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인 (문단 편집) ===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맞는가? ===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말하는 '후손'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다.'''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과 관계가 없고 단절되었다는 주장은 학술이라기보단 다분히 정치적, 종교적 입장에 따른 유사역사학이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자 및 [[이슬라모포비아]] 성향의 서구인들이 찬란한 [[고대 이집트]]를 현대 [[이집트]]와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많이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중 일부도 여기에 동조한다. 오늘날 [[무슬림 형제단]]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브파]] 선교 자금을 지원받는 [[알누르당]] 같은 극렬 이슬람주의자들의 경우는 고대 이집트의 후예라는 점을 이슬람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부정하며 고대 이집트 문화 유산조차 [[우상숭배]]라고 파괴하자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 사대부 일부가 중국인 기자의 가르침이 야만스런 동이족을 교화시켜 그때부터 한민족 역사가 출발했다 여겼다고 해서 현대 한국인이 고대 한국인과 계승의식이 없으며 단절되었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극렬 이슬람주의자가 뭐라고 하건 이집트 정부와 대다수 국민의 입장은 언제나 한결같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이집트의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콥트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더라도 세속주의자일 경우에는 [[파라오]]가 [[모세]], [[예수]], [[무함마드]]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을 가진 경우조차 적지 않다. 자신들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집트 콥트 기독교 보수파는 모세가 콥트교인이었노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기독교는 기원 후에 성립되었고 모세 이야기의 원전이 되었을 사건은 기원전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다시피 전설 속에서 모세는 파라오와 척을 졌다. 따라서 이러한 모세를 콥트교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콥트교 보수파들에게 있어 고대 이집트의 후예라는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치 않음을 보여준다. [[하플로그룹]] 연구 결과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에 비해 더 많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과 많은 조상을 공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고대 이집트인은 아라비아, 북동아프리카, 소아시아, 발칸 등 근동(Near East) 지역 고대인과 더 가까웠다. 이집트로의 인구, 유전자 유입이 지난 1500년 사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보다 8% 많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http://www.etnews.com/20170602000306|기사]]. 물론, 역사가 진행되고 교류의 폭이 확장되며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문화적으로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헬레니즘화 이후 이집트 및 [[로마 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이집트]], [[이슬람 정복]] 후 이슬람화 이집트의 차이[* 그 중에서도 특히 의복 문화나 미술 및 건축 같은 분야.]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과연 현대 이집트인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가 맞을까?'하는 의문이 자주 제기되며 이집트학 관계자들이나 [[이집토마니아]]들이 일반인들에게 자주 듣는 고대 이집트 관련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사실 기원전 332년,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된 이래로 90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헬레니즘 왕조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클레오파트라]]를 마지막으로 [[파라오]]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이집트 고유의 신앙도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페니키아인]], [[유대인]], [[그리스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자리 잡게 되었고 [[이집트 상형문자]]도 [[그리스 문자]]로 대체되는 등 고유의 색채는 희미해져 갔다. 그 후 이집트를 정복한 무슬림 [[라쉬둔 왕조]]가 [[페르시아]]도 같이 정복하고 나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아랍]]의 영향도 같이 받게 되어 광범위한 문화 혼합 현상이 일어났고 언어도 점차적으로 [[콥트어]]에서 [[아랍어]]로 대체되어갔기에 자연히 고대 이집트와는 중세 이후의 이집트 간의 차이가 현격하게 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수많은 문화 요소들이 대체되는 와중에도, '''요리'''만큼은 고대의 식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걸레빵이라 불리우는 '아에시'와 [[맥주]]는 [[고대 이집트]]로부터 내려오는 식문화로 확인이 된다. [[돼지고기]] 역시 이슬람 도래 이전부터 터부시했기 때문에 이쪽으로 충돌할 여지도 없었다.[* 때문에 이러한 [[돼지고기]]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어찌저찌하여 서남아시아로 흘러가 [[코셔 푸드]]와 [[할랄]]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교리로 정착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돼지고기|돼지고기 문서]] 참고.] 유전자는 상술한 것처럼 [[하플로그룹]] 연구 결과에는 8%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나, 반만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이집트인과 오늘날의 이집트인 간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는 현대 이집트인과 고대 이집트인의 차이보다 어떻게 해서 기원전 3천년 경 이집트 고왕국과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가 어떻게 3천년이나 된 간격을 두고도 공통된 이집트 문화와 이집트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에 관련하여 이집트사 학자인 아서 골드슈미트는 이집트인의 계승 논란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는데, '고대 근동의 수많은 민족들 중 오직 이집트인들만이 살던 곳에 그대로 머물렀으며, [[고전 이집트어|언어]][* 고대 이집트인의 언어는 [[콥트 정교회]]의 예배 언어인 [[콥트어]]로 남아있다.]를 [[이집트 아랍어|한 번]] 바꾸고 [[이집트 신화|종교]]를 두 번[* 첫 번째는 [[콥트 정교회]], 두 번째는 [[이슬람]]] 바꾸었을 뿐이다.' 정리해서, 역사가 진행되며 외부혈통, 외부문화가 유입되고 섞이는 건 만국공통의 역사이며 문화와 종교도 시대가 흐르며 바뀔 수 있는 것 역시 세계적으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집트]]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정체성이 심지어 보수적이고 이슬람화된 이집트 아랍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문화적, 인종적 단절은커녕 오히려 이집트 문화가 오늘날의 이집트인들에게까지 역사적 영향력을 가감없이 끼치고있다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