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중근 (문단 편집) === 루머와 진실: 어머니의 편지? === 인터넷 등 미디어를 통하여 안중근 의사의 모친인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에 있는 아들 안중근에게 보냈다며 다음과 같은 편지 내용이 소개된 바 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 편지는 심지어 MBC [[무한도전]] 등을 통해서도 소개되며 미디어를 통해 여러 번 반복 인용되고 있으나, 이러한 편지가 존재한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는 1994년 일본 다이린지(大林寺, 대림사) 주지스님인 사이토 다이켄(齋藤泰彦)이 펴낸 『わが心の安重根: 千葉十七・合掌の生涯』(내마음의 안중근: 치바 도시치-합장의 생애)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사이토가 안중근 수감 당시 뤼순 감옥의 담당 간수였던 일본 헌병 치바 도시치의 전언을 엮어 펴낸 것이다. 즉 안중근 또는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치바가 듣고, 치바의 말을 다시 사이토가 책으로 엮은 것인데, 이 책에서는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에게 사형이 "구형되자" 다음과 같이 "말"을 전했다고 한다. (아래는 일본어 원문의 한국어 직역이다.) >공소(控訴)[* 항소의 일본법상 용어다.]라든가 하지 말고, 바로 복역하는 거예요. 그대는 한국인으로서 조국을 위해서 의거를 행한 것이기에, 공소를 하면 생명은 길어지게 되지만 큰 수치가 됩니다. 만약 그대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공소하려한다면, 이 어미의 교육은 대체 뭐였는가 라고 웃음거리가 될거요. 위 책에서 위 전언이 어머니의 '편지'라고 한 사실은 없으며, 무한도전 등에 소개된 마지막 두 문장은 있지도 않다. 특히 사형 선고 후의 전언도 아닌 '구형' 후의 전언이라고 하였으며, 조마리아 여사의 말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안중근에게 전달된 것인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위 책의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어 원문을 심히 비틀고 윤색한 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이에 이르렀은즉 죽는 것이 영광이나, 모자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상봉치 못하겠으니 그 심정을 어떻다 말할 수 있으리 ... 천주님께 기원할 따름이다"라는 원문에 있지도 않은 문장을 첨가했는데, 이것이 인터넷상에 어머니 편지에 관한 낭설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치바가 위 말을 들었다면 안중근 또는 그에게 말을 전달한 누군가로부터 다시 듣고 그것을 책의 저자인 사이토 스님이 다시 듣고 펴냈다는 것인데, 그 정확도나 신빙성은 미지수이다. 둘째는 당대의 보도로서의 가치있는 [[황성신문]]의 1909년 12월 28일 자 보도다. >安重根(안중근)의 弟(제) 安恭根([[안공근]]) 安定根(안정근) 兩氏(양씨)가 旅順([[여순]])에 渡去(도거)하얏다 함은 旣報(기보)하얏거니와 獄裡(옥리)의 安重根(안중근)은 兩弟(양제)의 來到(내도)함을 聞(문)하고 平凡(평범)한 言詞(언사)로 「졔가, 나를, 보랴 하면, 뵈이기는, 하려니와, 나는 決(결)코, 보고십지, 아니하다」하더니 及其(급기) 監吏(감리)의 許可(허가)를 得(득)하야 對面(대면)함에 至(지)하야는 安恭根氏(안공근씨)가 先(선)히 失聲哭泣(실성곡읍)함을 見(견)하고 以若(이약) 安重根(안중근)의 肝腸(간장)으로도 心思(심사)를 抑制(억제)치 못하야 颯然(삽연)히 士氣(사기)되며 顔色(안색)에 現(현)하더니 少頃(소경)에 三人(삼인)이 强(강)히 靜穩狀態(정온상태)를 回復(회복)하야 二弟(이제)가 爲先(위선) 母(모)의 所寄(소기)하는 十字架(십자가)를 奉(봉)하야 兄(형)의 頭上(두상)에 置(치)하고 母(모)의 傳言(전언)을 述(술)하야 曰(왈)「'''母(모)는 現世(현세)에셔 汝(여)와 再會(재회)하기를 期望(기망)치 아니하노니 汝(여)는 今後(금후)에 神妙(신묘)하게 刑(형)에 就(취)하야 速(속)히 現世(현세)의 罪惡(죄악)을 洗(세)한 後(후) 來世(내세)에는 반다시 善良(선량)한 天父([[성부|천부]])의 子(자)가 되여 再(재)히 出世(출세)하여라, 汝(여)가 受刑(수형)할 際(제)에는 神父([[신부(성직자)|신부]])'''[洗禮(세례)를 授(수)한 外國宣敎師(외국선교사)]'''가 汝(여)를 爲(위)하야 特(특)히 遠路(원로)에 跋涉(발섭)하야 汝(여)의 代身(대신)으로 懺悔(참회)를 捧(봉)할 터이니 汝(여)는 其時(기시)에 神父(신부)의 手下(수하)에셔 敎式(교식)에 依(의)하야 從容(종용)히 現世(현세)를 去(거)하여라'''」함에 安重根(안중근)은 「盟誓(맹세)코 敎式(교식)에 依(의)하야 信徒(신도)의 資格(자격)과 臣子(신자)의 道理(도리)에 醜態(추태)를 現(현)치 아니하고 最後(최후)를 遂(수)할 터이니 我母主(아모주)는 安心(안심)하옵소셔 」 答辭(답사)를 陳(진)하고 其後(기후)에 二弟(이제)가 嫂氏(수씨)의 母子(모자)를 帶歸(대귀)할 事(사)에 對(대)하야 意見(의견)을 問(문)하되 安重根(안중근)은 冷然(냉연)히 「區區(구구)한 妻[[안준생|子]](처자)는 汝等(여등)이 從便處理(종편처리)하라」 答(답)하얏다고 大阪每日報(대판매일보)에 揭(게)하얏더라 >----- > 황성신문 1909년 12월 28일 기사 [[https://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3865280&from=%EC%8B%A0%EB%AC%B8%20%EA%B2%80%EC%83%89|#]] 위 기사는 안공근, 안정근 두 동생이 안중근을 면회하면서 안중근의 머리 위에 십자가를 얹고 조마리아 여사의 말을 전달한 상황을 적고 있는데, 해당 부분(위 굵은 글씨 부분)만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아니하노니, 너는 이제로부터 신묘하게 형(刑)을 받아 속히 현세의 죄악을 씻은 후 내세에는 반드시 [[천주]]의 착한 자녀가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너라.