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효리 (문단 편집) ==== 1998년 ~ 2005년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핑클 완전체가 활동한 부분, rd1=핑클/활동)] ||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SJ_7JaWre4o)]}}} ||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5AxAGKWj3Fc)]}}} ||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Q5bUnCKTPy0)]}}} || || {{{-1 '''KBS 핑클 무대모음'''}}} || {{{-1 '''MBC 핑클 무대모음'''}}} || {{{-1 '''SBS 핑클 무대모음'''}}} || '''핑클'''(Fin.K.L)은 '''Fin'''e '''K'''illing '''L'''iberty의 합성어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우리가 끝낸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2회 수상하면서도, 같은 시기에 많은 [[예능]] [[활동]]을 하고 있었던 보기드문 아이돌 그룹이었다.([[핑클]]의 [[특이점]]으로 '가수 활동' 보다 '예능 활동'이 더 많다보니, 가수인데도 90년대 활약했던 [[코미디언]] 출신들과 다 아는 사이이다.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국진]], [[이경규]], [[박수홍]], [[이휘재]], [[지석진]], [[최양락]], [[박미선]], [[박명수]] 등등 여러 코미디언들과 함께 방송 활동을 했었다.)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하여 그 시절의 대중들에게 '[[핑클]]'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아이돌 그룹이다. ('''대중가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조차''' 다른 그룹은 몰라도 ''''핑클'의 이름은 알았을 정도'''로 '대중적'인 그룹이었다. 핑클빵, 핑클우표, 핑클 공중전화카드, 핑클 스티커사진, 핑클 악세사리, 핑클 게임 등등 사회 다방면으로 '핑클'만큼 영향력을 끼친 그룹이 없을 정도였다.) [[핑클]]은 흔히 말하는 1세대 걸그룹으로, 방송 3사 [[공연]] 때 외에는 [[신비주의]]가 기본이었던 아이돌[* 외국의 문화, 한국에서는 1987년 [[소방차(아이돌)]]부터 시작되어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본격적인 아이돌의 개념이 잡히기 시작해 1996년 [[H.O.T]]로 '1세대 아이돌'의 시작을 알렸다. 원래는 [[신화]]가 1세대 아이돌의 시작으로 기획되고 있었으나, [[베타테스트|테스트 버전]]으로 H.O.T를 결성해서 활동을 시작한 게 초대박을 일으키며, 대중 가요를 평정하는 신드롬을 일으켰었다.]의 관행을 깨고, [[전무후무]]할 정도의 [[예능감]]을 가지고[* 개그맨 [[김준호(코미디언)|김준호]]가 '[[코미디언]]들이 위기의식을 느꼈을 정도'라고 말하였다.] 압도적으로 많은 야외 [[버라이어티]] 활동(예능&오락 쇼)에 게스트로 참여했었지만, [[유튜브]]도 없었던 시절이었고, 방송사 홈페이지의 [[VOD]] 관리는 있었지만 너무 오래되어 제대로 남아있는 영상자료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세월]]과 함께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 그룹이 되어버린 [[핑클]], 이제는 [[아이돌]] 세계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핑클]][[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핑클]]을 이야기함에 있어 [[S.E.S.]](이하 SES)이야기가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H.O.T.와 SES의 성공을 보고서 대성기획이 젝스키스와 핑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력]](바다)과 [[비주얼]](유진, 슈)이 갖춰진 선진적 모습의 걸그룹이었기에, [[SES]]는 여성그룹 시장 판도를 선도했다. 당시로서는 높은 벽으로만 느껴졌던 [[일본]]시장까지 진출한 바 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밑바탕으로 [[보아]]가 일본 시장 개척에 성공할 수 있었다.[* DSP의 경우 핑클의 직속 후배 걸그룹 [[카라]](KARA)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했으나,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DSP의 [[성공]] [[신화]]도 함께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가요계는 [[H.O.T.]], [[젝스키스]], [[NRG(아이돌)|NRG]], [[S.E.S.]] [[태사자(아이돌)|태사자]], [[베이비복스]], [[디바]], [[OPPA|O.P.P.A]], [[신화]] 등등의 1세대 [[아이돌]] 그룹들 외에도 아이돌이 아닌 [[솔로]], [[듀오]], [[트리오]] 가수들의 활동([[이선희]], [[이승철]], [[이승환]], [[김건모]], [[엄정화]], [[임창정]], [[유승준]], [[김현정]], [[조성모]], [[양파(가수)|양파]], [[DJ DOC]], [[터보(그룹)|터보]], [[쿨(혼성그룹)|쿨]], [[클론(가수)|클론]], [[영턱스클럽]], [[컨츄리꼬꼬]], [[비비(아이돌)|비비]] 등등)도 치열하게 경쟁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핑클]]의 초반 상황은 엄청난 경젱 체제 속에 이뤄졌다.