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비/생애 (문단 편집) === 세자로 책봉되다 === 건안 16년(211년) [[한수(삼국지)|한수]]와 [[마초]]의 난에 종군했고 이후 이 공으로 오관중랑장이자 부승상이 되었다. 211년 조비가 오관중랑장이 되었을 때 손님 30여 명을 불러서 연회를 열었는데 조비는 [[주건평]]에게 자신의 수명과 빈객들의 수명을 묻는다. 주건평은 [[하후위]], 융거, [[조표(삼국지)|조표]]가 [[사망 플래그|죽을 때를 예견]]했다. 그러면서 조비에게는 "장군의 수명은 여든인데 [[완곡어법|마흔 살에 작은 재난이 있으니 조심하여 보호하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했다. 알다시피 조비는 장수하지 못하고 딱 마흔에 죽었는데, 죽으면서 '''낮과 밤 따로 따로 이틀 쳐서 여든이란 거구나!'''라고 하고는 죽었다고 한다(…).~~20살때 뭔가 재난이 있었나?~~ 공을 세웠어도 조비는 후계 경쟁에서는 아직 확고하지 못했다 이에 [[가후]]에게 대책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인덕과 관용을 발휘하고 숭상하며, 평범한 선비의 업을 행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하며, 아들의 도리를 그르치지 않으면 됩니다." 언뜻 별거 없는 것 같지만, 말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괜히 조급해하다 눈 밖에 나지 말고 가만히 바른 모습만 보이라는 것]]. 결국 216년에 조조가 위왕에 오른 뒤, 가후가 조조를 설득하여[* 조조가 후계 문제로 가후랑 이야기를 나누려 불렀는데,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냐고 하니 '''[[원소(삼국지)|원본초]]랑 [[유표#s-1|유경승]]'''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둘 다 첫째를 후계자로 삼지 않았다가 망한 인물들로, 이에 조조는 그 뜻을 알아채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다음 해 세자의 자리가 확고해졌다. 조비는 의외로(?) 행동이 가볍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지 못하는 일면도 있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위왕의 뒤를 이을 세자로 낙점되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옆에 있던 [[신비(삼국지)|신비]]의 목을 끌어 안고(…) 기뻐했다고 한다. 신비가 집에 돌아가 총명하기로 유명했던 딸 [[신헌영]]에게 이 일을 말해주니, 그녀가 평하길 왕이 되어 국사를 짊어진다는 게 고된 일인데도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위의 앞날이 오래갈지 걱정된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고평릉 사변|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조비의 치세는 사실 그렇게 길지도 않았고 '조위는 조비 때문에 망했다'고 할 정도로 조비가 위나라 사직을 망가트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허나 조비가 위나라 멸망에 책임이 아주 없는것도 아닌데 3대 황제인 조예는 본격적으로 흑화하기 전에도 사치향락을 즐기긴 했지만 그래도 제갈량이 죽기 전에는 명군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말기에는, 특히 생모인 문소황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안 뒤에는 더 막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기는 불명이지만 조예는 후에 조방이라는, 조씨 황통인지도 불분명한 전혀 듣보잡을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세우는데 조예가 망가져서 그런 것이라면 조비는 조예가 망가지는데 지대한 책임이 있다.] 물론 세자로 책봉되지 못하면 훗날 자기가 동생 조식에게 그랬던 것처럼 [[숙청|가혹한 결과]]가 기다릴 테니 기쁨을 드러내는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관녕과 화흠의 설화를 보듯이 당대 사람들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을 자제하고 무게감있고 점잖은 사람을 추앙하는 풍조가 있었다. 이런 관점이 당대 사람들이 그렇다기보다는 사실 귀족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기풍이며 당시에는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다 귀족 엘리트들이었던 것이고, 현대에도 이런 관점 차이는 지속되고 있으며 차이라고는 주도권이 민중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조광조와 남곤, 정구와 정인홍의 얘기가 그렇다지만 조광조와 남곤의 얘기는 야사로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의 시각이 그렇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