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시덴탈리즘 (문단 편집) == 특징 == [[일본 제국]]이 [[아시아주의]], [[대동아공영권]] 등의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나, [[동유럽]]의 [[유대인]]들이 [[서유럽]]의 "기계적인" [[독일인]]들과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대비시킨 것 등이 포함된다. 재미있는 건 처음부터 동양 국가에서 주장된 건 아니고 오히려 같은 서양 국가이면서도 [[프랑스]], [[영국]] 등의 문화나 민주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등에서 옥시덴탈리즘의 기원이 나왔다는 것. 이를 [[반서방]]주의라고 하며, 옥시덴탈리즘 중 근대식 정치와 사상에 대한 반대는 여기서 유래했다고 보면 된다. 옥시덴탈리즘은 비서구 국가의 지배세력이 자국 내의 민주화 요구 등을 제압할 때 자주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가령 21세기에도 [[전제군주제]] 체제를 고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경우, 근대 헌법을 제정하라는 비판에 대응할 때마다 "[[헌법]]은 서구의 산물이며 따라서 서구에만 알맞는 것이다"는 논리를 펴곤 했다. 형식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싱가포르]] 역시 [[리콴유]]의 주장에서 전형적인 옥시덴탈리즘적 사고관을 읽을 수 있다. 수없이 많은 규제들과 언론 통제, 감시 등을 '아시아적 특수성'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설파한 [[김대중]]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10월 유신]]을 정당화하던 '''한국적 민주주의론''' 등도 이에 포함된다.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개인주의를 서구의 퇴폐적 풍습으로 취급했던 사회적 분위기나,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가 서구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는 세간의 잘못된 인식 또한 일종의 옥시덴탈리즘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첨언하자면 17세기 이전까지 중국과 인도의 국내 총생산이 유럽보다 늘 압도적이었는데 이는 그저 인구를 많이 부양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근대 이전까지는 문명의 흐름이 동아시아에서 서구로 흘러 들어갔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토하라인 등을 보면 이게 개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사]]에서는 [[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 비율이 [[태평양 전쟁]] 직후 변절한 원인 중 하나로 옥시덴탈리즘이 지목되기도 한다. 1930년대까지는 한국이 일본과 다시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초기에 일본이 승승장구하자 '''서양 국가의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대동아공영권이 구현되는 건 시간 문제이니 차라리 일본에 협력해서 차등 대우라도 보장받자는 논리였던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산하 구미위원회의 이승만 포함), 건국동맹의 [[여운형]], 조선독립동맹, 이외 항일 유격대원 등은 미국과 소련 연합군에 의해 일본은 반드시 패망할 것이며 일본이 패망하면 한국은 독립할 수 있다고 확신하여 연합군과 공조했고, 그들의 판단이 맞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