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인호(1936) (문단 편집) === 조부의 친일 문제 === 이인호 교수의 조부인 한학자 [[이명세]]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어용학자가 되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옹호하는 글을 많이 썼다. [[광복]] 이후의 행적도 비판거리인데, 1957년 7월 11일 자유당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성균관대학교]] 총장 [[김창숙]]을 축출하라는 이승만의 밀명을 받은 이른바 '재단파'가 폭력으로 김창숙 세력을 몰아내고 유도회와 성균관대를 차지했다. 이들은 유도회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유도회 및 지방향교대표자회의'또한 미리 약속한 깡패들을 불러들여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에 분개한 김창숙 등 '정통파'가 퇴장했으나, 경찰의 도움을 받아 회의를 강행해 유도회를 장악했다. 김창숙을 몰아내고 유림을 장악한 인물들은 일제 때 [[황해도]] 송화서장을 지내고 [[이승만]] 정권에서 서울시경국장, 치안국장을 역임한 친일파 [[윤우경]]이 중심이 된 자유당 정치 브로커들이었다. 유도회 총재에는 [[개신교]] 신자인 이승만이, 최고 고문에는 역시 개신교 신자인 이기붕이 추대되었다. 유도회가 자유당의 외곽단체로 전락한 것이다.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에는 바로 이인호의 조부인 이명세가, 총장 자리는 [[이선근]]이 가져갔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285438|이 때문에 '''KBS에서는 '친일'이라는 단어가 10년 동안 금기어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관련 방송이 기획되더라도 [[이병순|상]][[김인규|부]][[길환영|의]] [[조대현(언론인)|압]][[고대영|력]]으로 방송될 수 없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65583|훈장 시리즈 2부 '친일과 훈장'이 불방된 사건]]이 있다. 그리고 친일과 훈장은 [[뉴스타파]]로 통해 공개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