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화생물학 (문단 편집) === [[가톨릭]] ===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후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종파인 가톨릭교회와 교황은 거의 100년 동안 공식적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진화론이 신앙에 반대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예를 들어 독일 주교회의가 1860년 진화론이 성경과 신앙에 반대된다는 교서를 발표했을 때에 교황청은 침묵을 지켰는데, 이는 동의를 의미했다. 침묵은 어떤 경우 동의를 의미한다. 1894년 프랑스 신학자 레로이 신부가 진화론과 교리를 조화시키려던 책(L'evolution restreinte aux especes organiques)을 출판하려고 교황청에 허가를 요청하자 교황청은 관계자들의 토론을 거친 후 출판을 금지시켰다. 1896년에도 미국인 신부가 「진화와 교리」라는 책을 출판하려다가 금지당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질학자이며 유신론적 진화론자인 예수회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도 소속 수도회 총장에게서 출판을 금지당했고 교수직도 박탈당했다. 1955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진화론과 신앙을 연결하는 그의 논문이나 책은 수도회 장상에게서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출판된 저서와 사상은 20세기 후반의 한 시대를 사로잡았다. 현재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그가 소신을 갖고 진화론과 신앙을 연결시켰던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외에도 진화론을 증명하고자 실험하여 1866년에 유전 법칙을 발표한 수도사제 [[그레고어 멘델]]과 그 실험을 지원했던 시릴 프란티셰크 나프 등도 있었지만, 알다시피 그 연구는 멘델이 선종한 후 16년이 지나서야 학계에서 재평가를 받았다. 1950년에 진화론을 대하는 교회 태도가 크게 변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20세기 교황 중 가장 보수적이기로 1, 2위를 다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비오 12세는 직접 이에 대해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라고 지시하여 신학적 검증이 시작되었고, 말년에 회칙 인류(humani generis)에서 "반대되는 가설과 동등하게 깊이 있는 연구와 조사를 할 가치가 있는 하나의 진지한 가설"이라고 하였다. 또한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이 없다'''는 점도 분명하게 밝혔다. 즉 비오 12세는 진화론을 아직 확실하게 맞는다 틀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신앙과는 모순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온 지 거의 100년이 지나서 진화론에 관한 가톨릭교회 입장이 이렇게 개방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비오 12세의 이러한 변화에는 북경원인을 발굴한 [[예수회]]의 테이야르 드 샤르뎅이 큰 공헌을 했다. >그 때문에 교회의 교도권은 "진화론"의 교설이, 이미 존재하는 생물에게서 인간 육신의 기원을 구명하는 한에서[* 발췌자 주석: 곧, 과학자가 인간 영혼의 기원 문제 등에 월권을 하지 않는 한에서] ㅡ 영혼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창조된다는 것을 가톨릭 신앙은 우리에게 고수하도록 명한다. ㅡ 인문 과학과 거룩한 신학의 현 수준에 맞게 두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 >-교황 비오 12세 회칙, 〈인류〉{{{-2 ''Humani Generis''}}}, 1950년 8월 12일[* 본문 출처: 하인리히 덴칭거{{{-2 ''Heinrich Denzinger''}}},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ㆍ선언 편람》{{{-2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제44판, 이성효 등 번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4, 제3896항] 이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러서는 '''[[진화]]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라고 "그 회칙(비오 12세의 회칙 '인류')이 발표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론에서 하나의 가설 이상의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러 학문 분야의 잇따른 발견으로 연구가들이 점차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의적인 노력이나 조작도 없이 각기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이 하나로 모이는 수렴 그 자체가 이 이론을 위한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밝히며 "신앙과 진화 사이에는 대립이 없다"는 비오 12세의 언명을 다시 인용하였다. >'''저의 선임자 비오 12세는 회칙 Humani generis(1950)에서, 몇 가지 분명한 점만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다고 이미 언명하였습니다'''(AAS 42[1950], 575-576면 참조). >... 회칙 Humani generis는 신학의 고유한 요구뿐만 아니라 당시의 과학적 연구 상황을 참작하여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거기에 반대되는 가설과 동등하게 깊이 있는 연구와 조사를 할 가치가 있는 '''하나의 진지한 가설로 여겼습니다.''' ... 그 회칙이 발표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론에서 하나의 가설 이상의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발췌자 주석: 1950년 회칙 당시 진화론은 반대 논거와 대등한 입장의 가설이었지만, '현재'{{{-2 (1996년)}}}의 상황에서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 이상이라는 것이다.] 