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진우 (문단 편집) == 기타 == *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모르면 간첩'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또 스타같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나중에 오진우가 누렸던 수 많은 사치들을 알게 되고 경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김정일]]이 먹을 욕을 오진우가 대신 욕먹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신상옥]] 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오진우는 술에 취하면 장군님 명령만 있으면 부산까지 일주일이면 쓸어버린다고 호언장담하곤 했다 한다. 자신의 생일이면 3월 9일이면 간부들을 초청해서 연회를 베풀 수 있는 자격이 있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최은희가 입고 있는 골덴 옷에 시비를 걸면서 다짜고짜 벗으라고 요구했다. 최은희가 대체 왜 벗으라는 거냐고 날카롭게 맞받아치자 자기가 빨치산 할때 망할놈의 고르뗑 옷을 지겹게 입었는데 그 옷만 다시 보면 만주에서 죽을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하자 그제서야 최은희도 그냥 골덴옷을 벗고 블라우스 차림이 되었다고 한다. * [[음주운전]] 항목에도 있듯 북한에는 유독 고위 공직자들의 음주운전 사고가 빈발한데, 오진우 역시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고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 김덕홍[* 북한의 정치인으로 1997년 황장엽과 함께 귀순했다.] 회고록에는 김정일이 1976년부터 1982년까진 오진우를 무력부장동지로, 1982년부터 1984년까지는 무력부장동무로, 1984년부터 1990년까진 오진우 영감으로, 1990년에서 1994년까진 오 영감으로, 1994년부터는 그냥 영감이라고 불렀다 한다.(...) 김덕홍은 이를 북한의 조선인민군이 김씨 일족의 사병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평했다. [[이한영]]의 회고에 따르면, 오진우가 김정일에게 자신의 손녀가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싶으니 빈으로 유학을 가게 해달라고 사정한 적이 있었는데 김정일은 "영감, 자본주의 국가는 안돼요. 사회주의 국가로 하세요."라고 딱 잘라 거절해버렸다고 한다. 명색이 북한의 서열 3위니 뭐니 했지만 수령의 친족이 아닌 이상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정작 김정일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걸 보고 소련을 달러에 굴복한 배신자 국가로 디스하면서 차라리 기개있는 자본주의 국가가 낫다는 이유로 모스크바 유학 중이던 [[김정남(북한)|김정남]]을 스위스로 옮겨버렸고 [[김정철]], [[김정은]]도 모두 스위스로 보냈다. * 1948년 10월 22일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을 거쳐 3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6.25에 투입되 후에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붙잡힌 이영식의 수필 '빨치산'에서 그에 관한 일화가 하나 나온다.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초급중학교(당시의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월북해서 상당히 어린 나이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케이스이다.] 그가 3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던 부소대장 시절, 자꾸 자기 소대에 사고가 발생하자 교장이었던 오진우가 직접 [[소원수리]]를 받으려고 문제가 있는지 간부들에게 물어봤지만 당연히 다른 간부들은 그런 거 없다를 시전(...) 그러나 ~~사회생활능력이 부족한~~ 이영식은 몇 가지 문제점의 개선을 요구했고, 당연히 오진우가 돌아간 다음 상관들에 의해 부하들 앞에서 공개 조리돌림을 당하며 큰 충격을 받고 부소대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울며 아침까지 버티고 있었다. 마침내 자초지종을 접한 오진우가 나타나 문을 열라고 한 뒤 해당 간부들을 전부 보직해임 시켜버리고 이영식을 그 자리에 앉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진우의 말로는 인민군은 군법상 부하들에게 그들의 상급자를 비판하게 시킬 수 없다고 한다.] * 조선인민군 사단정치위원을 하다가 1950년대에 숙청당해서 중국으로 망명한 강수봉의 회고에 따르면 개고기를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진우가 자신을 방문한 최현을 대접하기 위해 급양부장을 불러내서 한상 거하게 차려내라고 지시하려는 순간, 급양부장이 또 개를 잡아오라는 말인줄 알고 "또 개소립니까?"