(그 대단한 '[[HOT]]'에 '[[젝스키스]]'라는 대항마를 마련했던 [[대성기획]](이하 [[DSP]])이 이번에도 그 대단한 '[[SES]]'에 대항하기 위해 [[걸그룹]]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기는 했다.) [[핑클]]은 특이하게도 가요 무대에 데뷔하기 전부터 아이돌 그룹이라는 '''이름만 알리고''', 곧바로 야외 버라이어티 행사를 뛰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정확한 데뷔 날짜를 아무도 모른다. '''1998년 3월''' 잡지 '뮤직웨이브' 신인 코너에 핑클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으며, KMTV에서는 '''4월에 데뷔'''한 그룹으로 2번 소개된 적이 있으나('비공식 무대' 공연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1998년 당시의 일부 팬들에 의해 '''5월 12일'''로 굳어졌다고 한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4387420&cid=60487&categoryId=60501|# 지식백과 CD앨범 리뷰]] 참조.) 국내활동에 전념하는 대신 '[[가요]] 활동'이 끝난 직후 곧바로 '[[예능]] 활동'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쉬는 텀 없이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이색적인 걸그룹이었다. [[핑클]]의 결성 과정도 알고보면 드라마틱한데, 1987년 '''최초의 한국형 아이돌 그룹''' [[소방차(아이돌)]]를 결성해 아이돌 그룹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 [[이호연(기업인)|이호연]]씨는 대성기획(이하 DSP)을 설립한다. 이후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려던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은 [[이수만]] 사장이 설립한 SM이 보이그룹 [[H.O.T.]]로 성공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원래 SM은 보이그룹 [[신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자 [[베타테스트|테스트 버전]]으로 HOT를 결성해서 시범적으로 활동을 해봤는데, 이 HOT 그룹이 초대박을 터뜨리며 한국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서둘러 그 대항마로 보이그룹 [[젝스키스]]를 결성해 큰 성공을 경험한다. HOT의 성공으로 대형 기획사로 성장한 [[SM]]을 상대로 '''라이벌''' 위치에서 겨룰 수 있게 된 것이다.[* 96년 당시에 SM이 대형기획사고 대성기획이 영세 기획사라는 서술은 잘못된 내용이다. 당시의 SM은 몇년간 별다른 실적없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오히려 대성기획이 [[박소현]], [[오현경(1970)|오현경]], [[이본]] 등 스타 연예인들을 보유했으며, 기타 가수들의 성공도 꽤나 경험한 바 있었다. 젝스키스는 데뷔하자마자 공중파 방송 11개에 고정 출연했는데, 이런 대성기획의 파워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은 미국에서 3인조 걸그룹으로 큰 명성을 날린 [[TLC]]를 벤치마킹하여 '''3인조 걸그룹'''([[김준희]], 애니, [[옥주현]]) [[핑클]]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SM측에서 더 빠르게 걸그룹 [[SES]](똑같이 [[TLC]]를 벤치마킹해서 [[바다]], [[유진]], [[슈]]로 구성된 걸그룹)을 결성하여 대박이 났었다. 이에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은 생각을 바꿔서 SES의 대항마가 될 걸그룹을 결성하기로 마음 먹고는, 준비하고 있었던 3인조 걸그룹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기존 멤버 '[[김준희]]'가 빠지고[* DSP는 [[룰라]]의 '[[채리나]]'와 '[[김준희]]'로 구성된 듀오 그룹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당시 채리나는 본인이 직접 한국의 '[[TLC]]'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채리나가 만든 그룹이 [[디바]]라는 3인조 걸그룹이다.] 대신 '애니', [[옥주현]], [[이진]], [[성유리]]로 새로운 '''4인조 걸그룹''' [[핑클]]을 결성했는데,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이 보기에 [[SES]]와 비교를 해보니 도저히 SES를 감당할 것 같지 않자, 다시 한번 그룹의 컨셉을 바꾸기로 한다. 이렇게해서 '애니'가 멤버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애니'의 행보에 대해서는 [[#s-3|# 데뷔]] 참조) 비어있는 한 자리를 채워줄 [[피스메이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략 20명 정도의 후보들이 거쳐갔다고 한다.) 그 자리에 들어온 마지막 멤버가 이효리였던 것이다.