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일한 (문단 편집) === 유년기 === [[파일:external/www.pharmstoday.com/99037_24370_632.jpg]] 1895년 1월 15일 [[평안도]] [[평양부]]에서 재봉틀 장사로 자수성가한 상인 유기연(柳基淵, 1861~1934. 8. 28.)과 [[김(성씨)|충주 김씨]](忠州 金氏) 김확실(金確實, 1873. 5. 22.~1958. 10. 4.)[* 김경우(金景禹)의 딸이다. 이후 김기복(金基福)으로 개명했다.] 사이의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유일형(柳一馨)이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자 당시 [[평양부]]에서 [[재봉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아버지 유기연은, [[미국]] [[감리회]]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말을 듣고, 1904년 당시 9살에 불과한 장남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되어 있었고, 결국 6년 후 '''[[일제강점기]]'''를 맞이한다. 외교권 빼앗기기 전에 [[미국]]으로 건너간 게 다행.] 당시 유일한의 아버지는 [[워싱턴 DC|미국의 수도]]가 어디인지 몰라, 그냥 그 나라 땅의 중앙이겠거니 하면서 유일한을 미국 대륙의 정중앙으로 보내게 된다. 큰 돈이 들 수도 있는 유학을 보낸 이유는, 자신의 자식들이 식견을 넓혀서 민족을 위해 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유기연은 자식들을 [[러시아]], [[일본]], [[중국]]에 유학보내서 공부하게 하였다. 배에서 아버지가 환전해 준 미국 돈([[미국 달러|달러]])을 잃어버린 유일한은 인솔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용만(1881)|박용만]]의 배려로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독신자 자매인 태프트 자매에게 입양되었다. 태프트 자매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밭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성실하고 검소한 삶을 통해 [[기독교]]의 노동윤리를 실천했으며, 어린 유일한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미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배려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일한은 인종차별로 서러움을 겪기도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강한 성격으로 극복했다.[* '만화로 만나는 20세기의 큰 인물'(웅진씽크빅)에서는 비슷한 시기(1908년)에 있었던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끼워넣어 유일한이 자긍심을 되새기는 장면을 만들었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1909년]] 그는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독립군(한국)|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 입학한다. [[주경야독|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으며]], 방학 때는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살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재미교포]]들의 항일집회에 참여하여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항일경력 때문에 고향에 사업차 잠시 입국했을 때 [[일본제국 경찰]]에게 연행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름을 바꾼 계기도 비범한데, 중학교 시절 미국에서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보급소 직원이 이름 일형이 어려워 제멋대로 '일한'이라고 불렀다.[* '만화로 만나는 20세기의 큰 인물'(웅진씽크빅)에서는 직원이 서류를 써줄 때 [[오타|타이핑을 잘못해서]] 스펠링이 '형'자가 '한'자로 나온 것으로 각색되었다.]그는 당황했지만 [[한국]]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한(韓)'자를 떠올리고 아예 '''유일한'''으로 개명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승낙을 구하였고, 이 요청을 받은 아버지는 '''일형의 동생들의 돌림자까지 '한' 자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 시기 이후에 태어난 동생들은 처음부터 돌림자가 '한'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