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투기 (문단 편집) ==== [[제1차 세계대전]] ==== ||[[파일:external/www.directart.co.uk/dhm1646.jpg|width=100%]]|| || 독일 제국의 [[포커 삼엽기]]와 대영제국의 [[솝위드 카멜]] || [[프로펠러]]-[[복엽기]]-낭만으로 요약할 수 있는 시대이다. 처음엔 정찰을 나간 동종업계 종사자끼리 서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항공정찰로 인해 아군과 적군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을 막기 위해 기관총 탑재가 시작된 것이다. 극초기의 공중전은 1인승 정찰기로 치러졌다. 이때는 정립된 공중전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조종사가 직접 [[리볼버]]나 [[권총]]을 한 손에 들고 적 정찰기에 가까이 붙어 쏴대는 간단한 방식으로 싸웠다. 이후 2인승, 3인승 항공기가 보편화되며 조종사는 조종만 하고, 다른 자리에 앉은 승무원들이 권총보다 훨씬 강력한 소총을 지참해 화력을 담당했다. 개인화기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방아쇠만 당기면 수십, 수백 발까지 약실에 알아서 장전해 발사하는 [[기관총]]이라는 획기적인 물건이 등장한다. 항공기를 운용했던 각국은 기관총을 어떻게든 항공기에 얹고자 갖가지 방식을 시도했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후방사수 자리에 설치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윗날개 위에 달아서 '''그 뒤에 일어서서''' 사격하는 방식으로 전방 사각을 때운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는 이때 비행기들이 충분히 느렸기에 가능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항공기의 비행 축선(軸線)에 조준선을 일치시킨 '''[[기총|전방기총]]'''(前方機銃)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확 달라져버렸다. 물론 내가 쏘는 기관총에 내 전투기의 프로펠러가 부러지면 안 되니까, 처음에는 프로펠러를 강철로 보강한다든가 하는 꼼수를 쓰다가, 독일의 '''[[포커 아인데커]]'''(단엽기)에 이르러 노획한 프랑스 전투기의 전방기총 기술을 더욱 개량 하여 완전한 프로펠러 동조 장치가 장비되었다. 엔진 샤프트에 캠을 장착하여, 프로펠러가 기총 앞에 오면 발사를 중지시키도록 하는 싱크로나이즈드 기어(synchronized gear)가 탄생한 것이다. 전방기총의 의의는 해전사에 있어서 [[충각]](衝角)의 의의와 거의 같다. 즉 기존의 '항공기에 무기를 탑재' 수준이 아니라, 항공기 그 자체를 무기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항공기의 조종과 탑재된 무기를 사용해 적을 공격하는 것이 별개의 행동이었지만, 전방기총을 달자, 조종사가 기체 자체를 조종해서 목표를 겨누고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방 기총이 출현하면서부터 비로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리가 아는 [[도그파이트]](dog-fight)가 시작되었다. 공중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뵐케의 금언]]도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이 꼬리 물기 싸움이 시작되자 이내 양 진영에서는 잽싼 선회가 가능한 항공기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신형기의 개발도 이쪽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 정점에 선 기체가 [[붉은 남작]]의 '''[[포커 삼엽기]]'''로, 순간 정지 후 180도 반전이라는 극단적인 선회 능력을 갖추기에 이른다. ||[[파일:external/pds22.egloos.com/a0017462_4fce4b75a5ebb.jpg|width=100%]]|| || 솝위드 카멜을 격추시킨 포커 삼엽기 || 이렇게 선회가 중시되는 건 당시 [[엔진]]의 출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용되는 대부분의 엔진은 오늘날의 승용차 엔진보다 출력이 낮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항공기가 비행성능이 유사했고, 따라서 고도와 속도 우위를 점하는 에너지 파이팅이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물론 동일 시기에 투입된 기체 간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다. 수직 기동을 취하면 부서지던 1914년의 기체와, [[과급기]](過給器)를 장비하고 수직 상승도 가능했던 1918년 기체의 출력 차이는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또한 [[레이더]]도 휴대 통신 장비도 없었기 때문에, 적을 사전에 발견하고 추격하여 제압하는 현대적인 항공 전략을 사용할 수 없었고, 모든 전투기 승무원들은 적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공역으로 각자 알아서 출격하여 육안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탐색했다. 