(이효리를 본 [[핑클]] 멤버들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s-3|# 데뷔]] 참조) 이렇게 '''급조'''된 [[핑클]]은 기존 아이돌 그룹처럼 [[신비주의]] 걸그룹 컨셉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새롭게 결성된 핑클의 [[이효리|리더]](이효리)가 그런 컨셉이 천성적으로 맞지 않았던 탓에 [[핑클]]은 '''예능돌의 시조'''가 되었다. 1세대 걸그룹 [[핑클]]로 활동하던 20대 초반에는 무대 위에서는 '[[청순]] [[요정]]', 무대 밖에서는 '[[개그우먼]] 못지 않은 입담꾼'이라는 반전매력을 보여주었고[* 1990년대까지만해도 국내 방송업계에 [[예능]]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로, 연예계는 크게 '영화배우/배우/가수/코미디언/방송진행자' 정도로 구분되고 있었고, 각 직업 별로 정체성이 확고했기에 '배우는 배우답게, 가수는 가수답게' TV에 이미지를 내비치는 게 관례였었다. 그렇기에 청순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데뷔한 아이돌이면서도 코미디언 못지 않게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개성'이었는데, 이러한 모습은 후대에 예능하는 걸그룹 아이돌들에게 하나의 교재 역할이 되기도 했었다.], 여성 '솔로 가수'로 활동하던 20대 중반에는 이전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무대 위에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섹시]] 이미지를 내세웠고, 무대 밖에서는 '털털한 성격에 겉모습은 여성스러운데 행동은 남성스러운 [[보이시]]한 모습'이 반전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실제 [[79클럽]] 멤버들은 이효리를 또래 [[남자]]로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었고([[해피투게더]](2002), [[공감토크쇼 놀러와]](2007)), 후배 아이돌 [[SG워너비]]는 연예방송(2007년 워너비쇼) 인터뷰 중에 선배 이효리를 두고 '너무 털털해서 동네 형처럼 느껴진다'라고 고백했었다. 2008년에 연말 공연([[MKMF]])을 함께했던 아이돌그룹 [[BIGBANG]] 또한 비슷한 의미를 담아 예능방송에서([[상상플러스]](2008년), [[라디오스타]](2009년), [[정재형 이효리의 유&아이]](2012년)) '무대 위의 이효리(가수)와 무대 밖의 이효리(예능인)'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30대부터는 기존의 섹시 이미지와 함께 그 시절에는 없었던 개념인 [[걸 크러시]]라는 이미지를 내보였었다.[* 국민MC [[유재석]]이 2017년 [[무한도전]]에서 그녀를 소개할 때 '걸크러시의 원조격'이라고 말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4HyKaYaftU|# 무한도전 특집 '효리와 함께 춤을']](아쉽게도 풀버전이 아닌 이 유튜브 영상에서는 그 부분이 편집되어서 나오지 않는다.)] 솔로 데뷔 이후 이효리의 이미지가 '섹시 디바'(10 Minutes)로 시작해서 '걸크러쉬'(Bad Girls)의 원조격 인물로서 '쎈 언니', '강한 여성' 이미지를 가졌었기에 '[[핑클]]의 리더 이효리'라고 하면, 언뜻 [[카리스마]]있게 팀을 이끄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2013년 라디오스타(330회)에 출연한 '이효리의 말에 따르면' 팀의 중심을 잡는 실질적인 리더는 '[[옥주현]]'으로, 자신은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소속사(매니저)와 갈등이 생겼을 때 [[악역]]을 도맡는 건 '[[옥주현]]'과 '이효리' 두 사람이었고(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효리/여담]] 참조), 팀의 웃음(개그 담당)과 예능 방송에서의 선봉장 역할(MC)을 수행하는 게 이효리였다. '''의외로 [[핑클]] 내부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했던 [[실세]]는 막내 [[성유리]]'''였고, (여러 아이돌 그룹에 존재하는 '[[막내온탑]]'의 이미지를 만든 시조이다. 언니들 모두 막내 [[성유리]]를 예뻐하는 터라 [[핑클]] 활동 내내 한번도 언니들에게 혼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리더였던 이효리가 오히려 '[[맏내]]'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맏이]]이면서도 [[막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효리가 애교를 부릴 때면 멤버 중에 특히 [[이진]]이 못견뎌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shorts/Il-Yl1QAWcs|# 이효리 애교에 기겁하는 이진]]) 1998년 5월,''' 1집 앨범 데뷔곡 [[블루레인]](Blue Rain)을 선보였지만''', 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힐링캠프]](39회)에 출연한 이효리의 말에 따르면, [[SES]]의 대항마라는 [[소문]]으로 꽤 높은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1집 컨셉이 SES의 요정 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러 어두운 정장 차림에 [[전사]] 컨셉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업계 관계자들 눈에 멤버들의 외모나 노래 실력이 소문만큼 대단치 않아 실망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2015년 [[옥주현]]의 회고에 따르면(옥주현의 회고는 [[/여담|여담]]을 참고), 멤버들조차 당시 분위기를 '당연한 결과'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정도라고 한다. 