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승 (문단 편집) == 실존 인물 == 역사상 요승으로 기록된 인물, 혹은 승려 신분으로 그 악행이 명백한 인물만 기재할 것. 평가에 논란이 있거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요승으로 몰린 인물은 각주로 부연 설명할 것. * [[그리고리 라스푸틴]] : 엄밀히 말하면 [[정교회]] 수도사. * [[김치양]] * [[데바닷타]] : 어찌 보면 요승의 시초 격인 인물. [[마가다 왕국|마가다국]]의 아자타삿투 왕자를 부추겨 부왕인 빔비사라의 왕위를 찬탈하게 만들었다. * 도쿄 : 일본 [[나라 시대]]의 권승. 여제 쇼토쿠 천황의 병을 치료한 일로 총애를 받아 [[태정대신]] 지위까지 올랐다. 우사 신궁에서 '도쿄를 황위에 앉히면 나라가 안태하다'라는 신탁이 내려왔다고 위조하여 황위 선양까지 노렸으나, 와케노 키요마로[* 나라 시대의 문관으로, 이 일로 도쿄의 분노를 사 다리 힘줄이 잘리고 유배당한다. 이 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거나 맷돼지 떼가 나타나 도쿄가 보낸 암살자로부터 키요마로를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도쿄 실각 후 복직하고 충신으로 칭송되어 도쿄 황궁 앞에 쿠스노키 마사시게와 함께 문무 양대 충신으로서 동상이 세워져 있다.]가 직접 우사로 확인하러 간 결과 거짓 주상으로 판명되어 저지되었다. 쇼토쿠 천황 붕어 후 실각한다.[* 이쪽도 아래의 허응당 보우처럼 정치적 누명이 씌워진 것이라는 주장이 일본 사학계에서 제기됐었다.] * [[묘청]][*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당대부터 쭉 요승 취급을 받았으나 근현대 역사학계에서는 단순히 혹세무민한 요승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한 점을 높이 산 [[신채호]]의 평가가 대표적. 현대 사학자들은 정지상 등 서경 천도 세력이 내세운 [[얼굴마담]] 정도로 보고 있다. 문서 참조.] * [[보우(조선)|보우]][* [[문정왕후]]의 후원 하에 불교 중흥을 주도했기 때문에 이를 반대했던 [[사림]] 측에 의해 요승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요승 이미지가 덮어씌워진 케이스. 현재는 그의 행적과 저술 등이 조명되면서 불교를 되살리려 노력했으나 실패한 인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이다.] * 법경 : [[북위]] [[효명제]] 대에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628933&cid=50766&categoryId=50794|대승교도의 난]]이라 불리는 민중반란을 일으켰다. 사람을 죽일수록 보살로서의 경지가 높아진다는 정신나간 교리를 내세웠다. * 설회의 :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은 요승. 불경을 위조하여 측천무후의 황제 즉위를 정당화시켰다. 나중에 [[태평공주]]에게 살해된다. * 성지 : [[광해군]]에게 총애받아 권세를 누린 요승. 왕을 부추겨 궁궐 공사를 여러 차례 벌이게 만들었다. [[인조반정]] 때 주살된다. * [[신돈]][* 개혁가와 부패한 요승으로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기록 상으로도 양쪽의 면모가 모두 나타나고 있어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인물.] * [[양련진가]] * 천고 : 고려 [[충렬왕]] 대의 요승. 혜숙사 석탑 밑에 질그릇으로 만든 거북 모형을 묻었다가 꺼낸 뒤 신령스러운 거북이라고 사기극(...)을 벌였다. * [[최태민]] : 현대판 요승의 전형. 실제 불교 승려로 활동한 전적이 있으며, 2007년 작성된 주한 [[미국]] 대사관 측의 문서에서도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3858035|'한국의 라스푸틴']]으로 표현하며 요승 취급했다. * [[팽화상|팽형옥]] : 원나라 말기에 백련교도들을 모아 난을 일으켰다. 문서 내용은 무협지 속 등장인물로서 다루고 있지만 엄연히 실존인물이다. * 학조 : 조선 전기의 승려. [[신미(승려)|신미]] 등과 함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활발한 경전 언해 및 대장경 간행으로 [[세조(조선)|세조]] 대부터 왕실의 존경을 받았으나, 부패와 월권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간통까지 벌여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학조의 비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보이고, 그 출처도 불분명하거나 심지어 [[이덕일]](...)의 저서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신뢰성에 다소 의문이 남는다. 이쪽도 왕실의 비호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 유생들이 악의적 소문을 퍼뜨려 폄하했을 가능성이 있다.] [[분류:승려]][[분류:멸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