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호연(기업인) (문단 편집) === 사업확장과 실패, 그리고 재기 === 젝키, 핑클에 이어 이효리 솔로까지 크게 성공시킨 이호연 사장은, 2000년대 중반 사업을 크게 확장하기에 이른다. 2006년 3월 섬유원단 제조 업체인 호신섬유주식회사와의 인수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회사를 [[우회상장]]하였다.[* 당시 코스닥 종목코드는 016040] '''이 시절 DSP는 SM보다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DSP가 제작한 드라마 그 여자, [[마이걸]], [[외과의사 봉달희]]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토지〉, [[파리의 연인]] 등을 기획한 문정수 PD, 〈성녀와 마녀〉〈그 여자〉의 [[소현경]] 작가 등 전문 인력들을 DSP로 영입했다. 훗날 문정수 PD는 [[해를 품은 달]], [[각시탈]] 등 대박 작품을 만들어냈고, 소현경 작가도 [[찬란한 유산]], [[내 딸 서영이]], [[황금빛 내 인생]] 등 히트작을 쏟아냈다. 이것을 보면 이호연 대표의 안목있던 인재 영입이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47946.html|기사]] 그러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상당한 금액[* 수백억대로 알려져 있긴 한데 어디서는 200억이라고 하고 어디서는 400억이라고 하는 등 정확한 금액은 알려져 있지 않다.]을 투자한 드라마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이 망하면서 큰 손실을 봤다. 결국 [[2009년]] 4월에 3년만에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되었다. 자연히 확장한 사업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호연이 드라마나 예능 제작에 눈을 돌렸을 때 DSP에서 배출한 아이돌들의 성적이 좋지 못했다. 이후 관련 사업들이 정리된 이호연이 다시 아이돌 파트에 뛰어들었는데, 뛰어난 감을 바탕으로 차례차례 히트를 시켰다. 카라의 경우 이호연의 입김이 컸던 구하라, 강지영 영입이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당시 별다른 실적이 없던 [[Sweetune]]에게 앨범의 곡 대부분을 맡긴 모험 역시 대성공이었다.[* 이후 스윗튠은 수많은 명곡들을 써내 탑급 작곡가로 올라섰다.] 전술한 바와 같이 별다른 실적이 없었던 [[배윤정]]에게 끝까지 안무를 맡긴 것도 성공 포인트였다. SS501의 경우도 이호연의 개인적 친분으로 발탁한 작곡가 한상원이 [[U R Man]]이라는 명곡을 만들어주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김현중이 출연한 것도 이호연의 인맥과 추진력이 상당히 작용했다. 당시 김현중은 미뤄진 앨범 내야하는데 뭔 소리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호연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김현중은 한류스타로 큰 인기를 누려 회사에 많은 수입을 안겨다주었다. 이후 일본에서 카라한테 반응이 오자 일본 진출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카라의 일본 첫 쇼케이스 후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