시간을 들여 노래 실력을 향상시키기보다 그 시간에 야외 행사 스케줄을 소화해야하는 형편이었다. ([[핑클]]은 1세대 예능돌이자 동시에 1세대 생계형 아이돌이었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대외 활동에만 쏟고 있었기에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기약할 수 없던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 때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의 발빠른 행동력으로 [[내 남자친구에게(핑클)]]를 준비했다. 어둡고 애절한 컨셉의 [[블루레인]]과는 다르게, 밝고 명랑하며 귀여운 소녀 컨셉이었는데, 멤버들도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노래가 대호평을 받았고 덩달아 블루레인의 인기도 함께 높아지기 시작했다. ([[핑클]]의 데뷔곡 [[블루레인]]이 망했다고 잘못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 방송 1위, '''지상파 방송 2위(1위 경합에서 패배)'''를 달성했었다. 그 해 시상식에서는 '정작' 1위곡이었던 '내 남자친구에게', '루비(슬픈 눈물)'보다 '블루레인'으로 많은 수상을 하였다.) 위의 상황이 [[핑클]] 데뷔 2주 ~ 4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인터넷 검색 결과 1998년 5월 25일부터 '내 남자친구에게' 관련 글이 나오는데, 유튜브 영상은 첫 1위가 9월로 나와있다. 2015년 옥주현의 회고(sns)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후속곡을 준비했었다는데, [[음원]]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라 지상파 방송에서 '블루레인'을 부르고 있을 때, 전화투표로 '내 남자친구에게' 곡이 인기를 얻었을 수도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자료 찾기가 쉽지 않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4387420&cid=60487&categoryId=60501|# 지식백과 CD앨범 리뷰]]에 따르면, 5월 초에 앨범이 나오자마자 방송 무대는 없었지만, 앨범의 반응이 괜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안티팬]]들의 방해에 시달렸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보면 HOT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이 서로 싸우는데, 핑클의 경우 이 두 팬클럽이 '''모두 핑클의 안티팬'''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SES의 팬들은 물론, 다른 아이돌 그룹의 팬들까지 대부분이 [[핑클]]의 [[안티팬]]이었다.-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 패러디 : 관객의 대다수는 우리를 싫어하는 안티들이다. 그렇다면 우린 악당인가? ''''악 당 등 장!'''!', [[산왕공고]](SES) 팬들 앞에 '무대 공연'을 위해 등장하는 [[북산]](핑클)의 모습은 만화 속 현장 분위기와 흡사했다.) 그들이 무대에 '꺼져라'를 연호하며[[https://www.youtube.com/watch?v=pWf127GwcFg|# (1집 '루비' 방송 무대 공연현장)]] [[닭다리]]를 던지든[* 핑클 멤버들 어머님들이 딸들의 공연을 구경오셨다가 이 광경을 보고 조금 충격 받으셨다.], 멤버들 얼굴에 [[계란]]을 던지든(팬사인회에서 안티팬의 만행), 핑클 차량에 [[토마토]]를 던지든(교통사고 유발로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멤버를 [[화장실]]에 끌고가 괴롭히든[* 이효리는 가요계 선배들에게 붙들려 화장실로 끌려간 일화가 있다.(채리나가 탈퇴한 [[디바]]의 남은 멤버들로 [[베이비복스]] 멤버들을 괴롭히던 전적이 있다. 2003년 이효리가 솔로 데뷔로 큰 인기를 얻자 이효리에게 찾아와서 지난 일을 사과했다고 한다. 핑클 때부터 인연이 깊었던 [[유재석]]이 2008년 [[패밀리가 떴다]], 2009년 [[공감토크쇼 놀러와]], 2012년 [[해피투게더]] 10주년 특집방송, 2020년 [[놀면뭐하니]] 싹쓰리 편 등등의 예능방송에서 잊을만하면 다시 거론해주고 있다.), [[성유리]]의 경우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안티팬들에게 붙들려 집단 괴롭힘을 당했으며, 이 때 소속사 사장님에게 [[핑클]] [[탈퇴]]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멘탈]]이 흔들렸었다고 한다.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성유리]]는 '지금도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보이면 무섭다. 교복입은 애들은 다 [[핑클]]의 [[안티]]였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저주]]의 편지를 보내거나 [[욕설]]과 [[악플]]을 던지고 [[소설]]을 써서 악성 [[루머]]를 만들어 소문을 내든 간에 [[핑클]]은 활동을 멈추지 않고 앞만보고 달렸다.