 여겨 고문하다가 모든 게 밝혀진 뒤에 당황하다 자기 칼에 찔려 죽은 [[게이로드]] 이야기도 있다. 고대 역사에서 한 가지 일화 가지고 적어도 확인되는 바로는 현대까지도 상당히 광범위한 풍습을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런 논리에 따르면 상호 증여나 답례 문화가 있는 문화권에는 손님에 대한 환대 문화가 없어야 하는데 정작 대부분의 부족 및 전통 사회에서는 '증여나 답례 문화'와 '환대 문화'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나타난다. 즉, 타인에게 신세를 지게 하는 것을 복속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문화권에서도 손님 대접은 잘만 하고 잘만 받는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심리적인 부담이자 부채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곧 손님에 대한 환대가 합의되고 대차대조적인 것이 아닌, 선제적 호혜로서 제공되는 것이라는 전제(및 문화)가 공유된다는 의미다.[* <대차대조적이 아닌 선제적 호혜>가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부조금]] 문화를 생각해보면 된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먼저 받은 이가 나중에 상대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자신이 받은 것에 상응할 만큼 '돌려주지' 않을 경우, 이는 대단한 무례로 여겨져 서로의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뿐 아니라 보답하지 않은 쪽의 사회적 체면 역시 크게 실추시킬만한 일로 여겨진다. 즉 한국의 부조금 문화는 명백히 상호적인 증여-답례 문화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차대조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예를 들어 자식 결혼식에 축의금을 주고받는 지인 사이에서 이쪽은 자식이 하나고 저쪽은 셋이라고 해서 저쪽이 이쪽에 한 번에 세 배의 축의금을 내야 한다거나, 반대로 이쪽은 저쪽에 첫째 자식의 결혼에만 축의하고 그 다음부터는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각각의 당사자 사이에 일일히 계산을 맞추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시점에서 한 쪽은 부모님 중 한 분이 이미 돌아가셨지만 다른 쪽은 두 분이 모두 살아계실 경우와 같이, 부조의 대차대조표가 불균형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즉 사회라는 집단 전체에서 각 구성원들은 부조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내고, 받을 일이 있으면 받는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낸 것보다 많이 받고, 다른 사람은 받은 것보다 많이 낼 수 있지만 이는 복불복일 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 사람이 문화적 규범을 깨트린 것이 아닌 한) 딱히 따질 문제가 아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손님이 왔을 때는 그 손님을 대접해야 하고, 반대로 자신이 손님으로 갔을 때는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니 지금 만난 집주인과 손님간에 일대일로 대차대조 손익계산이 딱 맞아 합의되어야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손님 대접이 과장된 베품이건 교양적 사교 활동이건, 먼저 베푸는 제스처로서의 환대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신세를 지게 할 수 있는 것이지, 미리 협의하거나 대가가 조율된 상태에서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된 문화라면 밥을 얻어먹을 경우 (마치 식당의 손님처럼) 오히려 당당한 권리로 인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당장 [[메이와쿠]] 문화가 강했던 옛날 일본을 보더라도 함부로 호의를 베풀어 상대를 빚지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다지만 손님 대접의 선심은 별개의 문제였다. 상대의 집에 손님으로 갔을 때 대접을 잘 받았다면 반대로 상대가 자신의 집에 왔을 때 대접을 잘 하는 것으로 상대의 호의에 답례함으로써 서로간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고 쌓아올려나가는 것이 전통 사회의 예의이자 사회적인 관계를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건너뛰고 대놓고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족 사회의 논리로 보면 오히려 "너랑 나는 어차피 적이고, 곧 싸울 사이인 것이 뻔한데 서로 위선떨 필요 없지 않으냐?"는 의미로 해석되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바이킹 전승에서 '값진 선물을 주었다가 되레 살해당한 부유한 상인' 일화가 상징하는 것은 본 문단과 같이 '호의를 빙자한 강압을 시도했다가 보복당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상호적인 증여와 답례 문화 아래서 상대에게 선물할 때는 먼저 상대가 자신의 선물을 기꺼이 받을 만큼 호의적인 관계인지 판단하고 또 상대의 입장과 처지에 걸맞은 적절한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를 악용하여 상대가 답례할 수 없는 큰 선물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으로 상대를 모욕하거나[* 즉, 타인이 보기에는 선물을 받았는데 답례를 하지 '않은'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평판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또는 답례를 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주변에서 뻔히 안다고 해도, 한 쪽은 선물을 줄 수 있는데 다른 쪽은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준 쪽'이 '받은 쪽'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모욕(깔아뭉개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자신에게 굴복할 것을 강요하는[*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선물을 '하사하는' 관계가 되므로,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서열상 우위에 있음이 공공연히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받는 쪽이 이 관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상대에게 굴복한다는 의미가 된다. 개인간의 관계에 단순하게 적용해 보자면 '내가 준 무기에 대한 답례를 하지 못했으니 그것을 보수로 받은 셈 치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라는 식으로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는 것. 물론 부족 사회 기준으로 보면 좋은 무기 따위를 보수로 받고 상대의 부하([[하우스칼]] 등)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는 대부분 양자간에 미리 합의학 이루어지는 일인데, 선물과 답례의 관습을 악용하여 강압적으로 찍어누르려 하는 경우를 말한다.]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는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적대관계를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어차피 적이 될 것이라면 차라리 선수를 쳐서 공격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다른 해석을 원한다면 위와 같은 참사를 피하기 위한 교훈을 주는 일종의 우화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호간의 동등한 선물과 답례로 호의와 신뢰를 쌓아가는 사회적 구조 내에서는 설령 호의로 준 것이라 하여도 과한 선물은 되려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으니 눈치껏 적절한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바른 태도이고 적절한 사회성이라는, 즉 <과공(過恭)은 비례(非禮)이다>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현대에도 순수한 호의를 베풀었더니 상대방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괜히 열폭해 호의를 베푼 사람을 원망하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이러한 예의에 훨씬 엄격한 부족사회라면 괜한 열폭이 아니라 정말 과한 선물은 받는 사람을 심각하게 난처한 상황에 빠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건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의도적이었건 실수였건) '전사가 '''답례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선물을 주었다'는 것에 있다. 증여와 답례를 주고 받는 연결고리가 '''깨져서'''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 이 관계의 연쇄가 깨지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 부족 사회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접이나 호의 하나하나를 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로 주고받으며 갚아나갈 수 있는 선물과 호의의 교환은 많을수록 친구와 동맹이 많아지기에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부족 사회의 비중이 컸던 민족들을 봐도 척박한 환경 속에 살더라도 접대만큼은 신경써서 하는 기록이 많았다. [[성경]]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구절 중 하나가 [[유대인]]들이 유목 시절부터 '손님에게 고기와 빵을 내 주었다'이고, [[몽골족]]이나 [[여진족]] 같은 유목 민족들 역시 접대 예절을 무시한 적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당장 북유럽 바로 옆동네에 기후도 비슷한 [[러시아]]에서도 손님 대접 문제로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라는 결코 아니다. 즉 환경이나 민족의 기원의 이유로 스웨덴이 유독 접대에 박한 이유를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