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이도 (문단 편집) == 역사 == 지명의 유래는 [[한자]] 뜻을 해석해 섬의 모습이 [[까마귀]]의 귀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오이도 가까이 있는 옥구도(玉鉤島)[* 현재는 오이도처럼 내륙에 붙은 옥구공원이다.]와 옥귀도(鈺貴島)가 함께 묶어서 오이도라고 불리게 된 것이 유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오이도에 붙은 한자는 가차에 불과하다.[* 경기도 관광 포탈의 섬 소개에도 유래가 잘못 설명되어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 섬을 '오질애(吾叱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한자 뜻을 해석하면 '나를 꾸짖게 되니 슬프다'는 뜻이지만, [[叱]]은 [[이두]]에서 ㅅ받침을 적는데 쓰는 글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자 뜻은 별 의미가 없으며 옛날 토박이말을 한자음을 빌려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오질이도(吾叱耳島)'로 불렸다가 [[조선]] [[정조(조선)|정조]] 때 줄여서 오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즉 옛날에 옥구도와 옥귀도를 함께 오질애섬으로 부른 것이 오질이도가 되었고 그것의 줄임말로 오이도가 된 것이다. 오이도는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일명 옥귀섬(玉貴島)으로도 불리었다.[* 오이도 북쪽 가까이에 [[인천광역시]]와 [[시흥시]] 사이에 있는 옥귀도라는 [[무인도]]가 있는데 원래 이름은 돌섬, 석도(石島)였다. 이후 석출도(石出島), 석을주도(石乙注島), 석옥귀도(石玉龜島)이라고도 했다가 오귀섬이 되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곳에 표류하였는데, 한 어부가 옥(玉)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바치자 임금이 깜짝 놀라 이를 귀(貴)하게 여기고 옥귀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옥터초등학교가 이곳에 있는데 그 학교 이름이 이 이야기 때문에 붙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근거는 없다. 본래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육지와 오이도 사이에 염전이 세워지면서 육지가 되었다. 그 소금을 운송하기 위해서 인근 지역에 협궤 철도인 [[수인선]]을 놓았고 지금도 염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까지는 안말을 중심으로 가운데살막, 신포동, 고주리, 돌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등 자연마을이 있었지만 오이도 옆 염전이었던 곳에 [[시화국가산업단지]] 개발이 결정되면서 거주 환경 악화를 고려해 섬 내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켜 옛 오이도 영역에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 주민들은 오이도 서쪽 매립지에 만들어진 이주단지에 정착했으며, 이곳에는 작은 어항과 횟집 식당가가 들어서 있다. 옥터초등학교는 이 오이도 원주민 자녀들이 다니던 어촌 학교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