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우스 (문단 편집) === 그리스도교와 제우스 === >^^4,7^^ 셀레우코스가 생을 마감하고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안티오코스]]가 왕좌를 이어받았을 때,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2 ''Iasōn''}}}[* [[이아손]]. 즉 희랍식 이름이다.]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을 차지하였다. ... ^^10^^ 임금의 허락을 받은 야손은 그 직위에 오르자마자 동족의 생활 방식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11^^ 그는 유다인들이 에우폴레모스의 아버지 요한을 통하여 다른 임금들에게서 얻은 특전들을 폐기시켰다. 요한은 전에 로마인들과 우호 동맹을 맺기 위하여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다. 야손은 법에 맞는 생활양식을 없애 버리고 법에 어긋나는 새 관습들을 끌어들였다. ^^12^^ 그는 신이 나서 [[아크로폴리스|성채{{{-2 ''akropolis''}}}]] 바로 밑에 체육관{{{-2 ''gymnasion''}}}을 세우고 가장 뛰어난 청년들에게 그리스식 모자{{{-2 ''petasos''}}}를 쓰게 하였다. ^^13^^ 이렇게 사악한 사이비 대사제 야손의 극심한 패륜으로, [[헬레니즘|그리스화{{{-2 ''Hellēnismos''}}}]][* 헬레니스모스, 곧 [[헬레니즘]]의 본래 의미는 '동서문화의 융합'이 아니라 '헬라스화(化)''이다. [[https://stephanus.tlg.uci.edu/lsj/#eid=34869|Liddell-Scott 사전]]은 헬레니스모스를 'a imitaion of Greeks', 'use of a pure Greek style and idiom', 'use of the koinē'로 정의한다.]와 이국 풍습의 도입이 극에 달하였다. >......^^6,1^^ 그 뒤에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임금은 아테네의 원로 한 사람을 보내어, 유다인들이 조상들의 법을 버리고 하느님의 법대로 살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 ^^2^^ '''또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것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으며, 그리짐에 있는 성전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하는 대로 나그네의 수호신 제우스의 신전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 >마카베오기 하권 4,7-13; 6,1-2 {{{-2 (가톨릭 새번역)}}}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 >마카베오기 상권 1,54 {{{-2 (가톨릭 새번역)}}} 일찍이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을 제우스 신전으로 개조하고 제우스를 '하늘의 바알'{{{-2 ''Baal Shamaim''}}}로 부르고 야훼와 강제로 동일시하여 일종의 혼합 다신교를 의도하였다. 이에 유다인들은 '하늘의 바알'{{{-2 ''Baal Shamaim''}}}, 곧 제우스를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2 ''Shiqqutz Shomem''(다니 12,11)}}}이라 부르며 격렬하게 반발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유다 지역이 왕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하게 되었다.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정책은 유다인들에게 매우 강렬한 트라우마를 주어, 명시적으로는 마카베오기 상하권, 암시적으로는 다니엘서에서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는 200년 넘게 지나고도 예수가 직접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2 (마태 24,15; 마르 13,14)}}}이라고 말한다. 또한 [[요한 묵시록]] 역시도 문학적으로는 {{{-2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를 비판한 다니엘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 즉 제우스는 200년 넘게 유다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일종의 '혐짤' 취급을 받았다. || [[파일:DE06C8D8-F5CB-453D-BA2E-EB37C849C9AC.jpg]] || ||위의 작품은 구스타브 도레가 그린 작품이으로 대략 1868년에 그린것으로 추정된다.|| 구스타브 도레는 [[단테의 지옥]]을 삽화로 그려낸 인물로 유명하며 [[루시퍼]] 문서에서 쓰이는 그의 회화도 확인할 수 있다. 제목에서 유추하듯이 제우스 말고도 북유럽이나 남아메리카 출신으로 추정되는 신들이 있으나 예수의 바로 밑에 번개를 든 제우스와 그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왕관을 대비한 묘사가 중앙에 있음으로서 제우스의 권위가 예수에 비교될 정도로 대단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예수가 제우스의 머리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으로 보면 대등한 정도는 아니고 예수가 우위인 확실한 서열관계가 정립되어있다. 결국, 수백년 동안 하늘의 주인이었던 제우스가 예수에게 밀려서 권좌를 빼앗기고 완전히 [[정권교체]]가 된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 [[파일:십자고상 우상.jpg]] [br]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톰마소 라우레티의 작품 || 로마 시대 기원후 1세기에 예수를 섬기는 그리스도교가 제우스 신앙을 완전히 몰아냈음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다만, 기원후 1세기 이후에도 민간에선 그리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고 적어도 5세기까지는 제우스 신앙을 비롯한 그리스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남아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프시케]] 신화도 기원 후 2세기 [[로마 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예수의 십자가 아래에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소속의 남신이 누군지는 어떠한 정보도 없으나 수염이 없는 젊은 모습과 예수와 대비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아폴론]], 혹은 [[헬리오스]]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