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충희 (문단 편집) === 대구 오리온스 === 지도자 이충희의 본격적인 대시련사의 서막(?)이었다. KBL 대표명장이면서도 모교 후배의 슈터 출신이었던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의 후임으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의 4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 [[김동광]]의 제자로 [[안양 KGC인삼공사|SBS-KT&G]] 출신으로 SBS 선수-코치 겸 KT&G 코치-감독대행이었던 모교 후배이자 같은 슈터 출신인 [[김상식(농구)|김상식]] 수석코치를 함께 데리고 간다. 6년전으로 회고해보면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동양-오리온스]]는 2001-2002 시즌 이전 창단 코치였던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의 승진보다 이충희 감독을 원했는데 정태호 단장은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의 승진을 밀고 나갔다. 이건 신의 한수. 2001-2002 KBL 통합우승과 2002-2003 KBL 정규리그 우승 포함 2006-2007 시즌까지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포함 4강 플레이오프 총 4회로 대구의 황금기였다. [[창원 LG 세이커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돌풍 이후 2000년에 물러난 뒤 무려 7년뒤인 2007년에 KBL 감독으로 복귀했다.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의 주장이었던 [[김병철(농구)|김병철]] 선수와 슛내기까지 하면서 신뢰를 형성했다. 그러나, 미디어들은 강한 카리스마의 이충희 감독이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김진 감독의 런앤건에 녹아든 오리온스 선수들을 잘 맞출지는 의문을 가졌다. 개막전에서 모비스와의 울산 어웨이 게임에서 승리하며 좋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소리없이 찾아왔다. 이미 [[김진(농구인)|김진]] 감독 시절부터 무리한 평이 있는 [[김승현(농구)|김승현]]은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허리디스크가 오면서 위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에 [[김진(농구인)|김진]] 시절보다 무리하게 베스트 5만 고집했다. 예전으로 보면 거의 [[세이콘]] 수준이었다. 사실 김진 감독도 그랬지만 창단멤버로서 코치를 거쳐 내부승격을 한 이후 식스맨들도 가끔씩 출전하면서 배려를 했던 편인데 대조적이었다. 타임아웃에도 수비와 공격 문제로 지적만 하다 경기흐름을 놓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당시 오리온스 선수단도 주장 김병철 선수를 포함해서 다운되었다. [[막장]] 소리가 딱 어울리는 기존 팀 상황에 돌파구를 만들지는 못하고 4승 22패라는 충격적인 성적과 함께 7개월만에 한 시즌도 다 못 채운 채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김상식(농구)|김상식]]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2007-2008 시즌을 치른 뒤 2008-2009 시즌을 앞두고 내부승진으로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의 5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선배인 이충희와 함께 한시즌을 버티지 못하면서 같이 자진사퇴를 했다. 이후 2년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는 [[추일승]] 감독의 부임과 함께 대구체육관의 훈련시설 및 훈련환경 문제를 이유로 들어 대구에서 고양으로 충격적인 연고이전을 하게 된다. 결국 대구 팬들에게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 생활의 말년을 [[시발점]]으로 해서 어째 이충희 개인의 감독으로서의 능력 이전에 불거지는 팀 외부적인 상황에 휘둘리며 불운한 꼴만 이어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