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절 (문단 편집) == 생애 == 대인배를 [[인증]]하는 일화가 하나 기록되어 있는데 어느 날 조절의 이웃집 [[돼지]]가 도망쳤고 마침 조절의 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그 돼지와 모습이 비슷했다. 이에 그 이웃은 그 돼지가 도망친 자기 돼지라며 우겼지만 조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이웃이 돼지를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며칠 후에 도망쳤던 진짜 이웃집 돼지가 돌아오자 이웃은 부끄러워하며 돼지를 돌려주면서 사과했는데 조절은 이웃을 탓하지 않고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 기록이 전부이며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벼슬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다. 다만 자식으로는 백흥(伯興), 중흥(仲興), 숙흥(叔興)이라는 자를 가진 아들들과 막내아들로 조등[* 조등의 자는 계흥(季興)이다.]까지 포함해 4명이 있었다. [[당나라]] 시대 구양순의 저서인 《예문유취》에서는 그의 이름을 조맹(曹萌)으로 기록해 놓았으며 [[서진]] 시대 [[사마표]]의 《속한서》에는 조절이 너그럽고 관대했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왠지 그의 고손녀가 되는, 무황제 조조의 딸 조절과 그와 이름이 같은데 조상의 이름은 [[피휘]]했던 당시의 관습을 보면 이상할 정도다. 다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예문유취》에서는 그의 이름을 조맹(曹萌)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실제로 절(節)자와 맹(萌)자가 비슷해서 <위서>나 <예문유취> 중 하나는 오기일 것이다. 옛날엔 전통적으로 부수 대 죽(竹/⺮)을 간단한 풀 초(艹)로 적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節도 莭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았으니 萌과 헷갈리기가 지금보다 더 쉬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