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미양요 (문단 편집) === 접촉 === [[파일:external/www.bbggnews.com/1_L_1372930879_3.jpg]] 조선이 거부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자 미국은 계속 개항 요구를 한 끝에 강제 개항을 염두에 두고 로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하는 원정대를 편성했다. 미국은 프랑스에도 연합을 제의했으나 프랑스는 보불전쟁의 여파로 섣불리 개입하기 힘들었을 뿐더러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에게 패배한 경험때문에 작성한 지도 정도만을 넘겨주고 협력을 거부했다. 이리하여 5월 14일에 미 해군 단독으로 나가사키에서 출항했고, 5월 21일 [[수원]] 인근에서 조선 측에 포착된다. 조선은 5월 31일에 문정관[* 조선 후기 외국선박이 접근해오거나 외국인이 표류할 시 이를 확인하고 사실여부를 조사하는 관직. 보통 해당 사건 지역의 수령이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고, 역관을 종사관으로 삼았다.]을 파견해 이들의 접근 의도를 추궁했지만 미군은 딴청으로 일관하며 고위 관료를 만나게 해 달라는 요구만 반복한다.[* 이때 문정관 일행과 동승한 월미도의 촌장이 콜로라도 함 안에서 미군한테서 맥주 여러 병을 선물받고 웃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남아있는데[[https://www.incheon.go.kr/park/park030503/1397085|#]], 이 사진이 인터넷상에선 엉뚱하게 조선군 포로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조선군 포로가 석방되는 장면을 이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다.] 조선 측은 "협상을 하자면서 군대를 끌고 온 것은 무슨 도리이며 개항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고 이를 일축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