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치장교 (문단 편집) == 군사적 문제점 == 비전문가인 정치장교가 전문가인 지휘관과 동등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사시에 문제가 많았다. 물론 개중에도 쓸 만한 정치장교가 있긴 했지만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경우가 워낙 많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장교 체제가 처음 도입된 소련 적군은 부대 운용계획을 수립하는 __장교가 당원이든 비당원이든 일단 지휘권이 없었다.__ 프롤레타리아 독재 원칙에 따라, 부대 지휘관이 수립한 작전을 '''프롤레타리아 병사 대중의 대표인 정치장교의 승인을 받아''' 병사 전원의 [[만장일치]]라는 형식으로 지휘를 받게 돼 있었으니 당연히 권한이 지휘관과 동등한 것이다. 이 구조는 정치장교가 지휘관의 군사적 전문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경우에는 그럭저럭 쓸만한 구조임이 적백내전에서 입증되었으나, 정작 전문 지휘관들의 사상적 기반을 의심하는 정치장교들의 [[태클]]이 기본이 되다 보니 결국에는 아무리 좋은 경우라 해도 지휘체계가 이원화되면서 의사결정 및 작전지휘의 효율이 크게 저하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지휘체계가 군사적 문외한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전쟁을 총지도해야 할 당 군사위원회에 군사 비전문가들이 워낙 많았고, 군사작전의 정치적 효과를 지나치게 중시했기 때문에 일선 지휘관들의 효율적인 건의를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당연히 정치장교는 당 중앙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덤으로 군사경험이 없는 관계로 '''눈 앞에서 병사들이 다 죽어나가는 판에도 자신의 지시로 인해 무슨 결과가 나올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간신히 담당 정치장교를 설득했다고 해도, 상위부대의 정치장교가 압력을 넣으면 말짱 도루묵. 상위부대로 올라갈수록 정치장교의 숫자가 불어나기 때문에 지휘권의 혼선이 더 심해진다. 부대 지휘관과 정치장교 사이에서, 경우에 따라 정치장교끼리도 견해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싸움만 엄청나게 일어나지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군대는 지휘관과 정치장교의 [[병림픽]]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갈팡질팡만 하고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치장교를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자니 정치장교의 고자질이 두려워서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장교가 상급부대에 있는 일 없는 일 전부 고자질을 할까봐 정치장교를 살살 달래는 일 역시 지휘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되어버려 붉은 군대의 지휘관들로서는 타국 군대에서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될 쓰잘데기없는 업무까지 추가되어 피로가 누적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심지어는 지휘관의 업무가 이건 부대를 관리하는 사람인지 정치장교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람인지 헷갈리는 수준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지휘를 잘해도 정치장교가 트집잡고 고자질을 하면 총살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정치장교가 전선에서 앞장서면 사기진작의 효과가 있겠지만, 그 정치장교가 '''선두에 서서 빌빌대거나 전투의욕을 상실해 버리면''' [[답이 없다]]. 아무리 똘기를 가득 채워도 정치장교도 사람이다. 포탄의 충격에 쇼크를 일으키거나 총성과 비명에 움츠려들어서 주저앉아버리면 주변의 병들도 동요할 수 밖에 없는고로 전술적으로 옳은 돌격이나 진격의 발목을 잡는 미친 사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상술했듯 많은 수의 정치장교들이 대부분 총 한번 집어본적도 없는 책상물림 출신들이 많았던지라 일개 병보다도 더 빌빌 기는 경우도 알음알음 보여지곤 했다.[* 물론 징병제의 특성상 병들 중에서도 총 한번 안쏘고 살아온 사람도 많긴 했다. 그래도 병들 중에는 실제로 사냥꾼 출신(전설적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도 사냥꾼 출신) 같이 총 쏘는 법 정도는 알고 있던 사람도 많았는데 정치장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전무했다. 그리고 병이 빌빌대는 것과 장교가 빌빌대는 것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군대에 주는 악영향이 크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1930년대부터 소련군은 내부에서는 정치장교의 권한을 줄이고 단일 지휘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커다란 노력을 했다. 정치장교에 관련된 문제점은 소련군 내부에서 이미 193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던 것이었고, 그 권한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그게 정치장교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런 노력은 있었다. 문제는 대숙청을 겪으면서 이걸 협의해야 하는 사람들이 지휘관과 정치장교를 가리지 않고 싸그리 숙청당한 덕분에 논의가 붕 떠버렸고, 지휘권 문제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신규 인력으로 대숙청의 피해를 복구하는 상황이라 지휘관의 리더십도 확보하지 못한 어수선한 상황에서 독일의 침공이라는 대 위기를 맞아버렸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