[* 훗날(2007년 무렵) 이효리가 예능 방송에서 고백하기를, 핑클 활동 시절에 유독 야외 방송 스케줄이 많았었는데 '관중석 방향에서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 잦은 [[성추행]]을 당했었다고 한다. 주로 엉덩이나 몸을 더듬는 손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 '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데뷔곡으로 2위, 후속곡으로 1위를 차지한 핑클의 삼속곡 [[Fine Killing Liberty : BLUE RAIN|루비(슬픈 눈물)]]는 ''''블루레인'의 발라드 분위기'''에 ''''내남자친구에게'의 소녀스러운 이미지'''가 합쳐진 곡으로, 주변의 우려와 달리 이 곡은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핑클은 이 때 처음으로 '''[[청순]]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물론 예능 활동을 할 때는 철저하게 망가지기도 했었다.) 데뷔하고 1년이 지나 1999년 5월에 '''2집 앨범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이 공개되었을 때''', [[SES]]와의 간격은 '''급속도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 노래로 [[핑클]]은 '''[[요정]]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그 해 '''[[가요대상]]을 2회 수상'''하면서 1세대 최고의 걸그룹 [[SES]]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방송업계에서는 '''SM vs DSP'''의 소속사 간 라이벌 구도를 이용해 [[HOT]] VS [[젝스키스]] 때처럼 [[SES]] VS [[핑클]] 구도를 만들어 적극 이슈화시키기 시작했다. 방송 홍보물에는 [[요정]] vs [[요정]]으로 표현되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신비주의 [[SES]]와 예능에서 망가지는 [[핑클]]의 이미지가 같은 요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달랐었기에 [[여신]] vs [[요정]] 으로 구별하기도 했었다.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 이후로도 후속곡 '자존심'과 그 외 'Wating for you' 등 2집 수록곡들이 히트를 치며, 핑클의 인기가 가파르게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1999년 10월, '''2.5집 앨범으로 크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나의 왕자님께', 'White', '가면의 시간'이 히트를 쳤었다. 밀려드는 CF, 방송활동이 늘어나자 2.5집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각종 행사에도 1순위로 불려나가고 해외에서까지 '핑클'에 대한 러브콜이 울리기 시작했다. (국내 활동만 했는데도, [[중국]]측 업계의 초청으로 '대만 콘서트'를 했고, 북한 [[평양]]에 가서 무대 행사를 했었다.) 2000년 5월 [[젝스키스]]가 해체하자, 이 모든 게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과 [[핑클]] 때문이라는 [[젝스키스]][[팬]]들의 어긋난 분풀이가 [[핑클]] 멤버들을 괴롭혔지만, [[핑클]]의 기세는 여기서 꺾이지 않았다. 2000년 8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핑클]]은 '''주변의 많은 [[우려]]를 뒤로한 체 또다시 [[이미지]] [[변신]]을 단행'''하였다. (이 당시 가요계는 ''''별들의 전쟁'''' 이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당시 가요계에''' Big3'''라 불리던 '''[[H.O.T.]], [[서태지와 아이들]], [[조성모]]가 컴백'''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god(아이돌)|god]]의 '거짓말', [[박지윤(가수)|박지윤]]의 '성인식',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의 '와', '너'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던 상황에서, [[핑클]]은 2년을 쉼없이 예능방송과 가요방송을 오고가며 이미지 소모가 심했었던 차였다.) 1집 앨범의 '''[[소녀]] '''컨셉에서 2집 앨범의 '''[[요정]]''' 컨셉을 지나 3집 앨범에서는 '''[[커리어 우먼]]''' 컨셉을 보여주었다. 종전과는 다른 '''성숙한 모습과 파워풀하고 섹시한 춤과 노래'''를 공개하며, 단숨에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걸그룹은 '''남성팬'''이 대다수였고, 더 어린 걸그룹이 나오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팬들이 많아 소속사 입장에서는 불안요소였는데 3집 때에 비로소 '''여성팬'''층이 두터워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효리의 무대 퍼포먼스가 주목받게 되며, [[핑클]]의 마스코트하면 [[성유리]]라고 생각했던 대중들에게 [[핑클]]의 마스코트는 '''[[성유리]]와 이효리 투탑'''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연말에는 후속곡 'Feel Your Love'로 활동을 하는데, '교복컨셉', '힙합컨셉', '작업복컨셉' 등 무대마다 각양각색으로 변신하는 의상으로 주목받았는데 그 중 메인인 ''''스쿨룩''''이 화제를 모았다. 