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현무 (문단 편집) == 상세 == 1977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아버지 전민식과 어머니 사이에서 무매독자로 태어났다. 큰아버지 전무식 박사는 한국 최고의 이론화학자이자 물(水) 박사로 유명했던 분이다.[* 그 유명한 [[육각수]] 이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다.] 부친 전민식이 [[판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릎팍도사]]에 나와 밝히길 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경영학 전공하신 일반 회사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부친의 형제들은 모두 대학교수이며, 전무식 박사의 아들 삼형제도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여러모로 [[엄친아]]로 불릴 만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멘사 회원이라는 기사도 있었으나, 2011년 5월 8일 남자의 자격에서 잘못된 보도라고 본인이 밝혔다.[* [[문제적 남자]] 촬영 당시 [[웩슬러 지능검사]]에서 나온 IQ는 131로 상위 2% 안에 드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가 [[아나운서]]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대학 선배 [[손범수]]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어릴 적부터 꿈을 키웠다고 한다. 정확히는 꿈을 품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우상인 [[손범수]]가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를 나왔으니 똑같이 [[연세대학교]]를 목표로 했고 결국 졸업장[* 외고 영어과라 그런지 영어영문학과로 입학했으나 사회학을 [[복수전공]]했다.]까지 땄다는 거다. 그리고 손범수처럼 [[연세교육방송국|연세대 방송국]]에 들어갔다. 정작 손범수는 [[장교]]로 복무했지만 전현무는 [[카투사]]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 이 때문에 손범수를 완벽하게 따라하지는 못했다. 2003년 말 [[조선일보]] 공채 43기 기자로 입사했으나 1주일 만에 그만두고 바로 [[YTN]]에 입사,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공채 8기 앵커를 거쳤다. 그러다가 2006년 [[한국방송공사]] 제32기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하는 등 언론고시계에선 전설적인 이력[* KBS 선배이자 전현무가 지원했을 당시 면접 심사위원이었던 [[황수경]]이 훗날 방송에서 한 말에 따르면 호흡과 발성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타 방송사에서도 뉴스 일을 하다가 와서 그런지 전현무 씨는 처음 볼 때부터 놀랄만큼 오디오가 탁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말을 했던 것도 출연한 방송 진행자가 황수경에게 아나운서 지원자 심사위원하던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지원자를 묻는 질문에 황수경이 전현무라고 대답했기 때문인데,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준비가 느껴졌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황수경 본인이 높은 점수를 줬고, 그래서 황수경은 전현무가 순수 아나운서로도 크게 되길 기대했었다고 한다.]을 가졌다. 언론고시 준비생이라면 기자와 아나운서 모두를 합격한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수 있다. 시사상식 시험과 면접 준비 정도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문기자 시험을 위해서는 논술 및 작문시험을 준비해야 하며 아나운서 시험을 위해서는 뉴스 원고 리딩과 카메라테스트까지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조선일보와 YTN은 메이저 언론사 중에서도 입사 경쟁률이 치열하고 시험 자체도 고난도로 소문난 곳이다. 명덕외고 영어과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도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며, 군대도 카투사 출신이다.[* 그 당시에는 재수를 하고 연세대에 입학을 했는데, 축구 게임으로 유명한 [[세이부 축구]]에 빠져서 [[https://www.google.com/amp/s/www.hankyung.com/entertainment/amp/201112054673q|오락실 죽돌이였다고 한다.]]] 즉 고등학교, 대학, 군대에 있을 때까지 영어를 계속 했기에 [[영어]] 실력은 좋은 편이다. 본인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나마 외국어 습득 쪽으로는 자신이 있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영어가 나올 때는 웃기려고 하지 않고 진지한 편이다.