실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러 학문 분야의 잇따른 발견으로 연구가들이 점차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의적인 노력이나 조작도 없이 각기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이 하나로 모이는 수렴 그 자체가 이 이론을 위한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https://archive.is/j8NZC|〈교황청 과학원 총회{{{-2 (주제: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보낸 담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96-10-26&officeId=00032&pageNo=1|경향신문 1996년 10월 26일 기사에서 요약되어 있다.]]] 1996년 10월 22일 가톨릭의 입장은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결코 "하느님께서 만물 창조하심"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진화론은 창조를 제한적으로 설명하며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철학적인 질문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물론 전임자도 이런 주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쪽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결국 "진화의 어느 시점부터 (자유의지, 영혼을 지닌)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진화는 대단히 연속적으로 진행되는데 어느 시점에야 인간이면 부모는 영혼이 없고 아이들은 영혼이 있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 물론 이 예시는 상황을 매우 단순화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바티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으며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야훼|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영혼]]이 존재한다."라는 믿음은 가톨릭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리는 분명히 존재하며 진리는 하나지만 그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가톨릭은 인간의 영혼이 심리학적 요인이나 호르몬 등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성적 사고를 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기독교인이 영과 육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주장할 경우, [[영지주의]] 이단 크리를 먹는다.), 만물이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가톨릭이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적이지 않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과학에 모순된다고는 할 수 없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아무리 시기를 늦게 잡는다고 해도, 가톨릭 교도권은 진화론 그 자체는 신앙과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진화론 그 자체와는 별개로, 유물론적인 세계관만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을 경계할 뿐이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전 교황의 잠정적인 시도를 훨씬 넘어섰으며 진화에 대한 생물학적 증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데 형식적으로 동의했다. ... 교황은 진화가 기독교 신앙과 모순은 아니라며 가톨릭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견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보증을 섰다. ... 교황의 메시지는, 19세기에 시작된 생명의 내력이라는 개념에 계속 끈덕지게 달라붙었던 유물론적 문자주의의 한 측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느낌 없이, 우리가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 우리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에서, 진화 과학이 생명을 본질적으로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해석하는 기계론적 철학과 융합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일차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일단 진화 과학이 유물론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된다면, 축적된 과학적 진화론적 증거는 약동적인 종교적 해석에 즉시 힘을 쏟을 것이다. >---- >-존 호트{{{-2 ''[[https://en.wikipedia.org/wiki/John_F._Haught|John F. Haught]]''}}}[* 미국의 가톨릭 신학자. 조지타운대학교 신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2 ''Responses to 101 Questions on God and Evolution''}}}, 신재식 옮김, 지성사, 2004, pp.83-84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진화론과 연결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조건이 하나 있지요. 그것은 바로 학문적 이론의 경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 '''자연과학이 자신의 방법을 굳게 지킨다면, 신앙과 충돌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경계를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자들일 뿐만 아니라 감정을 지닌 인간, 신앙과 씨름하는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이기도 하기에, 학자일지라도 언제나 불가피하게 세계관적인 물음들에 연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5년 로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화론'이란 주제로 학술대화가 열렸습니다. 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되신 라칭거 추기경이 당시에 이 학술대회를 이끌었습니다. 학술대회를 마치면서 우리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알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올바르게 이해된 창조 신앙과 올바르게 이해된 진화론은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가지 않습니다. 진화는 창조를 전제합니다. 그리고 진화의 빛으로 보면 창조는 '지속적인 창조{{{-2 ''creatio continua''}}}'로, 곧 시간 안에서 계속되는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신앙의 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심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2 (1985년 4월 26일)}}}|| >---- >-[[https://en.wikipedia.org/wiki/Christoph_Sch%C3%B6nborn|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2 ''Christoph Schönborn''}}}, 《쇤보른 추기경과 다윈의 유쾌한 대화》{{{-2 ''Ziel oder Zufall?: Schöpfung und Evolution aus der Sicht eines vernünftigen Glaubens''}}}, 김혁태 옮김, 생활성서, 2017, pp.43-44 여하간 이런 인식 덕분인지 한 통계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진화론을 인정하는 종교집단은 [[가톨릭]]이라는 결과가 있다. [[http://cfs12.tistory.com/image/17/tistory/2009/03/11/08/00/49b6f0f54b675|# 83%]] 하지만 [[2012년]] 7월에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자료([[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8661|# 불교신문]])에 의하면 천주교는 창조론을 믿는 비율이 42%로 진화론을 믿는 비율 31%보다 많으며, [[개신교]](각각 75%, 13%)와 [[무교]](각각 17%, 63%)의 중간 수준이었다. [[불교]]는 창조론이 16%, 진화론이 46%가 나왔다. 