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구/기원 (문단 편집) === 알렉산더 카트라이트 === 실제로 현대 야구랑 거의 비슷한 경기로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굳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Alexander Cartwright 1820~1892)로, 1845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 야구팀인 닉커보커스(Knickerbockers)를 조직했고 [[니커보커 규칙]]을 만들어서 다이아몬드형 경기장을 고안하여 경기 인원을 9명으로 하였고, 3스트라이크가 1아웃이 된다는 근대야구 규칙을 공식화[* 물론 이 모든 게 단번에 후다다닥 나온 게 아니라 30년 넘게 하면서 이거 바꾸고 새롭게 추가하고(물론 이 항목보면 세계 여러 나라 야구랑 비슷한 걸 이들도 참고한 게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하여 1876년 메이저리그 개막으로 이어진 것이다.]하였다. 그럼에도 카트라이트가 아닌 더블데이가 현대 야구 창시자가 된 것에 분노한 손자 브루스 카트라이트는 명예의 전당 설립추진위원회에 반론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러니 메이저리그는 재조사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조사결과 더블데이는 1839년에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2학년이었으며 그 때 여름 방학도 없었고 그의 일기장 어디에도 '''야구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타나지 않는 등 특별위원회의 결론이 조작이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특별위원회 위원장 밀스는 절친한 친구인 스폴딩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만들기 위해 7인으로 구성되었던 위원들과의 상의없이 단독으로 최종 보고서를 썼다. 당시 위원회가 증거로 내세웠던 것은 더블데이의 어렸을 때 친구였다는 애브너 그레이브스(Abner Graves)라는 노인의 진술이 유일했으며 다른 증거자료는 위원회가 입주해 있던 건물이 불에 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왜 이렇게까지 조작하면서 더블데이를 현대 야구 창시자로 보며 찬양했던 까닭은 아주 간단했다. '''찾은 기록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저거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사실 찾아보자면 미국에서 야구 비슷한 여러 스포츠를 더 오래전인 18세기에도 얼마든지 했지만 그 기록들은 크리켓이나 영국인들과 같이 했다는 점이 있기에 이걸 모조리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한 것만 찾은 끝에 찾은 것은 저 노인의 진술 하나 뿐이었다. 특별위원회 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초창기 야구 역사를 증언할 만한 인물로 조지 라이트가 있었는데 그는 단 한번도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만일 그가 한번이라도 참석했었다면 희대의 사기극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1840년대 뉴욕에서 진짜 현대 야구 창안자라고 할 수 있을 카트라이트의 닉커보커스 구단과 시합을 해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지 라이트는 당시 83살이며 병을 앓아서 제대로 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없었기에 그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되려 지금와서는 환자인 라이트를 위원회에 대충 올려둔 것이 적당히 닉커보커스 팀에서 활동한 인물을 넣어 위원회를 겉으로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라는 비난도 듣고 있다. 게다가 중요한 증인이라는 애브너 그레이브스라는 노인은 살아생전 광산기술자, 서커스단 가수 같은 일로 벌어먹었으며 아내를 총으로 쏴죽이고 발광하여 콜로라도 주 시립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었다. 1907년 당시 그레이브스는 살아있었으나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몸(참고로 그는 90살 장수를 누렸다)이라 증인으로 효력은 전혀없었다. 하여튼 이런 자가 한 말 1마디가 증거라고 하니 어이없는 일이었고, 미국야구계는 더블데이에게 모든 촛점을 맞추고 이 그레이브스에 대한 건 덮어버렸다. 야구 역사가인 해롤드 피터슨(Harold Peterson)은 그의 저서 ‘The man who invented baseball(1973)’에서 애브너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든 것이 아니고 야구가 애브너 더블데이를 만들었다”는 말로 이 희극적 사건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나 스폴딩이나 밀스나 저런 조작 사실을 덮어버리고 결국은 야구는 더블데이가 창안했다는 억지 주장를 굽히지않고 오로지 전세계에서 미국만이 이렇게 100년 가까이 외쳤다. 1939년에 야구 창안 100주년 기념 우표를 만들고 야구계 인사들은 더블데이 장군 무덤에 가서 해마다 [[꽃]]을 바치며 야구의 시조라고 찬양하기에 급급했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미국 말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런 억지를 비웃던 헨리 채드윅은 한탄했다. > 나도 야구가 좋은 야구계 인물이지만 이런 억지와 조작으로 그렇게까지 야구를 모든 게 미국인이 만들고 미국의 스포츠라고 주장한다고 해봐야 과연 그게 영원히 갈까? 그리고 언젠가 이로 인하여 같은 미국의 다른 스포츠에게조차 비웃음당해도 그땐 이런 억지가 드러나면 어찌될지 걱정된다. 그리고 채드윅의 이런 한탄은 세월이 지나 에누리없이 들어맞게 된다. 그나마 1953년 6월 3일, [[미국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현대 야구 창시자인 것이 공표되었다. 문제는 이랬음에도 명예의전당 측은 여전히 더블데이가 원조라고 새긴 걸 고치지 않았으며 또한 매해 더블데이의 무덤에 가서 성묘하고 현대 야구 시조라고 찬양했기에 카트라이트 후손들이 분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