[* 원문상 '천부'란 '신분이 낮은 사내'를 말하는 '賤夫'가 아니라 '天父'로, 천주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아버지'([[삼위일체]] 중 제1위)를 뜻한다. 즉, 조마리아 여사는 [[불교]]적인 [[윤회]]사상이 아니라 [[천주교]]에서의 부활 신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형을 받을 때에는 [[신부(성직자)|신부]]님께서 너를 위하여 특히 멀리에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가서 너를 대신하여 참회의 기도를 바칠 것이니, 너는 그때에 신부님의 손 아래에서 천주교 예식에 따라 조용히 현세를 떠나거라." 이에 대한 안중근의 답변은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맹세코 천주교 예식에 따라 (천주교) 신도 된 자격과 ([[순종황제|임금]]의) 신하 된 도리에 반하는 추태를 보이지 않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니 어머니께서는 안심하옵소서." 위 기사를 보면 사이토 스님의 책과는 정반대로 항소 이야기는 존재하지조차 않는다. 기사 자체가 사형선고를 받기 한참 전인 1909년 12월 자 보도이니 항소 여부와는 관계가 있을 턱이 없다.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의 수의를 지어보낸다는 말 또한 없다. 다만 사형을 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당시부터 포기한 듯,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는다"는 말은 있으나 '천부'라는 단어의 한자표기(天父: 천주교의 하느님 아버지)나 전언의 면면을 보면 천주교적 부활 신앙에 대한 기원과 함께, 신부([[니콜라 빌렘]])를 보내니 반드시 [[종부성사|천주교 예식]]에 따라 최후를 맞으라는 당부가 있을 뿐이다. 이 전언 또한 어머니의 '편지'가 아니라 안공근, 안정근 두 형제가 직접 가서 어머니의 말을 전했다는 것에 불과하며, 기사 자체에 따르더라도 황성신문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라 '오사카매일신문'의 보도를 인용했다는 것이므로 그 신빙성과 정확도는 따로 판단되어야 한다.[[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7|#]] 결국 미디어에 떠돌고 있는 '어머니의 편지'라는 것의 내용은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출처도 완전히 다르고 구체적인 시기와 상황에 큰 차이도 있는 두 가지 소스, 즉 사이토 다이켄의 책에 기재된 '항소'에 관한 전언과, 황성신문에 기재된 '신부를 보내니 천주교 예식에 따라 최후를 맞으라'는 전언을 한데 뒤섞고, 두 가지 전언에는 전혀 없는 '[[수의]]'에 관한 언급까지[* 일본에서는 형무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키치의 아내가 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적당하게 덧붙이는 등 누군가가 그럴 듯하게 각색한 내용이 조금씩 변형되면서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반복 복제되고 있는 것이므로, 해당 내용을 그대로 원용함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2016년 안중근 평화연구원에서는 미디어에 떠돌고 있는 위 편지라는 것은 사료상의 근거가 없음을 확인하였다.[[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839|#]] 또한 안중근의 법정 변호를 [[이승만]]이 거부했다거나,[* 이승만이 [[장인환]], [[전명운]] 의사에 대한 재판 당시 [[통역]]을 거부한 사건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 박사다. 석사학위는 하버드에서 역사, 정치, 경제학을 수강해 받았다. 프린스턴에서 국제정치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국제법을 전공했을 뿐 체계적으로 법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변호사]] 자격이 없으니 법정 변론은 할 수가 없었다(미국은 미국 법조인 협회라 불리는 'American Bar Association' 기관이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안중근의 총에 실탄 1발이 남아있었는데 자결용이었다거나 하는 말도 있으나, 전부 낭설이거나 그냥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내용을 복제생산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http://imnews.imbc.com/replay/2016/nwdesk/article/3923408_19842.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