불교도 보수적인 파벌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입장이 개신교나 다르지 않다. [[http://theacro.com/zbxe/5198412|#]]] 다만 두 조사 모두 표본집단자체가 각각 500명과 613명으로 작은 것[* 표본오차 +-4%, 95% 신뢰수준]과 양 질문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뒤에 보듯이 단순히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냐는 질문과 진화론과 창조론 가운데 무엇을 고르느냐는 다른 질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다면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 다 긍정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무위키의 경우는 창조론과 창조설을 별도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지만(전자는 종교적 의미, 후자는 유사과학) 이건 어디까지나 나무위키에서의 정의일 뿐이고, 위키 외부에서는 창조론이라는 게 순수한 교리 그 자체를 말하는지, 혹은 유사과학을 말하는지도 의미가 모호하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창조론과 진화론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말은 애초에 질문 자체가 문제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위 조사에서 '''"[[시조새]]의 진화에 대한 서술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천주교의 응답('''유지 42%''' 삭제 13%)이 불교('''유지 42%''' 삭제 14%)나 무교('''유지 47%''' 삭제 17%)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아래는 <가톨릭 대사전>의 '진화론' 항목.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생물이 극히 원시적인 생물로부터 진화하여 고등한 것이 되었다는 이론인데 라마르크(J. Lamarck, 1744∼1829)와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대표적인 창시자다. 우주 속의 만물은, 영계(靈界)를 포함하여, 저급한 상태에서 고급한 상태로 자연스러운 체제 바꿈을 하는 필연적인 진화발전을 통하여 설명할 수가 있다는 정설로서, 기본적으로는 생물의 ‘종’(種)이 오랜 세월동안에 변화한다는 입장을 전제로 하고, 그 변화의 기구(機構)에 설명을 부여하려는 시도의 총칭이라고 볼 수 있다. > >역사적인 자료에서 살필 때, 17세기에 근대 과학적인 세계상(世界像)이 구축되어 감에 따라, 우주나 지구의 역사도 그 세계상 속에 포함되느냐의 여부가 자연 철학자의 관심이 되었다. 이 경우 자연관(自然觀)에 있어 두 개의 태도를 나누어졌는데 ① 자연은 신의 계획과 창조에 의한 것이므로, 본래 ‘완전’인 것이며, 창조 이래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고정적인 자연관’과 ② 노아의 홍수를 비롯하여 당시 산중에서 발견된 수생동물의 화석(化石) 등을 근거로, 신은 창조 이래 몇 차례나 자연에 큰 변동을 안겨 주었다고 보는 ‘변동적인 자연관’이다. 18세기에 오자, 전자의 사고방식은 현재의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정적(靜的)인 질서를 ‘속’(屬)과 ‘종’으로 철저하게 분류 정리하여 ≪자연 분류사≫(自然分類史, Systema naturae, 1735)를 저술한 린네(K. von Linne, 1707∼1778)를, 후자의 경우는 정적인 질서를 역사상의 동적인 발전으로서 바꿔 읽으려는 비풍(G.L. de Buffon, 1707∼1788)의 대저 ≪박물지≫(博物誌, Histoire naturelle, genearale et particuliere, 1749∼1804)를 남겼다. 전자에선 ‘종’의 보존 즉 ‘유전’(遺傳)현상의 탐구를 열었음과 동시에, 후자가 ‘종’의 변화 즉 ‘진화’(evolution)의 탐구를 열기 위한 전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정 속에 19세기 초, 라마르크는 ≪동물철학≫(動物哲學, Philosophie zoologique, 1809)을 통하여 종의 변화를 환경에의 적응과 결부시켜, 적응의 기구를 생물체와 욕구나 내적인 감정에 바탕하는 체제의 변화로서 파악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 나온 다윈은 ≪자연도태법(自然淘汰法) 혹은 생존경쟁에 있어서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의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1859)을 통해 ‘자연선택설’을 주장, 환경에의 적응을 종의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는 점에선 동일하나, 그 기구를 ‘환경의 체’로 골라내는 데서 찾고, 생물체는 수동적으로 ‘피선’(被選)일 따름이라고 생각하였다. > >다윈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자연경쟁’의 이념에도 친근성을 갖는 경우도 있고, 인간의 진화가 그리스도교 교리와도 병립되는 점도 있고, 또한 스펜서(H. Spencer, 1820∼1903)에게서처럼, 사회와 생물체와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즉 사회가 동질인 것으로부터 이질인 것으로, 분화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분화한 것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관념으로서의 진화론과 ‘사회유기체설’이 결부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20세기의 사회 · 종교 진화론을 낳게도 되었다. 진화의 기구로서는, 오늘날 원리적으로 돌연변이(突然變異)와 자연선택설의 합친 형태가 수용(受容)되어지고 있으나, '''[[유신론적 진화론|유신적(有神的)인 진화론]]이, 인간의 신체와는 별개로 각 개인의 영혼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는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유물적(唯物的)인 진화론의[* 영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진화론] 경우 만물의 창조를 즉 그 기원을 하느님께 귀속시키는 그리스도교적인 계시에 반하는 까닭은, 모든 생물 · 식물 · 동물 · 인간의 신체와 영혼의 출현을 자연의 진화발전이라는 경과에 의해 설명하려고 하는 데 있다. 더구나 영혼의 기원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혼 자체의 존재 여부가 증명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진화론이 영혼의 기원을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