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데올로기 (문단 편집) == 특징 ==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종교적인 교설이나 신조가 가진 위계적이고 독단적인 입장을 사회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만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다원주의]]적 사회가 형성될 필요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로도,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 되었다. 먼저 부정적인 의미로는 비현실적이며 현실을 왜곡하는 일종의 '허위 의식'이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그릇된 사상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현대에도 통용되는 용법이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가 다른 여러가지 관념들, 사상들, 종교들의 사고를 합리적으로 탐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라는 의미로 쓰인 적이 있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낯선 의미. 현대에 주로 활용되는 용법으로 보자면,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세계.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두고도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것이 좋은 태도인지, 이데올로기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태도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프롤레탈리아 이데올로기를 지향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즉 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대로 우익들의 경우에도 자유주의에 맞서 보수적인 스탠스를 적극적으로 지켜내야한다는 입장을 갖기도 했다. 또 탈이데올로기가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도 있다. 한 개인이 이데올로기를 떨쳐내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한 사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냐는 것. 대체로 우파적인 입장에서는 현실의 시장자본주의 체제가 현실을 반영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기반을 둔 스탠스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학, 사회학의 [[행태주의]]나 [[실증주의]]같은 사조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기술하자는 입장이다. 행태주의나 실증주의는 결국 역사적으로 중첩된 의미나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태도를 지향하게 되며, 이런 입장에서는 이를 '[[중립]]적인 태도'로 본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중립적인 것인지, 현실적으로 중립적인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은 주로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제기되는데, 행태주의나 실증주의가 스스로 현실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태도 역시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런 태도를 '현상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면, 어떤 사회에서 상류층들의 고기 소비 비중이 중하류층의 고기 소비 비중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자. 이에 대해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태도는 '부자는 잘 사니까 당연히 고기 많이 먹어도 된다'라는 입장과 '빈부에 따라 고기 소비량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는 입장 모두를 배제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관찰자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이 관찰결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현실을 용인하는 전자의 입장의 손을 들어주는 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그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이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긴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실제로 잠재되어 있는 내용은 많이 다른 경우도 있다. 자기들이 스스로도 왜 그러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나치즘 같은 경우는 '독일민족의 재생과 영광'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러한 목적이 이면적으로 불안하고 분열된 국민들을 통합하고, 개인적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국민들의 역량을 짜내어 먹는 역할만 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이면적인 본 목적은 이데올로기 집단 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각하기도 어렵고, 외부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많은 논쟁이 생기게 된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는 탈이데올로기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주장하였다.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사고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부터 <<독일 이데올로기>>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적인 과정에서만 이데올로기의 형성 원인을 구한 데 반해, 사회의 가지각색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발견해 낸 것이다. 알튀세에 의하면, 인간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세계와 관계하는 이상, 이데올로기의 존재는 불가결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의식과 관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함으로써 발생하는 상상적인 표상이자 그 상상적 표상을 형성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개인(주체)을 형성해내는 사회구조 그 자체도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알튀세에 의하면, 이데올로기 장치는 개인(주체)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기능하는 사회 공간 그 자체이다."[*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발리스 듀스 지음, 개마고원 출판, p.191 중] 즉 단순하게 억압적인 [[법]]과 정치제도 등의 국가장치나 [[프로파간다]] 매체 등 직접적으로 개인의 사상에 개입하는 사회요소들 뿐만아니라,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제도들([[학교]], [[종교|종교단체]], [[매체|매스미디어]], 각종 조합 등)이 모두 이데올로기 장치이며 개인은 이런 제도 속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스스로에게 이데올로기를 각인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자신들의 목적이 있고 그것을 자각한다고 믿는 경우,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사람들 혹은 집단들은 이데올로기적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방법론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물론 그 이데올로기 안에 결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실현할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적지만, 그 이후의 이데올로그들이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여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등등의 하부적인 이데올로기를 새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 이러한 이데올로기 집단 내에 속한 사람들을 결속하기 위해 독특한 상징이나 의식, 제도 등이 마련되기도 한다. 소련의 [[낫과 망치]],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등등의 상징도 그러한 역할을 한다. 또 제도나 의식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군국주의 사회에서 군인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단체에서 군대식 계급을 적용하고 그에 의한 차별적 대우를 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의미일 수 있다. 지식인에게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