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증평군 (문단 편집) == 생활문화 == 독립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자체 공공기관이 세워지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불편과 박탈감이 크다고 한다.[[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611_0013720785&cID=10806&pID=10800|관련 기사]] 다만 주 사업장/지점 형태로 없거나 괴산증평 이런 식으로 이름을 같이 쓰거나 같이 관리될 뿐이지 증평에도 공공기관과 공단, 공사들이 꽤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축협]]은 아주 오래전부터 증평읍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고, [[한국농어촌공사]]나 [[산림조합]]은 지소 형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출장소의 형태로 있다. 통계청, 국민연금관리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국토정보공사, 한국전력공사, 농어촌공사, 산림조합, 축협, 농협, 우체국, 보건소, 동청주세무서 증평민원실(=국세청 세무서 증평 출장소) 등 형태나 지점 이런거 따지지 않고 있는 것만 따져봐도 이렇게 많다. 웬만한 것들은 증평에서 다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괴산이나 청주까지 갈 필요가 없다. 설령 청주로 나간다 하더라도 증평은 청주 생활권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불만을 갖진 않는다. 애초부터 굵직한 일들은 죄다 청주 가서 했었고, 청주가 차 타고 30분 거리라 그다지 교통적으로 불편하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면 괴산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 싫어한다. 가는 길도 험하고, 교통비도 몇 배로 들기 때문.(청주 시내버스 1,200원, 괴산 2,400~3,200원.)[* 보통 초등학생은 괴산증평교육청이 있는 괴산 동인초등학교로 간다.] 증평군에는 특성화고가 2개나 되는데 일반계 고등학교는 [[형석고등학교]] 단 한곳 뿐이며, 그마저도 공립이 아닌 사립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고등학교를 늘릴 수가 없다. 일단 증평군은 청주생활권에 속해 있어서 증평을 떠나 청주에서 수학(受學)하는 고등학생들이 많다. 꽤 많은 학생들이 증평을 떠나 청주에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증평에 공립고등학교를 신설해봤자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출산률 저하로 학생들 숫자가 급감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하나밖에 없는 사립고를 국공립화하거나 특성화고를 일반계로 전환하는 게 낫다. 병원도 [[외과]], [[내과]], [[신경외과]], [[소아청소년과|소아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마취통증과, [[안과]], [[치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한의원]] 등 웬만한 진료과목은 다 있고,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병원(2차 의료기관)과 [[동물병원]](애견전문, 가축전문 각각 따로.)까지 있다. [[파일:external/www.doopedia.co.kr/800_1161495683814.jpg]] 증평읍 사곡리에는 '''물이 세 번 넘치면 [[지구멸망|말세]]가 찾아온다는 전설의 우물'''이 있다. 그곳에는 마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이 하나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말세를 알리는 우물 소재: 충북 괴산군 증평읍 사곡리2구(사청마을) 구조: 석축목조중방 깊이: 5.4m(수심2.8m) 이 우물은 서기 1456년(병자년) 한 도승이 우물이 없는 이 마을에 와 한 아낙에게 물 한 그릇을 얻어먹고 두 시간이나 걸려 물을 길어 온 정성에 감동하여 우물 자리를 찾아준 곳이다. 도승曰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가 심하게 져도 불어나지 않을 것이요. 그러나 이 우물이 넘치거나 불어나는 현상이 있으면 큰 변이 있을 것이요.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올 것이요. 그때가 되면 이 마을을 떠나시오" 하고는 도승은 사라졌다. 도승의 말대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정초에 우물이 넘쳤고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경술년)정월 중순에 두 번째 우물이 넘쳤다. 1950년 6월 24일에는 우물이 1m내외로 불어나서 6.25사변을 알렸고 1995년 11월에 또 우물이 불어났다가 줄었다. 이 번의 알림은 [[1997년 외환위기|무슨 변고]]를 예고한 것인지 모르나 후인들은 알겠지요. 이 우물은 명샘으로 물을 긷다가 우물에 빠져도 가라 앉지를 않고 물위에 동동 떠올라 모두 구조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구조된 사람은 장옥분 당시16세(부인) 연기남 13세(소녀) 연규인 14세(소녀) 연정세 11세(소녀) 4명이다. 그러나 1947년 음력 2월경 우물 하부 석축이 우그러들어 재공사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보릿고개에 시달려서 명샘에 고사도 못 올리고 지나던 중 연구성씨 딸 10세 소녀가 물을 긷다가 변을 당했다. 마을 사람들은 용왕님의 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경악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가가호호 촛불을 밝히고 무녀를 들여 굿을 하였다. 마을에서는 도승의 말을 오래오래 간직하여 정성껏 정결하게 관리, 사용하며 세세년년 국태민안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예고의 이 우물을 항시 주시하며 신성시 하고 있다. 서기 1996년 5월 일 - 동민 일동 세움 -|| 이 우물은 사곡리의 사청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우물현장" 이라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길가에 서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물물은 크게 변하지 않고 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에 우물이 불어나고 비석은 1996년에 세워졌다.]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561|2006년 8월에도 우물물이 불었는데]] 2개월 뒤 북한이 첫 핵실험을 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본래 우물의 수위가 4.6m가 되어야 우물이 넘치지만 1998년에 석축을 쌓아 수심 6m가 넘어야 우물이 넘치게 된다고 한다. '''참고로 이 문단은 2015년 6월 27일까지 [[괴산군]] 문서에 있었다가 r63에서 추가되었다'''[[https://namu.wiki/diff/증평군?rev=63&oldrev=62|#]].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괴산군, version=40, paragraph=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