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기 (문단 편집) === 2006년~2009년 === 중·고등학교 학생회장을 계속 연달아 역임한 엄친아 중의 엄친아 이미지로 데뷔한 이승기는 '''[[싸이]]'''가 만들어준 개성 강한 데뷔곡이자 최대 히트곡인 1집 나방의 꿈 타이틀곡 '내 여자라니까' 로 연상 누나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방송계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후속곡 '삭제'[* 최근에는 한 키를 낮춰서 부른다. 바뀐 창법(허스키한 목소리->부드러운 발라드 목소리) 이후로 발성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는 데뷔곡 같은 인기를 누리진 않았지만 몇몇 음악 팬들에겐 데뷔곡보다 오히려 선호하는 곡이 되었다.[* 데뷔 초기에는 90년대의 허스키한 록 보컬의 느낌에 가까웠는데, 창법을 바꾼 뒤로는 그 느낌이 많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고운 보컬에 가까워졌다.] [[2006년]]에 주말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 출연하게 된다. 데뷔 때부터 시트콤 《[[논스톱5]]》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지만 정극은 소문난 칠공주의 ''''황태자''' 역할이 처음이었다. 시청률 약 50%에 육박하는 국민드라마가 된 《소문난 칠공주》로 이승기는 [[배우]]로서도 얼굴을 알리게 된다. 이후 [[2007년]], 20세에 예능 《[[1박 2일]]》에 출연하게 된다. 1박 2일 시즌1 출연 이전까지는 연상녀들의 이상형인 '미소년 가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1박 2일 시즌1을 통해 '''새로운 모습(국민 허당)'''으로 어필하게 되고 국민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1박2일 단체사진.jpg|width=100%]]}}} || || {{{#191919 '''1박 2일 시즌1 최종 멤버들'''}}}[* 강호동이 8월에 탈세 논란으로 하차하고, 남은 5인이서 마지막회까지 같이 했다.] || 이승기가 '''[[1박 2일/역사#시즌 1|1박 2일]]'''에 처음 출연했을 때 1박 2일은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청률 10% 내외의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 캐스팅을 원하던 1박 2일의 [[이명한(PD)|이명한]], [[나영석]] PD의 생각과는 달리 이승기의 반듯하고 건강한 청년의 모습이 프로그램에 좋은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우정]] 작가의 판단으로 캐스팅이 전격 이루어졌다. 이승기를 신인 시절 여걸식스 당시부터 눈여겨 보아온 이우정 작가가 "요즘 젊은 애 중에서 승기와 같이 잘 자란 애는 없을 거"라며 이승기를 적극적으로 지지 및 추천했다고 이명한, 나영석 피디가 직접 증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승기가 《[[1박 2일/역사#시즌 1|1박 2일 시즌 1]]》에 출연 후 이우정 작가가 예상한 대로 반듯하게 잘 자란 이승기와 그 속에서 보이는 허당스러운 면이 프로그램과 잘 어우러져 프로그램 시너지를 크게 내고 프로그램 인기에 한 축을 이루게 된다. 《[[1박 2일]]》의 별명 '국민허당'[* 많은 사람들이 '허당'이란 별명이 처음 언급된 게 '1박 2일 [[1박 2일/2008년#s-2|경북 울진 1편'(080113,E166)]]'에서 [[김C]]가 붙여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승기가 1박 2일에 처음 합류하던 바로 당일날 [[https://youtu.be/bVVlZX5YK-s?t=1056|강호동이 언급한 것이 처음이다.]]] 을 기점으로 이승기의 팬이 고정 팬을 넘어 전국민적으로 급속도로 늘었다. 완벽할 것 같은 겉모습에 비해 어딘가 2% 부족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친근함, 하지만 쉽게 보이지는 않는 귀여운 영리함으로 이승기에게 딱 맞는 캐릭터이다. 이승기의 [[허당]] 캐릭터가 대박을 치고 난 이후, 아예 예능계의 트렌드가 바뀔 정도. 그동안 비호감, 자뻑, 호통이 주를 이루던 버라이어티 캐릭터에서 점점 '친근' 이미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허당]]의 후폭풍. 설정 논란 없이 그 자체로 자연스럽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어머님들의 아이돌로 등극, '국민사위'라는 호칭도 같이 얻었다. 2009년 상반기에는 [[SBS]] 특별기획 [[찬란한 유산]]마저 최고 시청률 47.1%라는 기염과 대박을 터뜨려 정말 확실하고 인정받는 '원조 국민 남동생'이 되었다.[* 당시 [[찬란한 유산]]과 [[1박 2일]], 3사 가요 프로그램의 모든 시청률을 모두 합쳐서 '''시청률 100%의 사나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가수]]로 확 뜨더니 [[예능]]으로 더 대박 치고 [[드라마]]로도 장외 홈런을 날려버리는 매우 단계적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그러면 이승기는 이제 가수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냐?"라는 의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승기는 지금도 가수다.''' 일각에서는 이승기의 음반 대부분이 다른 노래/가수의 [[리메이크]] 버전이라면서 자기 노래가 없다고 그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허나 리메이크 활동 이후에도 당당히 자기만의 앨범을 연달아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9년부터 매년 '희망 콘서트'라는 명목[* 여담으로 당시, 매년 희망콘서트에서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이승기 이름으로 사회 모금 단체에 기부하거나 환원하는 등 좋은 선행을 보였었다.]으로 콘서트를 개최해서 가수로서의 목표와 의식도 잊지 않고 있다. 그 살인적인 폭풍 스케줄에서 이승기 희망콘서트 준비까지 할 수 있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2009년에는 한 해 동안 다방면에서 활약했던지라 각 방송 3사의 연말 시상식, 가요무대마다 참석하느라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가요무대는 3사 전부 출연하는 것도 모자라 취약점인 춤의 비중'(사랑이란+결혼해줄래)'도 높아서 상당히 고단했을 듯. 채널을 돌리다 보면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는 이승기를 볼 수 있었다. 가요, 연기, 예능 모든 분야에서 3관왕 수상을 이루었으니 '''남성 스타들 중에선 2009년은 그야말로 이승기의 해.''' 그래서 현 시점에서는 허당보다는 '''황제'''라는 별명이 더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연예계를 정복한다는 황제라는 뜻이다. 사실 황제는 허당으로 활약할 당시에도 1박 2일에서 자주 쓰이던 별명이었으나 약간의 장난이 가미된 그 때와 달리, 지금은 글자 그대로 황제(皇帝)가 되어버렸다. 영광 편에서 드라마와 예능 합쳐서 시청률이 80%를 찍어 남은 20%의 시청률은 사고를 쳐서 뉴스에서 달성하자고 [[MC몽]]이 반 농담 삼아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