[* <문제적 남자>에서 스위스에 갔을 때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얼간이들이 영어의 뜻을 모르면,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많이 얘기를 하거나, 윤현민 회원이 영어공부할 때는 문법책보다는 회화를 하라고 조언한 적도 있다. 학벌과 스펙을 볼 때 다양한 분야에서도 지적일 것으로 착각되나, 실제로는 [[허당|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습]]도 더러 보여준다.[* <문제적 남자>에서는 문제를 맞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거의 진행과 개그를 담당하고 있다.] 군복무를 [[KATUSA|카투사]]로 서울 용산 미8군 부대 영내에서 근무했다. 정확한 소속부대 명칭은 [[AFN Korea]] 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부대인 서울 용산 501 정보여단. 조선일보는 원래 YTN과 동시에 합격해서 1주일 먼저 출근 명령을 받아갔지만, 사내 문화가 본인과 맞지 않아 1주일 만에 퇴사했다. 전현무는 술을 잘 못하는데 조선일보에 입사하자마자 매일같이 회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 고민없이 퇴사를 했다고 한다. [[파일:7FF2EF48-C727-499C-B7DA-9BEA08DEADE1.jpg|width=300]] 아나운서를 시작한 YTN에서 주어진 업무인 보도 및 교양 프로그램 진행[*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64416|당시 전현무가 나왔던 YTN 뉴스 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055827|2]] 지금도 조금만 찾아보면 전현무가 등장한 몇몇 과거 뉴스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아나운서의 일반적인 영역보다는 예능 등 웃기는 방송 쪽에 관심이 더 많았고, 이 때문에 YTN 활동 중에도 계속 지상파 아나운서 면접을 봤다고 한다. 언론고시의 전설은 어디가지 않아서 2004, 2005년 MBC 아나운서 최종 면접까지 진출했으나 각각 [[김정근(아나운서)|김정근]]과 [[오상진]]을 만나 2연속 탈락했다고 한다.[* MBC 최종 면접에서 김정근을 봤을 때는 ‘해볼 만하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어 오상진과 맞붙었을 때는 ‘내가 면접관이라도 오상진을 뽑겠다’는 생각과 함께 불합격을 확신했다고 한다. 아나운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자 사람들이 기대하는 평균적인 모습은 아무래도 진중하고 반듯하고 성실하여 신뢰가 가는 느낌이라 할 것이다.] KBS는 2004, 2005년에 1차 카메라 테스트에서 [[광속 탈락|광탈]]했지만, 2006년 [[이지애]], [[오정연]], [[최송현]]과 32기 아나운서[* 승승장구에 전현무가 출연했을 당시 몰래온 손님으로 나온 신영일의 증언에 의하면 전현무와 여자 아나운서 합격자 3명이 아나운서실에 인사왔을 때 선배들은 전현무를 인사과 직원으로 착각했다고...]로 합격해 본격 KBS 활동을 시작한다. 재밌는 건 전현무만 아니라 나머지 동기들도 결국 다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전현무를 포함해 이지애, 오정연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며, 최송현은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다. 어찌 보면 엔터테인먼트 쪽으로는 최고의 아웃풋을 배출한 셈. 이후 전현무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이른바 '예능 전문 아나운서'로 비타민, 스타골든벨, 생생정보통 등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한창 자리매김하던 2012년 9월 10일, 프리랜서로 전향을 선언하며 KBS에서 퇴사했다. 내부 규정에 따라 전현무는 이후 2015년 9월까지 3년간 KBS 출연금지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5개월 뒤인 [[2013년]] 2월, [[남자의 자격]]에서 윤형빈의 결혼식을 중계하던 도중에 하객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KBS에서의 마지막 생방송은 2012년 8월 31일에 있었고([[KBS 2FM]] [[가요광장]]) 그 날 방송 끝 부분에 울먹였다. 마지막 녹음방송은 동일 채널, 동일 프로그램으로 9월 2일. 프리 선언 이후의 행보는 역시 아나운서 시절부터 일찌감치 여러 예능들을 겸해 온 아나운서답게 이전까지의 프리랜서들과 달리 더욱 승승장구했다. 이는 아나운서라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추구하려 들기보다 이미 예능인으로서 더 각인이 되어서 그런 것도 있고, 갑작스레 서두르듯 프리 선언을 해서 마치 친정 MBC를 배신한 듯한 이미지로 각인된 [[김성주]]와 달리 전현무는 KBS와 시간적으로 조율을 충분히 한 상황에서 프리선언을 차분하게 준비한 덕분에 그의 프리 선언에 대해 언론의 반응이나 [[시청자]]들의 여론 또한 나쁘지 않았다.