따라서 양측의 실력 차이가 아주 크지 않은 이상, 보통은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고 전투 기동에 들어가, 동일 조건에서 교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을 만나는 것부터가 힘든''' 이러한 전장 환경으로 인해, 당시의 공중전에는 때 아닌 '''[[기사도]]'''(騎士道)가 꽃피었다. 마침 당시 전투기 승무원들은 [[귀족]] 출신들이 많았고, 그들에게 있어서 "항공기는 하늘의 [[말(동물)|말]]이자 파일럿은 하늘의 [[기사]]"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대전 초기에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신사]]적인 행동이 많았는데, 만나면 손을 흔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적 비행장에 결투장을 던지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 결투를 한다거나, 충분히 피해의 차이가 커져서 승부가 결정나면 공격을 멈추고 서로의 비행장으로 돌아가거나, 죽은 적 파일럿에게 애도의 [[편지]]를 공중에서 보낸다거나 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하늘의 기사들의 이야기는 민간에도 익히 퍼져서, 전투기 조종사들은 생판 모르는 소녀 팬들이 보낸 러브레터를 하루에 수십 통씩 받곤 했다. 또한 당시 [[파일럿]]들은 전투기에 자기만의 문장(紋章)이나 가문의 문장을 그려 넣는다든지, 개성 있는 자기만의 도색(塗色)을 칠하기도 했다.[* 요즘으로 보면 커스터마이징과 유사하다.] 역시 '''적을 만나기 힘든''' 전장 환경 때문에, 적의 항공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디코이|'''자신을 미끼로 내걸어서라도''' 적을 끌어들여 교전을 벌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붉은 남작]]이 자신의 기체를 선명한 붉은 색으로 칠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는데, 막상 붉은 도색이 너무 유명해지자, 연합군은 붉은 기체를 보기만 해도 도망쳐 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그러나 공중전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항공 전역의 중요도가 올라간 대전 후반으로 갈수록 초기의 신사적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공군이 기술군, 전투조종사가 그 중에서도 엘리트 이미지가 매우 강한 만큼 2차 대전과 냉전을 거쳐 현재까지도 각국의 공군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잔재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전쟁 중 결투를 벌인 두 적국 파일럿이 전후에 실제로 만나 친구가 되거나, 단순한 영공 침범 도발인 줄 알았는데 적기에서 독립기념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 일화 등이 있다. 극단적으로는 [[프란츠 슈티글러]] 등의 예도 들 수 있겠다.], 1:1 결투장을 보내 놓곤 구름 뒤에 떼거지로 숨어 있다 덮치기도 하는 등 꿈도 희망도 없는 '''아귀다툼'''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하여 대전 후기에는 각 파일럿의 개성이 흐릿해지고, 위장색의 연구 및 발달로 전투기들 또한 국가별로 제각기 아주 복잡한 패턴으로 도색되었는데, [[독일군]]이 채용한 3색의 6각 무늬 패턴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 지형과 날개 사이의 경계면을 흐릿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으며, 연합군에서는 [[얼룩말]] 무늬를 닮은 도색 패턴이 전투기의 진행방향을 착각하게 만드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고안되기도 했다.[* 이런 위장 패턴은 대즐(dazzle, 눈부신/화려한) 패턴이라 불리며 오래 살아남았다. 2차 대전기로 넘어가서도 다양한 국가의 항공기들과 함선들이 흑백 줄무늬 패턴을 사용해 적이 세부적인 형태나 방향을 관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유도성 무기가 개발되는 냉전기에 접어들면서 세부 형태나 방향을 몰라도 그냥 쏴대기 시작하자, 시인성이 지나치게 좋은 이 위장은 마침내 도태되었다.] 그냥 보면 쓸데없이 화려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오늘날의 저시인성 회색 도장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개발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