이 당시 이효리가 랩을 시도해 ''''랩퍼횰''''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핑클의 3집 활동은 갑작스럽게 흐지부지 끝나게 되는데, '''[[옥주현]]이 예능 활동 중 다리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99초 스탠바이 큐]] 촬영 중 발생한 사고로, 총 42화 중 24화까지 출연하던 핑클은 이때 하차하게 되었다. 그 시절 [[예능]]은 위험천만한 게 참 많았었는데, 예능 촬영하다 [[사고]]로 죽거나 죽을 뻔한 연예인들이 꽤 많았다. - 핑클도 데뷔초에 빨간옷을 입고 '싸움소'에게 시비를 걸어야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KF9QjU06o&t=546|#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9:06 '싸움소' vs 핑클)]]) 아쉬운대로 '''3.5집 앨범''' 준비에 착수하는데, 핑클의 1000일 파티(핑클과 인연이 깊었던 [[유재석]]이 진행을 맡았다.) 때에도 [[옥주현]]은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었다. 이때부터 [[SES]]와 [[핑클]]은 '''방송에서 '띄워주는' 라이벌'''이 아닌 '''[[멤버]]들과 [[팬]]들이 인정하는 대등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2001년 핑클의 '''3.5집 리메이크 앨범도 대호평'''이었다. 혜은이가 발매하여 대히트를 기록한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활동을 하며 향수를 불러일으켰따. 그야말로 완숙해진 [[핑클]]이었다. 이효리의 보컬 역량도 인정받으며,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다시 한번 방송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그 해에 '대상 후보' 격인 ''''최고 인기상''''을 수상했다. 후속곡 '늘 지금처럼'도 히트를 쳤다. 2002년에는 '[[공백기]]'라는 이름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면서 '4집 앨범'을 준비함과 동시에 아이돌 업계 최초로 '[[개인]] [[활동]]'도 하기 시작했다. [[옥주현]]은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DJ를 맡아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이진]]은 '[[논스톱3]]'라는 MBC 시트콤에 출연하여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다. [[성유리]] 또한, '[[나쁜 여자들]]'이라는 SBS드라마에 출연하고, MBC '섹션TV연예통신'에 MC를 맡기도 하였다. 이효리는 예능방송 '[[타임머신(텔레비전 프로그램)|타임머신(MBC)]]'([[박수홍]]과 함께 진행)과 ,'[[해피투게더(KBS)]]'([[신동엽]]과 함께 진행)을 맡으며 ''''MC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3월에 등장한 핑클 '''4집'''은 ''''역대 핑클 앨범 중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앨범''''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가창력]]부터 호평받으며 성숙한 느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SBS에서 '쇼! 일요천하 - 핑클과 가자가자'([[주영훈]]과 함께 진행)라는 예능 방송에 고정출연하였다.) 이효리가 작사를 맡은 타이틀곡 '영원'이 대히트를 했고, 'Never', 'Don't go away' 등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 시기에 핑클은 뮤직뱅크 무대의 대부분을 엔딩무대로 장식할만큼 최고의 걸그룹 대우를 받고 있었다. 최초의 여론 조사 기관 '[[리스피아르 조사연구소|리스피아르]]'는 상/하반기 여성 가수 1위에 [[핑클]]이 뽑혔다. 2003년부터 멤버들이 흩어져서 본격적으로 '개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효리의 경우, 그 해에 이효리 [[신드롬]]을 일으키며 가요계에 두각을 나타내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d9cOhlP8PQ&t=2577s|# (2003 스타스페셜 핑클 (42:57)) '성유리 : 누군 잘되고, 누군 안 되고, 그러면 진짜 마음이 아프고 그러잖아. 다 잘 됐으면 좋겠고...']] 이효리가 너무 떠서 그렇지 [[옥주현]], [[이진]], [[성유리]] 모두 저마다 각자의 영역에서 좋은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다만, '업계 관계자'(가요계, 드라마계, 뮤지컬계)들의 '아이돌 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대중'들의 '핑클 멤버들의 근황 [[비교]]'가 멤버들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고 한다. 