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인관계 (문단 편집) === 고대 === [[기원전]]에 인도는 서양보다 먼저 중국의 존재를 알았고 이 때 인도인들은 중국을 [[춘추전국시대|당시]] 인도와 가장 가까웠던 [[진(영성)|진나라]]의 이름을 따 산스크리트어로 치나(Cina चीन IPA: [tɕiːnɐ])로 불렀다.[* 후에 페르시아인들이나 그리스-로마인들이 이 cina를 sina 또는 sinae로 음역한다. 이것은 현대의 China로 이어졌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에는 인도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브라흐민]]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아 계급이 [[수드라]]로 강등되었다는 언급도 있다. 비록 [[히말라야산맥]]이라는 지형적 방벽 때문에 직접적인 교류는 어려웠지만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토하리스탄]]과 해상 무역을 통해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다만 중국이 토하리스탄 일대를 침략했던 시점은 [[진나라]] 이후 [[전한]] 시대이고, 중국과 인도를 잇는 중계 무역에 참여한 것은 중국인이 아니라 [[소그드인]]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진나라를 뜻하는 치나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불명.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추론할 수 있는 사료는 하나 있다.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장건]]이 서역 각국을 탐방하고 이미 중국이 서역에 대해 알기 이전부터 파촉(오늘날의 [[쓰촨성]] 일대)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서역 각국에 유통되고 있다는 보고를 남겼는데 윈난이나 미얀마 지역의 원주민들이 물물교환을 통해 중국산 물산을 인도산 물산과 교환하면서 진나라라는 명칭이 퍼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신이 대하([[박트리아]])에 있을 때 공(邛)에서 생산되는 죽장(竹杖)과 촉(蜀)에서 나는 베를 보고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하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나라 상인들이 신독(身毒; [[신드]])의 시장에서 사온 것입니다. 신독은 대하의 동남쪽으로 수천 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 풍속은 정착생활을 하고 대체적으로 우리 대하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불순하고 습하며 여름에는 몹시 덥다고 했습니다. 그 백성들은 코끼리를 타고 싸웁니다. 그 나라에는 아주 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신 건(騫)이 추측해본 바, 대하는 우리 한나라에서 서남쪽으로 1만 2천 리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신독국은 대하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수천 리 떨어져 있고 또 촉에서 만든 물품들이 있으니 아마도 촉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대하로 사자를 보낸다면 강(羌) 족의 영토를 지나야 하는데 길이 험할 뿐 아니라 [[강족]]이 매우 싫어할 것입니다. 또 북쪽으로 조금 돌아간다면 흉노에게 잡히고 말 것입니다. 촉으로 곧바로 간다면 길도 가깝고 도중에 도둑 걱정도 없을 것입니다."- 사기 대완열전|| 장건으로부터 2세기 이후 서기 70년경 당시 [[로마 제국]] 이집트 속주의 알렉산드리아의 한 그리스인 선원은 인도를 오가면서 견문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항기>라는 이름의 책을 남기는데 이 책에는 당시 그리스 로마인들이 인도인들로부터 중국에 관해 접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 인도 최대의 강인 [[갠지스 강]]은 [[나일 강]]처럼 계절에 따라 수위가 높아진다. 이 강에 똑같은 이름의 중요한 무역기지가 있다. 갠지스 시[* 현대 사학자들은 [[탐루크]]로 비정] 이곳을 통해 말라바르산 향신료들, 감송, 배 그리고 갠지스산 최상급 모슬린이 수출된다. 이 지역 너머에는 아주 광대한 내륙지방인 [[지나]](중국)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생사, 견직물, 옷감이 육로로 들어온다. 이 지나라는 곳은 닿기가 쉽지 않다. 거기서 사람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리로 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인도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곳 너머의 땅 지나은 겨울이 혹독하여 추위가 심하다고 한다. 고대 당시에는 그리스 문화권과 인도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과는 반대로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교류는 변변찮은 수준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