라고 평안도 사투리로 물었다. 즉, 또 개를 잡아 올리란 말씀이십니까?란 뜻인데 문제는 함경도 사람인 오진우가 그 말을 못알아듣고 격노해서 "이 종간나 새끼야!"라고 함경도 사투리로 쌍욕을 퍼부으면서 급양부장을 조졌다고 한다.(...) * 모란봉클럽에 따르면 1992년 인민군 창건 60주년 행사 당시 김정일의 북한사람들이 기억하는 유일한 음성인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가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당시 열병부대 순회 후 보고하는 자리에서 나이때문에 어지러운건지 아니면 숙취상태였는지 모르겠지만 최종보고할때 자꾸 더듬었다는 것이다. 이에 제 성질을 버티지 못한 김정일이 내질러버린 말이 바로 저 문장이라는 것.[[https://youtu.be/819JWGVL_Xo|영상]] * 암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고령에도 꽤 정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말, 북한을 방문한 동독 국방장관 케슬러 일행은 김정일 생가 방문한다는 명목으로 백두산 등정을 해야 했는데, 교통사고 당했다가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오진우가 아주 날쌔게 산을 올라서 저 영감 대단하네~ 라고 놀라는 보고를 본국에 보냈다. 하지만 이후로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는지 고영환은 1989년에 무기 판매를 위해 이란에 갔던 오진우가 앉지도 못하고 반쯤 누운 상태에서 중언부언할 뿐이며 통역이 이미 하달된 발언요강에 따라서 알아서 회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탈북하던 시점에서는 이미 노망난 영감에 불과했다고 썼다. * 마지막 기병대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장철부]] 대대장과도 연이 있었는데 바로 같은 조선의용군 소속으로 함께 싸웠던 것. 그랬기에 오진우는 장철부와 싸우는 건 아니라고 보고 지속적으로 투항 설득을 했으며 이는 장철부가 자살할 때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친밀감을 강조하고 윗선에 들키지 않기 위해 무전을 중국어로 진행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독립운동 동지들끼리도 서로 총구를 겨눠야했던 안타까운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 생전엔 [[김정일]]처럼 [[기쁨조]]를 적극적으로 즐기던 호색한이기도 했다. [[이한영]]의 회고록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에 의하면 [[기쁨조]]로 불려나온 여배우 [[https://www.dailynk.com/%e5%8c%97-%ec%99%9c-%eb%b9%a8%ec%b9%98%ec%82%b0-1%ec%84%b8%eb%8c%80-%ec%98%a4%ec%a7%84%ec%9a%b0-%eb%9d%84%ec%9a%b0%ea%b8%b0/|김옥희]]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김길선]] 기자의 증언에 의하면 [[보천보전자악단]] 소속의 미혼의 여자를 [[임신]]시키기 까지 했을 정도로 성적으로 난잡했다고 한다. [[분류:1917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분류:북청군 출신 인물]][[분류:소련의 군인]][[분류:조선인민군 원수]][[분류:조선인민군 총참모장]][[분류: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분류:조선인민군 제3군단장]][[분류:북한 국방상]][[분류:북한 국방성 제1부상]][[분류:조선로동당 4기 비서국 비서]][[분류:조선로동당 5기 비서국 비서]][[분류:조선로동당 6기 정치국 상무위원]][[분류:조선로동당 5기 정치위원회 위원]][[분류:조선로동당 4기 정치위원회 후보위원]][[분류:조선로동당 3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분류:조선로동당 6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분류: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분류:5기 국방위원회 위원]][[분류:6기 국방위원회 위원]][[분류:9기 국방위원회 위원]][[분류:5기 중앙인민위원회 위원]][[분류:6기 중앙인민위원회 위원]][[분류:7기 중앙인민위원회 위원]][[분류:8기 중앙인민위원회 위원]][[분류: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4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분류: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대성산혁명렬사릉 안장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폐암으로 죽은 인물]][[분류:공화국영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