[* 예능에서의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아나운서 출신인 줄도 애초에 모르는 기믹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퇴사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10여 개의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왔고, 이미 지상파 나머지 두 곳까지 출연 완료. 더군다나 그 중에 MBC는 TV, 라디오 둘 다 고정이다. 웬만해선 프리랜서 아나운서라도 친정이 아닌 다른 곳은 출연이 어려운데(거기다 메인 MC) 그 일들을 단 몇 개월만에 해낸 것을 보면 예능계에서 얼마나 주목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케이블, 종편 채널에서도 역시 활약 중인데, [[tvN]], [[JTBC]] 채널에서 진행 역할이 필요한 신규 예능 프로그램이 생긴다 하면 십중팔구는 다 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진행 능력에 짓궂으면서도 과한 비호감으로 느껴지지 않게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끌어 가는 진행자형 포지션.[* 다만 이렇다 보니 진행 면에서는 좀 [[호불호]]가 갈리는 편에 속하며, 일각에서는 [[이휘재]]랑 동일시를 하면서 '이휘재와 같은 [[비호감]] MC'라고 깎아내리는 면도 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현무를 이휘재와 동일시하는 행위는 전현무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일이다. 전현무는 그래도 이휘재만큼 과하게 선을 넘지는 않는다.] 하여튼 이렇게 전현무는 3년 동안 KBS 외 다른 여러 방송사들에서 활약한 끝에 2015년 추석연휴에 방송된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전무후무 전현무쇼'의 MC로 나서면서 성공적으로 KBS에 언론인이 아닌 예능인으로 복귀했다. 1시간 방송을 위해 6일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굉장한 노력을 했지만 [[시청률]]은 4.6% 정도. 약간 애매한 편이다. 또한 프로그램에 대한 [[평판#s-1|평판]]도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해당 프로 정규편성은 사실상 [[실패]]했으며, 대신 2015년 10월 8일부터 [[해피투게더(KBS)|해피투게더]]에서 새로히 고정 MC를 맡게 되었고, 이어 동년 [[겨울]]에는 [[KBS 연기대상]] MC까지 맡았다. 이로부터 한 해 뒤의 KBS 연기대상 MC도 맡았고, 2017년과 2020년, 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KBS 연기대상 MC를 맡고 있다. 2017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MBC 예능에서 그나마 가장 화제성이 높고 시청률이 잘 나온 [[나 혼자 산다]]를 이끌어간 공이 컸던 덕분이었다.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의 여파로 [[KBS]]처럼 [[연예대상]]이 아예 개최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대상을 수상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시상식이 거의 없는 [[종편]]과 [[케이블]]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다 보니 지상파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 수상은 커녕 후보에도 들어보지 못했음에도 바로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대상 소감 말미에는 "[[한국방송공사|제 마음의 고향]]에 따뜻한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라고 남기며, 당시 진행되고 있던 KBS 새노조 파업을 간접적으로 지지하였다.[* 후일 [[나 혼자 산다]]에서 밝히기를, 대상 소감 중 유일하게 미리 준비한 소감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아나운서 출신 인물로서 최초로 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껏 어느 방송사고 아나운서 출신 인물이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역사는 전혀 없었는데, 전현무가 그 사상 최초의 기록자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고,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22년, MBC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 시점]] 두 프로그램으로 공을 세웠고, 수상하기 전 이미 대부분이 전현무의 대상을 예상했고 예상대로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대상을 수상하였고 눈물의 수상 소감을 보여주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