특히 [[옥주현]]은 2019년 [[캠핑클럽]]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가 핑클 동료였던 이효리의 큰 성공('이효리 신드롬')에 자극을 받아 자주 '비교'를 하신 탓에 심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고 한다.) 2002년부터 멤버 전원이 개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세 사람은 모두 각자의 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성유리만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성유리]]의 경우, '개인 활동' 때 무엇을 해야겠다는 '꿈'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세 멤버들이 능동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고 있을 때, 성유리는 소속사에서 시키는대로 진로를 정해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었는데, 업계의 대우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이 '신인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며 '나만 뒤쳐진다.'는 생각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2019년 캠핑클럽) 그렇게 멤버 전원이 흩어지고, 2005년경 한 차례 고비를 넘긴 후(옥주현은 [[요가]] 사업을 하다 경영문제로 위태로운 상황을 겪었고, 이효리와 성유리는 드라마에 출연했다가 '[[발연기]]'라며 폄하당했다.) 2008년 무렵이 되었을 때, 모두들 각자의 분야에서 '대중'들과 '업계' 관계자들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 핑클은 아이돌 그룹 최초로 '해체하지 않고' 멤버 전원이 개인활동을 하면서 다시 그룹활동을 하는 '따로 또 함께' 라는 활동을 시도하며 2005년에 핑클 DVD를 발매하는 모습을 보여줬었으나, 이후로 사실상 해체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되면서 보이그룹 [[신화]]가 '따로 또 함께'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1세대 걸그룹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지만, 2010년. 이효리와 [[옥주현]]이 ''''서울문화예술대상''''에서 각각 '대중음악 가수부문 [[대상]]'과 '뮤지컬 배우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핑클]]의 이름이 다시한번 방송업계와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당시에 [[이진]]과 [[성유리]]도 드라마 배우로써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었기에, [[핑클]]은 개인활동을 시도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인 동시에 '''모든 멤버들이 그룹활동과 개인활동에 성공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라는 상징성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2010년 [[핑클]]의 위엄'''이란 ''''모든 세대의 아이돌 그룹이 한번은 꿈꿔봤을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때부터 [[핑클]]의 [[안티팬]]들은 본격적으로 핑클 멤버 간의 ''''불화설''''을 조장하며 [[핑클]]의 위상을 흔들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었는데, 당시에도 [[이진]]과 [[성유리]]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드라마]]에만 전념하며 [[핑클]]과 멀어져있었고(당시 업계 분위기가 ''''아이돌 출신''''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무시하고 있었다.) [[옥주현]] 역시 업계에서 '아이돌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뮤지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이효리만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꾸준하게 [[방송]][[활동]]을 통해 대중들이 [[핑클]]을 잊지 않도록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활약을 했었으나('[[전직]] [[요정]]'), 2010년 여름 ''''4집 바누스 표절곡 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이효리는 칩거에 들어가 연예계를 2년 가까이 떠나있게 된다. (약 4개월가량 칩거하던 이효리는 지인 [[김제동]]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이후 국내외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사회적 발언과 유기견 보호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운동가|# 사회운동가]] 참조) 그리고 2013년 복귀와 동시에 5집 앨범으로 2주간 활동을 하며 가요 차트 1위를 찍더니, 더이상 [[연예계]]에 미련이 없다는 듯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내려가 서서히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라는 유행어처럼 [[박수칠 때 떠나라|박수 칠 때 떠나려는 큰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이효리는 '대학가요제'를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 연속으로 고정 MC를 맡고 있었다. 