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문단 편집) == 상징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곤룡포)] ||<-2> {{{#ffffff '''전통적 상징'''}}} || ||[[파일:조선 어기.svg|width=100%]]|| [[파일:조선 전기 국왕 용보.svg|width=50%]] [[파일:조선 중기 왕 용보.png|width=50%]] [[파일:조선 후기 국왕 용보.png|width=50%]] || || {{{#000000 조선 국왕의 상징이었던 어기.}}} || {{{#000000 조선 전기의 국왕 용보(위), 중기의 국왕 용보(가운데), 후기의 국왕 용보(아래).}}} || 조선 국왕의 어기는 '''태극팔괘도(太極八卦圖)'''라고도 불렸으며, 조선 시대 이전에도 [[도교]]적 우주원리에 따라 음과 양,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나타내는 영험한 문양으로 여겨져 널리 사용되다가 조선 건국 이후에는 [[성리학]]이 국교가 되면서 군주의 어기로 사용되었다. [[태극]] 문양은 [[사서삼경]] 중 [[주역|역경]]의 계사전(繫辭傳)에서 유래한 태극도(太極圖)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위 어기에 직접적으로 채용된 문양은 1415년(영락 13년) 명 성조의 뜻에 따라 호광 등 42명의 유학자가 편찬한 저서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수록된 태극도이며, 이는 구한말 조선의 우초(우표) 문장에도 반영되었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태극기)] ||<-2> {{{#ffffff '''근대적 상징'''}}} || ||[[파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태극기.svg|width=100%]]|| [[파일:조선 우초 문장.svg|width=70%]] || || {{{#000000 조선 후기의 국기, 태극기.}}} || {{{#000000 조선 우정국의 우초(우표) 문장.}}}[* 일각에서 조선의 국장(國章, 나라문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초에 사용되었을 뿐 국장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조선의 국기인 태극기는 [[1882년]]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던 조선의 역관 [[이응준(역관)|이응준]](1832~?)[*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응준]]과는 동명이인이다.]이 도안했다. [[미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조미수호통상조약|통상 조약]]의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가 필요하다는 미국 측 공사의 청이 있었으며, 이에 국기의 필요성을 느낀 [[김홍집]]이 제작을 명한 것이다. 이후 1882년 9월 수신사로 파견된 [[박영효]] 등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다가, [[1883년]] [[3월 6일]]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어명에 의하여 조선국기로 공포되었다. 당시의 태극기 도안은 '태극 문양과 4괘'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 외에 제도학에 근거한 자세한 도안법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된 태극기마다 도안이 조금씩 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