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장기 (문단 편집) === 고대~근세 === || [[파일:w0j3qAc.png|width=100%]] || ||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 || [[태양]]을 그린 깃발은 일본에서 고대로부터 오래도록 사용되어 왔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701년]]에 [[몬무 덴노]]가 태양을 나타낸 깃발을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것이 일본 역사상 최초로 태양 상징 깃발을 사용한 사례이지만, 흰색 바탕에 빨간 동그라미는 아니었다고 한다. 동그라미 하나라는 모양새는 고대에나 현대에나 같았는데, 당시에는 대부분 화려한 붉은색 [[비단]]에 노란색 또는 금색으로 원이나 국화 문장을 그려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라는 일본 조정을 상징하는 기(旗)로 사용하였다. 비단도 단순히 붉은색으로만 물들이지 않고 이런저런 문양을 넣은 고급품을 사용하는 사례도 많았다. 흰 바탕에 붉은 원을 그린 도안의 유래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에는 [[겐페이 전쟁]]에서 [[헤이케]] 진영이 [[관군]]을 자칭하며 니시키노미하타를 사용하자 [[카와치 겐지]] 진영에서는 이에 대비하여 흰 배경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린 깃발을 사용하였고, 미나모토 진영이 승리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선 이후 [[쇼군]]들이 겐지(미나모토)의 후예를 자칭하며 이들의 깃발을 사용하면서 천하통일의 상징으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 [[파일:treasure01.jpg|width=100%]] ||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장기 || 하얀 배경에 붉은 동그라미 형태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장기는 [[야마나시현]]에 있는 사찰 운포지(雲峰寺)에서 보관 중이다. 전승에 따르면 1056년 [[고레이제이 덴노]]가 [[미나모토노 요시미츠]]에게 하사한 이래 다케다 가문에서 가보로 대대로 전해왔다고 한다. 이 전승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늦어도 16세기 이전에는 이러한 일장기가 제작되었다. || [[파일:Atakebune3.jpg|width=100%]] || || 1593년 [[임진왜란]] 당시 [[구키 요시타카]]의 함대 || || [[파일:Edo_l54.jpg|width=100%]] || || 1642년~1644년 구로다 히데오(黒田日出男)의 '에도도병풍(江戸図屏風)' || || [[파일:AsahiMaru1856.jpg|width=100%]] || || 1856년 [[에도 막부]]의 군함 '아사히마루(旭日丸)' || [[에도 시대]]부터 [[에도 막부]]의 함선에 붉은 원 문양 깃발을 매달면서 본격적으로 현재 형태의 일장기가 널리 퍼졌다. 근대에 들어서는 외국 교역선과 교역하면서 국가를 표기하기 위해 자국 교역선에 붉은 원 깃발을 달게 되었다. [[1854년]]에 [[미일화친조약]]을 맺고 나서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건의에 의해 이 깃발을 일본의 선박을 외국과 구분하기 위해 일본의 함선에 이 깃발을 달도록 규정하였다. 이후 [[1859년]] 막부는 이 깃발에 '미쿠니소지루시(御国総標)'라는 이름을 붙여 사실상 일본의 국기로 자리매김하였다. 1862년 미쿠니소지루시는 [[막부육군]]의 군기로 채택되었고, [[1868년]] [[무진전쟁]]에서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은 관군으로서 조정으로부터 니시키노미하타를 받은 것과 반대로 구 막부 세력들은 미쿠니소지루시를 들고 싸웠다. 한편 위 아사히마루 그림의 선수기와 돛대에 그려진 깃발은 대중흑기(大中黒旗)라 하며 도쿠가와 가문의 조상인 [[닛타 요시사다]] 가문의 인양문에서 유래하여 막부의 상선기로 쓰인 것이였다. 위 아사히마루에서는 일장기와 함께 걸려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