대학가요제를 주관하는 '방송사'나 이효리의 '소속사' 모두 이효리의 10년 연속 진행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으나, 이효리 본인이 대학가요제 MC 제안을 승낙하지 않아 2012년 대학가요제는 [[미쓰에이]]의 [[수지(1994)|수지]]가 맡게 되었다. [[https://star.mt.co.kr/stview.php?no=2012110310343035070&type=1&outlink=1|# 스타뉴스 (이효리 '대학가요제' MC 10년, 왜 물러났나)]] 2012.11.03 기사] - 5집 '[[미스코리아(동음이의어)|미스코리아]]' 가사를 참조) (1998년 [[대학생]] 신분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횟수로 15년차였었다. 이효리는 [[아이돌]] [[태동|태동기]]에 '''1세대 아이돌 출신'''으로 가요계에서 활약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 [[전성기]]가 도래하던 200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솔로 가수들이 아이돌에 밀려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솔로 가수로서''' 끝끝내 '''가요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내는 저력을 보여주었었다. 가요계가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상식이 [[중단]]되었음에도 [[가요대상]]을 9개, [[연예대상]]을 1개 수상하고, 광고방송업계에서 여배우들을 제치고, 여가수 최초로 '최우수 모델상'을 수상하며, 대학가요제 MC를 9년 연속으로 맡는 등 [[가수]]로도 [[예능인]]으로도 [[CF]][[스타]]로도 [[패션]][[모델]]로도 [[방송인]]으로도 업계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던 [[팔방미인]]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를 위해 '핑클'을 섭외하려고 [[유재석]]과 [[정형돈]]이 제주도에 내려가서 본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V1cH_SLlii0|# '콩농사'를 짓고 있는 이효리]]였다. (당시에 이효리는 [[자수]], [[도예|도자 공예]],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배우는 등 '''[[자기개발]]'''에 전념하며, 천천히 [[연예인]]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16&aid=0000090362|# (SBS 연예뉴스, 이효리 작업실 블로그 통해 공개 '자수 작품, 인형' 이효리 손 거쳐]])) 이 방송은 높은 시청률과 화제를 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 토토가에 [[핑클]]은 출연하지 못했다. 이효리의 '2008년 내 콘서트 이후로 멤버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는 고백에 ''''핑클 불화설''''의 오해가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다. (사실, 이효리는 지나간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2010년 9월에 [[옥주현]]의 '가요광장' 라디오 방송에서도 함께 모였었고, 10월에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님의 병문안을 가서 다함께 1집 [[Fine Killing Liberty : BLUE RAIN|루비(슬픈 눈물)]]를 부르기도 했었다.) '''2015년 힐링캠프''' '신년의 밤' 특집 방송에서 MC를 맡고 있던 [[성유리]]가 [[이진]], 이효리, [[옥주현]]과 전화 통화를 하고, 성유리와 옥주현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제동]]에 의해 이효리와 2차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서 지긋지긋한 ''''핑클 불화설''''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9dMBFAp1zc|# (오열했다고?)]] '''2018년''' [[대성기획]](DSP)을 세우고, [[젝스키스]], [[핑클]], [[클릭비]], [[SS501(아이돌)|SS501]], [[카라]] 등을 만들었던 창립자 '''[[이호연(기업인)|이호연]] 사장'''이 8년의 투병 생활을 끝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효리는 [[핑클]] 멤버들을 만나는 꿈을 자꾸 꾸게 되었고([[회한]]), [[효리네민박]](2017~2018) 제작팀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캠핑클럽]]이 기획되기에 이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2kVVFZ6tCq4|# 캠핑클럽 (효리&이진 : 주현이는 의지하고 싶고, 유리는 지켜주고 싶고...) (효리 : 나는? 너에게 있어서 나는 뭐야?) (이진 : 솔직히 말해서 언니... 몰랐어. 나랑 이렇게 비슷한 성격일 거라고는... 그 때는 몰랐다?) (효리 : 너네가 날 되게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