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래스카 (문단 편집) === 러시아 정착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러시아령 아메리카)] 면적 대부분이 한랭지인 만큼 별다른 문명사회가 들어서지는 못했으며, 실질적인 알래스카의 역사는 17세기부터 시작한다. 17세기부터 [[러시아]]가 손을 뻗기 시작했고, 1759년 알래스카 서부 [[알류샨 열도]] 애널래스카 섬에 러시아인이 상륙했다. 이후 [[1784년]] 그레고리 이바노비치 셸리호프가 이끄는 러시아 원정대가 현재의 [[코디액 섬]]에 정착지를 세우고, 셸리호프 회사(Shelikhov-Golikov Company) 설립과 함께 모피 장사꾼들이 알래스카로 정착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령 아메리카]]로서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 모피 장사꾼들이 악질이었는데 [[알류트]]인들을 인질로 삼아서 농노처럼 부려먹었고, 알류트인들이 이에 저항하면 보트를 파괴해 생존 수단 자체를 없애버리는 행패를 일삼았으며 알류산 지역과 알래스카 서부지역의 해상동물을 무더기로 남획해갔다. 특히 [[해달]]이 그들의 주요 타겟이었다. 한편 러시아와는 별개로 [[스페인 제국]]도 동쪽 캘리포니아, 오리건으로부터 북상하여 알래스카에 원정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1775년]] 브루노 헤세타가 이끄는 탐험대를 시작으로 1779년, 1788년, 1790년, 1791년 연거푸 원정대가 파견되어 지금의 야쿠타 만, 프린스 윌리엄 만 등을 발견하고, 발데즈, 코르도바 등지 알래스카에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1788년]] 에스테반 호세 마르티네즈(Esteban José , 1742 ~ 1798)와 [[1790년]] 살바도르 피달고(Salvador Fidalgo, 1756 ~ 1803)가 이끄는 스페인 함대가 [[코디액 섬]]과 알렉산드롭스크(현재 앵커리지 남부) 러시아 정착촌을 방문해 별다른 충돌없이 좋게 좋게 끝난 것을 보면 워낙 척박하고 인구도 적다보니 상호간 충돌을 원하지 않고, 각자 주장하는 영역을 딱히 침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후 스페인은 [[1819년]] 조약으로 이 지역과 함께 북위 42도선 이북 지역의 모든 권리를 [[미국]]에 넘겼다. 러시아의 동진은 계속해서 가속화되었는데 지금의 [[싯카]](Sitka)지역을 시작으로 19세기 초에 들어서 알래스카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이겨 알래스카 전역을 형식적으로나마 차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인이 해안 지역을 선호한 탓에 내륙 지역은 장악하지는 못하고, 단순히 종주권을 인정받는 수준에 머물렀으며 러시아가 원주민과 싸움에서 늘 우위에 있던 것도 아니라서 [[틀링깃|틀링깃족]]과 세금 문제로 장시간 싸웠다. 1804년의 충돌(Battle of Sitka)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지만 알래스카가 미국에 팔리는 순간까지 결국 틀링깃족 정복은 이뤄내지 못했다. [[스페인]]처럼 밀어붙이기가 불가능했던 것이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주민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당장 알래스카 서쪽에 위치한 시베리아도 러시아인들이 이주하기를 기피해서 러시아 당국에서 군인들과 죄수들을 시베리아로 내보낼 판이었다.] 당시에 [[비행기]] 같은 물건이 없었고 [[시베리아 철도]]도 깔리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군대를 보내려면 이만한 수고가 아닐 수 없었다. 중간에 배로 갈아타야 하는 것은 덤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