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타운 (문단 편집) === 제임스 타운 식민지 === [include(틀:미국의 역사)] || [[파일:external/media1.britannica.com/83680-004-01399CF6.jpg]] || || 초기 || || [[파일:external/weiszhistory7.wikispaces.com/Jamestown_Settlement.png]] || || 확장되었을 때. || || [include(틀:지도, 장소=제임스타운 거주지, 높이=224px, 너비=500px)] || 영제국이 북아메리카에 세운 식민지 중 첫 번째로 성공한 식민지다. 1606년 제임스 1세가 Virginia Company of London에게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남부 [[뉴욕 주]] 일부에 이르는 땅의 권한을 주었다. 1606년 12월 런던 회사가 이민선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냈는데, 수잔 콘스탄트 호를 포함한 3척의 배에는 144명의 남자가 탔고, 이들이 5개월의 긴 항해 끝에 1607년 4월 오늘날의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 사이에 있는 체서피크 만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청교도]]가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건너온 [[플리머스(도시)|플리머스]] 식민지가 시초라고 알고 있지만 제임스타운이 6년 더 먼저 설립되었다. 하지만 제임스타운은 [[농사]]를 짓지 않고 [[금]]을 캐려는 주민들, [[아메리칸 원주민]] 포우하탄 족의 공격 등으로 배고픔과 재난 속에 [[식인]] 행위가 만연하게 일어나는 등, 멸망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정착 초기 제임스 타운에서는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포우하탄 족의 공격과 식량부족으로 인한 식인 행위로 인해 그 해에는 38명 만이 살아남았다. 초기 정착민들은 1610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돌아가는 도중에 영국으로부터 오는 보급선들을 만나, 다시 제임스 타운으로 돌아왔다. 결국 탐험가였던 [[존 스미스]] 대위의 지휘 아래 당시까지 사이가 좋던 원주민들에게 배운 [[담배]] 농사와 [[농업]]을 시작했으며 본국에서 지원이 도착하고 분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면서 최초로 성공한 식민지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 결과 신대륙에 최초의 영구적인 영국 식민지가 뿌리 내리게 되었고, 그들은 주거지를 내륙의 윌리엄스버그로 옮겨 더 뻗어 나갈 토대까지 마련했다. 참고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애니메이션)|포카혼타스]]가 제임스타운을 배경으로 한다. [[존 스미스]]는 자신이 추장의 딸이었던 포카혼타스를 구조했다고 자서전에 적었으나 현대에는 부정되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는 포카혼타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2편에 나온 것처럼 존 롤프와 결혼했으며 영국의 명사가 되었으나 22세에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다. 이 때 포카혼타스의 부족이 전해 준 담배의 모종은 이후 아메리카 식민지가 본궤도에 오르며 유럽에서 "버지니아산 담배"로 상류층에 크게 유행했다. 현대의 제임스타운 현지에는 유적을 복원하고 이를 기념하는 공원을 조성했다. 17세기 당시의 복장을 한 역사 해설사들이 당시의 생활 방식을 재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