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앵글로색슨족 (문단 편집) === [[기독교]]로의 개종 === [[파일:external/f.tqn.com/augustine-saxons.jpg]] 흔한 인식과는 달리, 앵글로색슨족은 그리스도교로 쉽게 개종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전통 신앙인 게르만 다신교에 꽤나 오랫동안 집착했다. 그들이 서기 5세기 초반부터 브리타니아로 이주하여 토착민인 켈트족을 정복한 이후로 약 150년 동안 브리타니아의 초기 교회는 거의 죽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597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보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장과 다른 선교사들이 켄트의 타넷 섬에 상륙하면서 기독교가 다시 전파되었다. [[앵글로색슨 7왕국]] 중 노섬브리아의 에드윈 왕(Edwin: 586~633년)은 폴리누스 주교가 기도를 한 덕분에 자신을 죽이려던 암살자의 칼을 막아내고, 왕비가 무사히 딸을 낳았다고 생각해서 전통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게르만 다신교를 믿었던 머시아의 펜다 왕(Penda: ?~655년)에게 패배하여 633년 살해당했고, 이후 노섬브리아 왕국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게르만 다신교로 돌아간 왕들이 다스렸기에 한동안 기독교의 전파에 큰 지장이 있었다. 그래도 657년 노섬브리아 왕실은 힐다의 수도원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결국 가톨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쁜 행동으로 기독교 신앙을 더럽히고, 우상을 숭배하며 주문이나 부적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하였다." > ----- > 성 커스버트(Cuthbert) 그러나 앵글로색슨족의 기독교 신앙은 그리 굳건하진 못했다. 그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주 신앙을 버리고 전통적인 게르만 다신교로 돌아갔다. 7세기 린디스판(Lindisfarne) 수도원의 주교 [[아빠스]] 성 커스버트(Cuthbert)는 신이 내린 대재앙이 돌자, 자기 교구민 중 많은 수가 이교적 행위를 하는 것을 한탄했다. 여기서 언급된 대재앙은 전염병을 가리키는 듯한데, 전염병이 돌자 앵글로색슨 주민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우상'이라고 표현된 옛 신들을 섬기면서 주문과 부적을 썼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또한, 캔터베리의 테오도르 대주교는 669년 색슨족이 게르만 신들을 섬기는 사원을 다시 세우는 장면을 보았고, 리폰의 월프리드 주교를 제외하면 자신의 교구에서 주교가 전혀 없었다고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동앵글리아의 [[레드월드]] 왕은 켄트 왕국에서《성경》을 공부하고 기독교 교리를 배웠으나, 고향에 돌아오자 게르만 다신교를 믿던 왕비와 사제들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기묘한 절충안을 고안해 냈는데, 예수와 게르만 신들을 함께 숭배했던 것이다. 물론 독실한 성직자들은 당연히 사악한 우상숭배라고 비난했다. 이렇게 전통 신앙과 새로운 신앙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앵글로색슨족은 747년 '''클로베쇼 종교회의'''에서 잉글랜드의 모든 백성들은 옛 게르만 신들을 숭배하거나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하는 선언이 나온 후에야 비로소 모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색슨족이 브리튼 섬에 최초로 상륙한 지 300년이 지나서야 그들은 전통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던 것이다.[* 사실 로마 제국 내에서의 기독교 전파도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특히 서유럽 일대는 프랑스조차 중세 초에도 아직 기독교가 전파되고 성장 중이었으므로, 이러한 현상은 그렇게까지 특이한 것은 아니다. 더 나중에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이 개종할 때에도 그러했다. 혹은 기독교 세계 내에서도 [[보헤미아]]([[체코]])나 [[폴란드]], [[헝가리]]처럼 주변 정치환경에 따라서 [[정교회]] 계열 교회로 개종했다가 다시 [[가톨릭]] 계열 교회로 개종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섬기던 신들에 대한 기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웨식스의 앨프레드(Alfred) 대왕은 침략해온 바이킹들과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천둥의 신 토르(수노르)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다. 그런가 하면 잉글랜드의 변방인 [[맨 섬]]에서는 무려 11세기에 가서도 《에다》에서 말한 라그나로크의 내용을 묘사한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아울러 현재 1주일 중 화, 수, 목, 금요일의 영어 단어들은 모두 앵글로색슨족을 포함한 고대 게르만족이 믿던 신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각 요일을 상징하던 신들의 이름을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게르만 토착신들로 바꾼 것인데, 화요일-티우(티르=마르스=아레스)의 날(Tiwesdaeġ), 수요일-워덴(오딘=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의 날(Wodnesdaeġ), 목요일-수노르(토르=유피테르=제우스)의 날(Þunresdaeġ),[* 유피테르(제우스)는 오히려 티우(티르)와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으나, 하늘신(Jupiter Caelus)과 우레신(Jupiter Tonans)의 측면을 한 신격이 모두 가진 전자와 달리, 게르만 신화에선 두 속성이 티우(티르)와 투노르(토르)라는 별개의 신격으로 분리되었으므로, 로마인들은 천신이자 전쟁신 티우(티르)는 마르스(아레스)에 대응시켰고, 뇌신 속성이 두드러진 투노르(토르) 쪽을 유피테르(제우스)와 동일시했다. 참고로 로마인들은 마르스를 매우 중요한 신으로 여겼다.] 금요일-프리이(프리그 또는 프레이야=베누스=아프로디테)의 날(Friġesdaeġ)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독일 본토에 살던 색슨족은 잉글랜드로 이주한 동족들보다 전통신앙에 더 집착했고, 그와 반비례하여 기독교를 거부하는 정도도 심했다. 8세기 초 잉글랜드의 수도사 겸 학자인 [[베다(역사가)|가경자 베다]]가 쓴 책인 《앵글족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 제5권 10단에 따르면 검은 헤우왈드(Niger Heuuald), 하얀 헤우왈드(Albus Heuuald)라고 불리는[* 베다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의 머리카락 색에 따라 각각 '검은' '하얀'이란 말을 붙였다고 한다. 형제는 아니고 우연히 동명이인이었던 듯하다.] 잉글랜드 출신 선교사 두 명이 작센[* 현재의 [[작센]] 지역이 아니라 북서부 독일에 있다.] 지역으로 가서 선교하자, 색슨족은 선교자들 탓에 자기들이 전통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할까 우려하여 두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온갖 고문을 가한 뒤 강물에 던져 죽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륙의 색슨족은 브리튼 섬의 색슨족보다 약 100년 동안이나 전통신앙을 더욱 오래 보존했다.[*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129~143쪽. 베다가 쓴 《앵글족 교회사》의 내용은 2013년 출간된 《Bede: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People in Latin + English》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